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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yden Apr 30. 2024

[교대역 2호선] 우리는 늘 다니던 길로 다녀

효율을 추구하다가 효과도 놓쳤다.



교대역에서 2호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 할머니들께서 어떤 사람에게 ‘서울역’ 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계셨다.


 


“서울역 가려면, 신도림에서 1호선 타고 가는 거 맞죠?” 

그 사람은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왜냐하면, 사당에서 4호선으로 환승해서 가면 시간이 '17분'이나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들께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말씀은 드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할머니들께 다가갔다.


교대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방법 (최대 45분에서 최소 26분까지 걸린다.) 3호선을 타고 가면, 줄일 수 있는 시간이 19분이다.


“서울역 가시죠? 사당에서 4호선 타고 가시면 더 빨라요.”


이내 돌아온 할머니들의 답변은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우리는 늘 다니던 길로 다녀, 그래야 길 안 잊어버리고 갈 수 있어.”


사당역이 복잡하기도 하고, 모르는 길로 갔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평소에 다니던 길로 가는 게 마음 편하다고 하셨다. (신도림도 막장 환승으로 유명하지만, 그때는 오후 1시 정도였으니,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들께서는 어쩔 줄 몰라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할머니들과의 대화는 짧았지만, 나의 언행을 되돌아 볼만한 주제를 얻을 수 있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너무 빨리 가려다가 되려 길을 잃고 더 돌아간 적은 없을까?


나는 조급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도 ‘빠른 하차’와 ‘빠른 환승’을 외우고 다닐 정도고, 길을 걸어갈 때도 ‘피타고라스 정리’를 생각하면서 주로 대각선으로 많이 걷는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효율적이게 살 방법을 궁리했다. 할머니들과의 대화 이후 들었던 생각은 그렇게 애써서 줄인 시간은 얼마나 되고, 효율적이게 살겠다고 머리 굴리면서 쓴 에너지는 또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이와 관련해서 소개할 에피소드가 있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버스를 타면 10분이지만,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역에서 똑같이 출발해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걷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대략 25m 정도 앞서 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횡단보도가 2개 정도 있었는데,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 대기를 할 때마다 그 사람과 나는 동일선상에 섰다. 아무리 빨리 가도, 결국 큰 차이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 사람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Efficiency is doing things right Effectiveness is doing the right things
효율성은 일을 옳게 하는 것이고, 효과성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효율성(Efficienct)'과 효과성(Effectiveness)'를 구분해서 사용하되, 효율성과 효과성 모두를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효율성만 추구하고, 효과성을 놓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율성도 놓치는 결과를 만들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성과가 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상누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몇 가지 생각해 봤다.


[사례 1]

PPT를 만드는데, 전체 목차와 개요를 잡고 각 슬라이드마다 어떤 내용을 넣을 것인지 정하고, 이후에 슬라이드마다 디자인 작업을 하고, 디자인 작업이 끝나면, 디테일한 부분(좌우, 상하 정렬 맞추기, 색상 등)을 신경 썼어야 하는데, 나는 한 슬라이드 만들 때마다 디테일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PPT를 만드는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다. 그래도 결과물은 좋아서 만족했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이었다.


[사례 2]

나는 취미로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는데,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기본기는 건너뛰고, 곡을 연주하는데만 집중한다. 레슨 선생님께서 곡보다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하시고, 기본기도 늘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트럼펫과 같은 관악기는 몸이 곧 악기이기 때문에, 몸 상태와 컨디션에 따라서 악기를 부는 감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컨디션에 맞춰서 더 바람을 많이 보낼지, 적게 보낼지를 그때그때 결정해야 한다. 근데, 어떻게 불지 생각을 안 하고, 막 불다 보니 어떤 날은 굉장히 잘 되고, 어떤 날은 굉장히 안 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급해서 막 열 걸음씩 가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지경에 놓여 있다.


즉, 나의 상황은 빨리 가야 하는 타이밍에는 천천히 하고, 천천히 가야 할 때는 빨리 가는 청개구리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늘 "오늘은 지난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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