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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May 05. 2022

호주, 안녕

#8. 시드니 ~ 멜버른 2019


멜버른, 안녕


 시드니에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멜버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내려 다시 익숙한 도시로 돌아오니 시간은 벌써 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도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긴 시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서둘러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마지막으로 이 거리를 걷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고 나왔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까지 쭉 걸었다. 카메라를 챙겨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셔터를 누를 일이 없었다. 이미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던 길이었다.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길이었기에, 사진보다는 눈으로 담고 싶었다. 아마 당분간 이 거리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호주 여행기 시리즈 첫 글에도 적었던 것 같지만, 호주를 마음먹고 오려면 최소 열흘에서 2주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번 방문한 도시는 웬만하면 다시 안 가는 내 여행 특성상, 아마 내 삶에서 멜버른을 걷는 마지막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다운 야경


 날이 맑은 밤이었다. 이미 수없이 담은 풍경이지만, 다리 근처에서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었다. 서울 같으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멜버른의 도시 야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이별 사진을 찍는 기분으로 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꽤 마음에 드는 구도로 사진을 찍은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떠날 때가 왔다는 게 직감됐다. 셔터를 누르며 이 도시를 향한 미련과 아쉬움을 정리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웃으면서 멜버른을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여행인 쿠알라룸푸를 눈물로 보냈던 걸 생각하면 사뭇 다른 광경이다. 아마 내 마음가짐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퇴사를 하고 온 여행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꾸역꾸역 갔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실컷 여행을 즐긴 뒤에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 도시에 남고 싶었고 그게 미련이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행복한 백수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때에 비해 미련을 털어내는 게 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웃으면서 무언가를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은 센 척이나 쿨한 척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었구나.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마지막으로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이 장소가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올 때만 해도 플린더스 역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남들은 멜버른 하면 이곳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사실 근교에 있는 장소들을 기대하고 방문했기 때문이다. 멜버른에서 머문 사흘 중에서 시내에서 보낸 시간보다 근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았다. 이 역은 체크포인트였다. 내가 현재 멜버른에 있다는 걸 가장 강렬하게 알려주는 체크포인트 말이다. 이곳을 원점으로 뻗어나가면 사방팔방에 내 추억들이 산재해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며, 그 추억들이 희미해질 때, 원점만 잘 찾아간다면 언제 어디서든 실낱같이 뻗어나간 그 추억들을 되찾을 수 있다. 그 원점을 눈에 확실하게 담은 채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멜버른과 안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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