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현충원, 그리고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동작역 9호선] 학생, 6/25를 기억해 줘서 고마워
2023년 6월 25일. 현충원에 가는 길이었다.
현충원은 4호선, 9호선 환승역인 동작역 근처에 있다. 참고로 동작역의 부역명이 현충원이기도 하다.
같은 해에 前 해군 제독님의 강연을 들었었다. 주제는 '명예란 무엇인가?'였는데, 강연자는 '명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임무가 무엇이든, 지위가 높건 낮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래서 무명용사를 가장 명예로운 군인으로 추앙한다고 한다. 그때 '무명용사의 비'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무명용사의 비'의 정식명칭은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이다. 탑 뒤에는 학도의용군 48위가 모셔져 있는데, 1950년 8월, 포항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신 분들이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 나오는 포항여중 학도의용군이다. 학도의용군은 6.25 전쟁 당시, 학교에서 펜이 아닌, 전장에서 총을 들고 싸운 학생분들이다. 포항여중 학도의용군뿐만 아니라 많은 학도의용군이 있었는데, 이 분들은 군번도, 계급도 없어 대부분 유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셔서 전사하신 것도 마음이 아픈데, 유족들에게 유해를 찾아주지 못한 것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가 당신들의 위령을 추모하리오. 그래서 오는 6.25에는 현충원에 있는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에 가서 당신들의 위령을 추모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9호선을 타고 동작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날은 주말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열차와 열차 사이를 잇는 통로 쪽에 서서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벽에 기대고 있었다.) 벽에 기대 가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노약자 석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옆에 앉으라고 하셨다.
학생, 여기 옆에 앉아.
나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책임질 테니 옆에 앉으라고 하셨다. 노약자 석에 자리가 많이 비어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거듭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노약자 석이니 앉으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할아버지께서 계속 앉으라고 하셔서, 무안해하실까 봐, 살며시 노약자 석에 앉았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해, 앉은 둥 마는 둥 반쯤 걸터앉았다.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를 보러 판교에 들렀다가 다시 인천에 있는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신분당선 - 9호선 - 공항열차'를 타는 꽤나 먼 거리를 가고 계셨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서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하니, 아들은 바빠서, 주말에도 출근해서 없고, 손주만 보다가 온다고 하셨다. 그래도 손주가 이뻐서 오고 가는 게 힘들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디 가냐고 물으시길래 오늘 6.25라서 현충원에 가는 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꺼내고, 할아버지께서는 내 손을 잡으시고, 감정이 북받치시면서 말씀하셨다.
학생..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곧바로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들이 누군가의 피와 땀, 눈물이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표정과 나에게 하셨던 말씀은 큰 울림이 되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께 먼 길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동작역에 내렸다.
스리랑카에서 석사 과정으로 유학 온 친구와 현충원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국전시관에 들렀다가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으로 곧바로 향했다. 대부분 현충탑으로 가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무명용사탑에서 묵렴을 하고, 현충탑으로 향했다. 현충탑 뒤쪽으로 가보면, 위패봉안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으셨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전쟁이 가져온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고, 휴전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그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책으로만 영화로만 전쟁을 배웠었다. 그런데, 살면서 처음으로 현충원에 가보니,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다.
과연, 나는? 나라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물론, 당신들께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가셨고,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셨다. 위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기꺼이 국가를 위해 나의 목숨을 받히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살 도리를 할 것만 같았다.
필사즉생 행생즉사 (必死則生 幸生則死)
오늘 이 글을 쓰며, 다시금 초심을 잡아본다. 누군가가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나'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많은 분들에게 기꺼이 봉사하고자 한다.
이유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에...
유퀴즈에 나온 라미 작가님은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