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탄불 2014 (1)
“이스탄불에서는 항상 종교분쟁이 일어난다? 그냥 길거리를 활보하면 옆에서 버스가 폭발하고 총소리가 들려. 다양한 종교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 보니까 서로 하루 종일 테러하고 싸워대는 거야.”
중학교 2학년 때, 짧게 다녔던 영어 학원의 선생님이 해줬던 말로 기억한다. 본인이 이스탄불에 다녀온 '썰'을 풀면서 한 말인데, 왜 이 말이 9년이나 지난 2014년에도 내 뇌리에 박혀있던 걸까? 한창 액션 영화에 심취해있던 내게 저 말이 불러일으킨 상상력이 생각보다 컸던 것일까. 당시의 나는 이스탄불이 여전히 그런 곳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해외여행을 가게 될 기회가 생겼을 때, 제일 처음으로 떠오르는 곳 역시 이스탄불이었다. 답답했던 2년간의 군생활을 끝낸 직후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새롭고 스릴 넘치는 공간에 가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스물네 살의 나는 여행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해외여행을 혼자서 한다는 건 소심한 내게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35일 간 유럽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회유와 협박이 반반 섞인 어머니의 권유 덕분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4개월 간 집에서 한량처럼 보낼 내 모습이 상상만 해도 끔찍했던 것 아닐까? 아무튼 어머니의 그런 종용 덕분에 전역 2주일을 남겨두고 군대 내에서 35일간의 유럽 여행 계획을 짜게 됐다.
여행에 대한 열정도 없었고, 딱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한 번도 혼자서 해외에 나간 적이 없는데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여행 준비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준비만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몸성히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유럽에서 유명한 도시들을 대충 찾아서 구글맵에 등록한 게 다였다. 첫 여행지는 무조건 이스탄불이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나름 동선을 짜 봤다. 지금 다시 봐도 참 대책 없는 일정이다. (이스탄불 > 보드룸 > 산토리니 > 나폴리 > 로마 > 베를린 > 프랑크푸르트 > 하이델베르크 > 스트라스부르 > 인터라켄 > 니스 > 바르셀로나 > 파리 > 런던).
이스탄불로 가는 편도행 티켓 하나, 나중에 보니 잘못 산 것이었던 유레일 패스, 유럽 여행용 유심칩 하나. 이 세 개가 내 나름대로 준비했다는 준비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흡한 준비는 결국 여행 내내 생고생으로 이어졌다. 그랬기에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인 것이겠지만..
유럽은 무비자로 60일 정도 여행이 가능하다. 나는 이 사실만 철석같이 믿고 도심공항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60일 이하로 체류할 것이라는 증거로 귀국행 티켓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준비를 얼마나 대충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부분이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편도행 티켓만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영국에서 돌아올 귀국행 티켓을 예매해야 했다. 예매가 늦어서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나라는 조바심을 안고 급하게 귀국행 항공편을 예매했고, 그제야 공항 리무진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행기 자체는 어렸을 때 해외연수 경험으로 많이 타봤기에, 오히려 공항에 와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이스탄불로 가기만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가뿐히 비행기에 탔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야 경제관념이 없어서 연수를 떠날 때 직행만 타고 다녔지만, 환승을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환승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 북경에서 환승을 했을 때만 해도 환승의 어려움이 별로 체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항공편 상세 내역에 숨겨진 환승지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북경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중 '우루무치'라는 곳에 들려서 무려 3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했던 것이다. 우루무치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역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공항에 내린 것도 모자라, 편의점도 없고 화장실만 있는 환승 대기실에서 3시간을 버티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았다. 할 게 없어서 쪽잠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피로감만 늘어났다.
긴 대기 끝에 다시 비행기를 탔고 자정이 되어서야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보통 같으면 비행기 창 밖으로 도시의 야경을 구경했을 텐데 너무 피곤해서 그럴 생각조차 안 들었던 것 같다.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온 나는 택시를 타고 노트에 적어뒀던 한인 민박의 주소를 기사님께 보여드렸다. 숙소에 가서 짐 풀고 정리하면 새벽 1시가 넘어갈 터였다. 다음 날 일찍 예약해둔 투어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찔했다. 허나 문제가 또 생겼다. 막상 주소에 도착했는데 숙소가 어느 건물에 있는지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유심칩을 아직 갈아 끼우지 않아서 스마트폰도 먹통이었다. 할 수 없이 기사님께 숙소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고 위치를 알아봐 주실 수 있나 부탁드렸다. 기사님은 10 리라를 요구하시더니 내가 돈을 드리자 숙소에 전화를 걸었고, 나는 그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짐들을 다 정리하고, 씻고, 자기 전에 스마트폰에 유심칩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유심칩을 꽂아도 스마트폰은 작동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 기종에 지원하지 않는 유심침이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데이터 비용을 감안하고서라도 원래 유심칩을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폰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아무리 폰을 껐다 켜도 통신이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유심칩을 한 번 뺐던 바람에 카카오톡까지 로그아웃이 됐고, 번호가 인식이 안 되니 재로그인도 불가능했다. 당시 카카오톡 말고는 sns를 안 하던 내게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락 수단이 아예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지만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다음 날 아침 8시에는 일어나 투어에 가야 했다. 나는 일단 이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숙소의 pc로 부모님께 이런 사정을 이메일로 보내고 잠에 들었다.
전날 밤의 노곤함과 뜻하지 않았던 사고 때문에 늦잠을 잤고, 아침 투어를 보기 좋게 놓쳤다. 사실 약속 장소가 숙소에서 걸어서 1분 거리라 늦을 수가 없는데, 스마트폰이 없어서 지도를 못 보니 바로 앞에 있는 곳을 10분을 걸쳐 빙빙 돌아가느라 늦은 것이다. 날려버린 시간과 돈을 곱씹으며 술탄아흐멧 광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서있었다. 이때만 해도 그냥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갈까라는 생각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아직 돈도 별로 안 썼고, 귀국행 비행기도 35일이나 남았으니 환불도 문제없었다. 숙소비용도 그렇게 많이 든 건 아니니 35일 동안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며 겪을 어려움보단 그게 더 싸게 먹힐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때 정말 감사하게도, 내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스마트폰 없다고 여행 못 하나? 그럼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해외여행을 다녔나. 나라고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있나. 길눈이 밝으니 종이 지도라도 사서 돌아다니면 조금 더 모험 같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면 자존심도 상하고 뭔가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당분간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부모님이 좋게 보내주셨는데 이렇게 돌아가버리면 한심한 놈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내가 딱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 터키인이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는 자신을 이스탄불 시에서 공식 승인받은 투어 가이드라 소개했다. 딱히 잡힌 투어가 없다면 자신이 오늘 오후까지 나의 투어를 1대 1로 가이드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영어가 통한다는 점에서 솔깃했고, 한국 사람이 아니라 현지인으로부터 가이드를 받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벌써부터 남들과는 다른 모험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작은 즐거움도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날 안내한 곳은 블루 모스크였다.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다. 그는 나를 데리고 사원 주위를 한 바퀴 빙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블루모스크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이야기였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블루모스크 입장은 무료였기에, 히잡 대여소를 지나 사원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사실 내부 자체가 그렇게 화려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조금 놀랐던 건, 겉으로는 엄청나게 커 보이는 건물이 내부는 아예 하나의 동공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점이 내게는 오히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장식들 역시 수수했기에 내부만 본다면 영락없는 평범한 사원이었다. 화려함에만 신경 쓰는 것보다 이런 수수함이 오히려 더 진실성 있는 모습으로 비쳤다. 물론 기본 구조물들의 질이나 벽화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고급져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이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이유는 석양이 질 때 사원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빛이 푸르름을 띄어서 그렇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직접 이를 보지는 못했다.
이 사원에 큰 호감이 갔던 이유는 내부에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겪은 이슬람은 매우 엄격하고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였다. 하지만 사원에는 엄격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보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 잡담을 하는 노인분들, 하릴없이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달래는 이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이슬람 사원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정식으로 정해진 정규 예배 시간에는 이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시원한 사원 내부에서 만담을 즐기거나 더위를 식한다고한다. 사원은 단순히 엄격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편해야 하는 장소이기에 이런 것들이 허용된다고 한다. 알라는 단순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편하고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신이니까 그렇다고 한다. 종교가 없는 나지만 그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쉬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여유와 행복이 묻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쉬는 것을 최근에 본 적이 있었나? 모두가 항상 바쁘기만 한 서울에서 사는 내게 도심 속의 이런 광경은 큰 놀라움이었다.
블루 모스크를 나온 우리는 '예니 카미'라는 곳으로 향했다. 해석하면 '새로운 모스크'라는 곳이다. 나야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그가 이끄는 대로 갈 뿐이었다. 뭐하는 곳인지도, 어떤 유래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이때까지의 나는 여전히 이 여행에 수동적이었다. 여행은 보통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가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이스탄불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조사를 해갔다면 그에게 그곳에 데려가 달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으니..
바다 내음이 간간히 흘러들어오는 에미노뉴에 도착하자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보던 사람들의 열 배는 됨직한 무리들이 광장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다. 이제야 도심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선착장에서 들려오는 뱃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문득 이곳이 항구도시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날씨도 매우 좋았기에 나와 가이드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예니 카미로 향했다.
예니 카미를 둘러보는 건 말 그대로 5분 안에 끝나버렸다. 사전 지식도 없기에 아는 것도 없었으며,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긴 했지만 별로 감흥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투어보다는 둘 사이의 잡담이 주를 이뤘던 것 같다. 그렇게 예니 카미를 둘러본 뒤, 그는 약속한 시간이 됐다며 나를 그곳에 덩그러니 두고는 자기 갈 길을 향했다. 술탄아흐멧 광장으로 가려면 이쪽으로 쭉 걸으라며 길 하나를 가리킨 뒤 말이다. 갑자기 또다시 혼자가 됐다는 기분에 막막함이 몰려들었지만, 그를 믿고 그가 가리킨 길을 향해 쭉 걸어 술탄아흐멧 광장에 도착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썩 전문성 있는 투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나눈 이야기들은 6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이 군에서 퇴역한 저격수였으며, 미국 저격수들과 사과 맞추기 내기에서 1등을 했다는 둥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름 귀여웠다. 걸으면서 간혹 절던 다리는 총알을 맞아서 수술하다 생긴 후유증이라 했는데 그래서인지 신빙성이 가기는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와의 투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당시 이스탄불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그들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 문제, 군 문제 등등을 한국인 가이드한테 전해 듣지 않고 현지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욱 실감됐다. 말하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그의 표정과 말투는 이야기에 더욱 생동감을 더했다.
특히나 2013년에 꽤 화제를 모은 탁심 광장 시위에 대한 그의 의견이었다.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 훌륭한 시위지. 하지만 민주주의는 돈이 있어야 해 친구. 우리 터키 사람들은 아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 내가 살 곳이 있고, 먹을 밥이 있고, 입을 옷이 있어야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라고. 지금에야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려가며 헌신하는 게 보이지? 두고 보라고. 이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민주주의'는 오래 안 갈 거야.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매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지만, 내가 이스탄불을 떠난 직후에 벌어진 IS의 테러활동과 현재 터키의 상태를 보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말이다. 지금 그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와의 대화를 통해 배운 게 하나 있었다. 세상 어딜 가나 사람 사는데 문제는 일어나고, 그 문제들은 생각보다 우리가 겪는 문제들과 다르지 않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피부도, 언어도, 종교도 달랐지만,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한국에서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와 전혀 괴리감이 없었다. 마치 내가 이스탄불에 뛰어들어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이 여행에 내가 적극성을 띄게 된 것 같다. 투어 같지 않은 투어였지만, 그와의 만남 덕분에 내가 처음으로 이 여행에서 나만의 목적성을 갖게 됐다.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은 것만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거기서 되도록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그게 내가 이 여행에서 가져가야 할 방향성이었고, 어떻게 보면 젊을 때 여행을 가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부터 눈에 담을 수 없는 저 먼 은하까지 모두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이는 조그만 골목길까지 하나하나 ‘바우뫼로’, ‘콩쥐팥쥐로’ 등등의 고유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인식한다.
전혀 모르는 공간에 뚝 떨어진다 하더라도, GPS를 켜면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려주는 참 편한 세상이다. 공간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공간의 역사와 배경 환경들이 인식되면서 비로소 그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말해서 공간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뭐하는 곳인지, 어떤 배경을 지닌 곳인지 전혀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러했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투어를 해도 큰 감흥이 없고, 방향성마저 상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전에 가졌던 오기와 가이드와의 짤막한 투어를 통해 조금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근처 맛집을 검색하던 나는 이런 내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내 힘으로, 내 발걸음으로 여행지를 개척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길을 나섰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케밥집에 무턱대고 들어가 양고기 케밥과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이때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이스탄불의 오렌지 주스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이다.
배를 채운 나는 보이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때마침 저 멀리 근사해 보이는 첨탑이 보였다. 그곳을 등대 삼아 걸어 나갔다. 근거 없는 담대함의 결과는 처참했다. 한 시간 가량 걸었지만 멀리 솟은 첨탑은 계속 제자리였고 내 주변 풍경 역시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외국인들로 차 있던 거리는 점점 현지인들로 가득해지고 있었다. 나는 이 낯선 도시에서 완벽한 미아가 된 것이다. 사실 조금 전부터 이 길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관성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법이다. 이 길이 아닌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가던 길을 그대로 가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게 내가 여태까지 삶을 살아온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내 방황을 끝내준 건 생각보다 단순한 사건이었다. 사방이 황토색인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유치원생만 한 몸집을 지닌 개가 나를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개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던 것도 있었지만 제일 결정적인 건 목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스탄불은 개나 강아지들을 국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들개들에게도 식별표가 붙어있다. 허나 내 앞에서 짖어대는 개에게는 목줄은 물론 식별 표마저도 없었다. 그 길로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목적지 없이 걸었던 것 같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안전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쯤, 서서히 주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깐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래도 혼자 오는 첫 번째 여행인데 첫날부터 모든 것이 틀어진 느낌이라 그런지 돈도 돈이고 모든 것이 아까웠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숙련되고 여유로워 보이는 여행객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 거리가 마치 내가 매일 아침 걷는 길인 것 마냥, 낯선 거리 속에 잘 녹아든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용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마음은 다급해하고 있는데 몸은 전혀 그런 티를 안 내려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어리숙한 티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스로가 인지부조화에 걸려 내 정신은 혼란 그 자체였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웬만하면 여행지에서 내가 어느 곳에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 기억하는 편이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는 질문에는 나조차도 확신이 없다.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는 와중, 내 눈앞에 드디어 관광지라 보일만한 곳이 나타났다. 한 사원이 그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아까 목적지로 삼았던 고풍스러운 첨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럴싸한 관광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야 누구한테 ‘내가 오늘 이스탄불 여행을 다녀왔는데..’라고 화두를 던질만할 수준이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와중에 익숙한 한국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여행지니까 당연하겠거니 싶었지만 그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전날 밤에 민박집에서 짤막하게 인사를 나눴던 형이었다. 그분은 그새 한국인 동행을 구했는지 일행들과 함께 사원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차마 길을 잃다가 이곳을 우연히 발견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내가 있는 장소의 이름 역시 알려주셨다.
‘Little Hagia Sophia(작은 하기야 소피아)’. 익숙한 말로 번역하면 ‘작은’ 성 소피아 성당이다. 여기서 왜 ‘작은’이라는 단어를 붙였냐면, 성 소피아 성당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 소피아 성당은 술탄 아흐멧 모스크와 더불어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핵심 명소다. 그만큼 성 소피아 성당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어마어마했고, 같은 이름을 공유한 작은 성 소피아 성당이 주는 감동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성 소피아 성당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건물 양식과 구조 및 모든 것들이 소피아 성당과 일치하는 사원이었던 것이다.
형 덕분에 여기서 어떻게 해야 주요 관광지인 성 소피아 성당, 술탄 아흐멧 모스크, 그리고 톱카프 궁전으로 갈 수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내가 여행에 적극성을 띄게 된 것 같다. 힘겹게 등산을 하다가도 정상에서의 절경이 그 모든 고통과 힘겨움을 씻어내 주듯, 조금 전까지 나의 방황은 앞으로 다가올 어마어마한 광경들을 더욱더 빛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기한 일이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이곳은 방황 중에 마주한 한 사원이었을 뿐이었다. 허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이곳은 단순히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한 사원이 아니었다. 내가 기대하던 이 기나긴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 앞으로의 여정에 가슴 벅차오름을 선사하는 곳. 이 공간은 나에게 조금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톱카프 궁전에는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리 도착했다. 알고 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살짝 자괴감에 빠져들었지만, 깨달은 것이 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입구부터 바글바글했다. 그 많은 여행객들이 다 이곳으로 몰린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것 치고는, 궁전이라는 이름 치고는 입구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이래서 내가 입구를 찾지 못했던 거구나라고 작은 변명을 한 뒤, 사람들을 따라 궁전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티켓을 구매한 뒤 궁전 내부를 산책하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맥이 빠지기는 했다. 이국땅이라 느껴지는 신비함은 크게 없었고, 그냥 거대한 박물관에 와서 옛날 유물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쳤지만, 솔직히 시시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들은 궁전 최심부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톱카프 궁전은 이스탄불을 세 지역으로 나누는 기준점이 되는 금각만과 인접해있다. 궁전 최심부는 그 금각만과 궁전이 바로 맞닿은 해안의 언덕 위에 위치해있었다. 그곳에서는 금각만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처음 금각만을 봤을 때 그 청령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이스탄불을 떠올리면 푸른빛을 띠는 청량함이 떠오르는데, 아마 이때의 순간이 강하게 기억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시원한 바람, 푸른 하늘, 푸른 바다의 조합은 여태까지 느꼈던 모든 답답함을 단 한 번에 씻어냈다. 일부러 생각을 하면서 여행의 이유를 찾았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그 절경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왜 여행을 가는지.
이스탄불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구시가지, 신시가지, 그리고 아시아 지구다. 톱카프 궁전은 구시가지에 위치해있고, 사진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큰 다리를 중심으로 좌측은 신시가지, 그리고 우측은 아시아 지구다. 각 지역의 특징은 추후에 말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이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저 금각만 너머로 보이는 두 개의 지역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의 다른 지역들에는 뭐가 있을까? 드디어 나에게 이 도시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이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생각 백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거의 30분 가까이 멍하니 금각만을 바라보며 바람을 만끽한 걸로 기억한다. 금각만의 시원한 풍경은 애매하게 열려있던 내 마음을 완전히 열어줬다. 그래서일까? 톱카프 궁전을 뒤로하고 떠나는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그저 지루하고 평범해 보이는 광경도 그저 좋았고, 내리쬐는 햇빛도 이국 땅에서 받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음 날 있을 투어에 대한 기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안 되면 뭐 어떠하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게 뭐 어떠한가? 지금 당장 숙소에 들어가서 투어를 신청한 날 말고 다른 날에 이스탄불에서 무엇을 할지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출발부터 첫날까지 이어진 연이은 쓰라린 경험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 입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이 튀어나왔다.
"아, 여행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