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으엌ㅋ크..
어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동아리가 끝나고 트럼펫 연습을 하러 학교로 가고 있었다. 신촌에서 2호선을 타고 시청까지 가는 길이었다. 주말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았고, 일행과 함께라서 노약자 석 옆에 있는 문 앞에 서서 가고 있었다. 열차가 을지로입구에 정차했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타셨다. 그 순간 내가 몸을 돌리다가 팔꿈치로 할아버지의 복부를 쳤다... "으억...." 할아버지는 곧장 손으로 복부를 감싸셨고,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내가 볼 때는 아파보이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는 노약자 석에 앉으셨고, 나는 다시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괜찮으신지 여쭤봤는데, 웃으시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다시 일행과 대화를 하고 가고 있었다. 그렇게 2 정거장 정도 지났을까? 계속 할아버지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정말 괜찮으신지 아니면 아프신데, 참으시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할아버지께 가서, 여쭤보았다.
할아버지 정말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아유, 괜찮아~ 그래도 학생 참 착하고, 잘 생겼네. 탤런트 해도 되겠어
"탤런트 해도 되겠다."는 그 말이 진심의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괜찮음을 확인하고,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했다. 나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을 잘 믿지 않았다. 칭찬이라는 것이 예의상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친해지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칭찬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과연 저 칭찬이 진심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칭찬을 들으니까, 그것이 할아버지의 진심이든 아니든을 떠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굉장히 유쾌한 분이셨던 것 같다. 아무리 살짝이라고 해도 팔꿈치가 배를 쳐서 아프셨을 수도 있고, 굉장히 불쾌하셨을 수도 있는데, 웃으면서 넘어가셨다. 심지어, 칭찬까지 해주셨다. 정말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을 했고, 나도 나이를 먹게 되면 그 할아버지처럼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과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을 칭찬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이 22살, 이제 학교 행사나 모임에 나가면,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신입생일 때, 나는 선배들과 굉장히 잘 지냈다.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도 많이 하고, 질문도 하고, 대화도 많이 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들과 만나면서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1~2살 차이 나는 선배는 거의 친구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던 내가 1~2살 차이 나는 후배들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선배들과 대화를 할 때, 선배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질문도 많이 하고, 선배들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에게는 선배의 경험과 조언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학교를 2년간 다니면서, 알게 된 정보나 노하우가 있는데,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하지만, 후배가 질문을 하지 않으니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잔소리하는 선배처럼 보일 것 같고,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선배처럼 보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나는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처럼 후배들과 장난도 치고, 유쾌한 선배가 되고 싶다. 때로는 후배들의 용기를 복 돋아 주는 칭찬도 하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