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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진 Mar 27. 2022

폭력은 어떤 식으로든 되풀이된다.

2013년 봄에서 겨울, 연극 연출 전공



  어제는 최초로 글을 완성하는  실패했다. 설령 약속 시간보다 늦어지더라도 매일  편씩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제는 도저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시절에 대해 지금의 내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시기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써내려  것인가. 어쩌면,  시절을 ‘지나간 으로 소화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시간들을 정의 내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일까. 일련의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어떤 것도 쓰이지 않았다.


  하루를 꼬박 고민해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마냥 유쾌하게 묘사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너무 적나라하게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최대한 단순하고 담담하게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날 나의 과오 또한 있는 그대로 적는 쪽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이 포함된 시리즈의 명제가 ‘실패리포트’인 것을 내세워서.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나는 첫 번째 대학교 졸업 후, 다시 입시를 준비했다. 고등학교 이후 접었던 연극에 대한 꿈을 다시 꺼내보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딱 한 곳이었다. 문화적으로 낙후되어있는 지방에서 연극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몇몇 배우들이 TV에 나와 그 학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막연히 ‘연극을 배우려면 저 학교에 가야겠구나.’하고 생각하고는 했다. 입시 요강에 맞춰 시험을 준비했다. 도서관에 가서 희곡도 찾아 읽었고, 모의 면접도 준비했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학교에 붙고 나서 입학 전까지는 오히려 단순했다. 전력 질주를 하기 전 운동화 매듭을 고쳐매는 심정이었다. 탕, 총소리가 나면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었다. 학교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연극계에서 낙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단순한 오기였다. 내가 가진 재능을 면밀히 살피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시기였는데.


  군기가 세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상상을 초월했다. 들어가자마자 군대식 인사와 화법을 배웠다. 동기 중 하나라도 선배 눈에 거슬리면 전체가 집합하여 얼차려를 받았다. 과 특성상 끼가 많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강압적으로 개인기나 기이한 행동을 시켰다. 온갖 가혹 행위와 부조리가 판을 쳤으나 나는 살아남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흡사 ‘집단광기’라 부를만했다. 나는 그 광기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 직접 그 광기에 뛰어들기를 선택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선배들로부터 학회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잠깐 고민했다. 내가 그토록 진저리를 쳤던 군대식 문화를 직접 나서서 주창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결국 수락했던 이유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가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지나고 보니 학교에 군대식 문화 자체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잡혔다고 생각했고 거스를 수 없는 큰 물결인 줄로만 알았다. 사람이 폭력에 무뎌지면 이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쓰면서 아직 공부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은, 그만큼 공부보다 학교생활이 힘들고 다사다난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강압적이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학년이 석이는 순간 자유로운 창작을 하기는 어려웠고, 나는 동기들과 작품을 만들었던 1학년 때를 제외하면 재미있게 연극을 만들었던 기억이 없다. 오히려 짧은 장면을 실험적으로 만들어보는 수업이 훨씬 좋았다. 다양한 학과, 학년, 전공이 섞여 있는 제작반에 들어가면 각자의 서툰 소통방식에 상처를 받거나 혹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결국 학회와 전공 공부를 양손에 쥐고 전력 질주를 하다가 한순간 나가떨어졌다. 하루하루 후배들의 괴로운 표정을 보는 것이 죄스러웠고, 무작정 덤벼들었던 연출의 무게가 버거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실수는 한 가지다. 열심히 해야 하는 것과 무시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을 못하는 바람에 나는 연극이 싫어졌다고 굳게 믿었다. 엄한 곳에서 힘을 다 빼고, 엉뚱한 사람에게 상처받아놓고 멀쩡한 연극만 내버린 셈이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세월이 거의 8년이 되었다.


  학교를 떠나고 나니 미투 사건이 터졌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내가 몸소 보고 겪은 세계가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의 기분은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단순히 기쁘다고만 할 수 없었던 것은, 일정 부분 방관했고, 일정 부분 가담했던 내 자신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사명감으로 행했지만 결국 떳떳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내가 나를 할퀴게 된다.


  지금도 동기들을 만나면 학교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기하고, 괴로워하고, 이제 더이상 이야기 하지말자고 하면서도 또다시 되풀이한다. 어쩌면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계속 들추면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친구는 학교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친구를 마음 깊이 걱정했다. 아마, 양상만 다를 뿐 비슷한 증상일 것이다.


  갈피를 못 잡은 채로 글을 쓰려니 마음이 괴롭다. 나는 언제쯤 이 기억에서 자유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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