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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yden Apr 27. 2024

[수서역 3호선] 할머니, 혹시 충무로역 가세요?

한국인을 위한 칭찬법은 무엇일까?



수서역 3호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에 있는 할머니께서 글씨가 빼곡한 종이를 보면서 가시는 것을 봤다. 종이를 보니, 목적지까지 향하는 경로를 메모해 두신 것 같았는데, '충무로'라는 글자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큰 가방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니, 아마도 SRT를 타고, 수서역에 내리셔서 지하철을 타러 오신 것 같았다. 초행길이신지 주위를 두리번거리셨다. 더욱이 할머니께서는 열차가 잘 들어오지 않는 플랫폼 앞에 서 계셔서 (수서역 3호선은 오금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곳과 수서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곳이 나눠져 있다. 수서발 열차는 드물기에 대부분 오금발 열차를 탄다.)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본 종이를 떠올려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 혹시 충무로역 가세요? 


할머니께서는 "그렇다."라고 하셨다. "어떻게 알았냐?"라고 여쭤보셔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올 때, 종이에 충무로역을 써두신 것을 봤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혹여나 할머니께서 '몰래 종이를 본 행동에 대해 화를 내시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충무로에 가는 것이 맞다며, 그걸 보고 도와줘서 고맙고, 참 섬세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안심한 나는 지금 들어오는 열차를 타면 더 빨리 가신다고, 이쪽(수서발 열차)은 열차가 자주 안 온다고 말씀드리고, 같이 열차에 탔다. 할머니께서는 도와줘서 고맙다며, 학생 없었으면, 한참 기다릴 뻔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충무로역까지는 거리가 꽤 있고, 조심히 목적지까지 가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자리를 떴다.


수서역에서 충무로역을 간다면 반드시 지나게 되는 금호대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칭찬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고, 할머니를 도와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본 칼럼 글이 하나 떠올랐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님께서 매일경제에 쓰신 칼럼인데, 그 글에는 '인간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한 행동에 대한 피드백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라고 나온다. 즉, 칭찬받기 위해서 한 행동보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행동을 했을 때, 똑같은 칭찬을 받더라도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김경일 교수님께서 '칭찬'과 관련하여 추가로 말씀하신 것이 있나 찾아보니, 세바시에서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칭찬의 방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신 게 있었다. 해당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력을 칭찬하라

이름을 불러 칭찬하라

의도하지 않은 행동도 칭찬하라


그리고, 한국인을 위한 칭찬법을 추가로 알려주시는데, 한국은 일본의 집단주의와는 다른 관계주의 문화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계에 기반한 칭찬이 한국인을 위한 칭찬법이라고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이 상사의 요구에 맞게 일을 잘해왔을 때라는 상황에서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자네는 일을 정말 잘하네"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이 일을 착실히 잘한다고 하던데,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구만"이라는 말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전자는 칭찬을 하는 사람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으로, 후자는 그 사람의 관계를 존중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김경일 교수님의 이야기를 나의 사례에 접목시켜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했던 행동들에 대한 칭찬이 앞으로도 그런 행동을 더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사람들을 잘 돕네"라는 말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배려심이 좋다고 하는데, 자네 같은 사람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나 보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인인 나에게 더 와닿는 칭찬이라는 것이다. 글을 작성하면서 보니, 실제로 후자가 더 마음에 와닿는 칭찬으로 느껴졌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이런 점을 활용해서 칭찬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습 차원에서 한 번 써봤다.



[칭찬 연습]


"동아리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일을 아주 잘한다고 하던데, 길동님을 보고 하는 이야기인가 보네요."

"요즘 어른들의 지혜가 굉장히 필요한 시기였는데, 길동 선배님의 지혜가 고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독자님들을 위한 감사(칭찬)]


요즘 사람들이 영상보다 글을 많이 보는 추세라고 하던데, 독자님들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봐요!





어때요? 괜찮은 예시인 것 같나요 :)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칭찬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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