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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yden Nov 22. 2024

[송파 비건네이처] 아쉬운 마음에라도 여기 가볼래?

그녀에게 빠진 이유 ③ - 귀여움, 그리고 사랑스러움



그녀와 나는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약속에서 서로 요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언젠가 함께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가자고 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요가 원데이 클래스 공지를 발견해 그녀에게 보내며 같이 신청하자고 했다. 우리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수업을 기다렸지만, 수업 전날 선생님의 사정으로 클래스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아쉬웠다. 클래스가 취소된 날, 나는 학교에서 트럼펫 연습을 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요가 클래스 안 해서 아쉽다
요가 장소가 석촌이라서 근처에 빵집도 생각났는데... 
여기 맛있는데 혹시 가볼래? 아쉬운 마음에라도



나는 답장을 하기 전에 거울을 보았다. 면도를 하지 않고, 대충 입은 옷차림이어서 그녀를 곧장 만나러 가기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내일 시간 괜찮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의 답장을 받고는 다시 오늘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렇게 마음을 바꾼 이유는 사실 내게 작은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도를 하지 않은 채로 만나는 게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내가 깔끔하게 준비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처음엔 내일 보는 것을 제안했다가 다시 오늘 제안하면서 작은 설렘을 유도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녀와 나누었던 카톡




그렇게 우리는 요가 클래스가 취소된 날, 송파에 있는 비건 빵집, '비건네이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그녀를 보자마자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그녀는 2023년 비건 페스티벌 티셔츠에 귀여운 핑크색 바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을 잘 마주치지도 못할 정도로 설렜다.


우리는 빵집에서 피스타치오 크림이 올라간 도넛과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빵과 도넛은 정말 맛있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강력 추천한 피스타치오 도넛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비건네이처 피스타치오 도넛


송파 비건네이처에서 그녀는 전날 남산에서 있었던 어머니 나무 보호 운동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산에 곤돌라가 설치될 예정인데, 그럴 경우 100년 된 나무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어, 이를 지키기 위한 금줄 치기 운동에 다녀왔다고 했다. 모기에게 많이 물려 간지러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니 발치부터 어릴 적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MBC 뉴스 보도]




5시가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이대로 헤어지기 너무 아쉬워 석촌호수를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덥고, 습한 날씨였지만 그녀는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호수를 산책했다. 산책하는 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나를 그저 친구로만 생각한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날 내가 손을 잡았다면 많이 당황했을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망설임이 우리 관계에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석촌 호수에서 만난 비인간 동물 친구들



산책을 하다 롯데타워 근처에서 무알콜 음료 증정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음료를 받아 마셨고, 그 이후로 우리는 종종 무알콜 음료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예전에 음료를 맥북에 엎어 수리비가 엄청 나왔던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내 아이폰이 사설 수리로 내부 부품들이 전부 가품으로 바뀌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나눴다.



Brayden, 하나가 아닌 둘(Not alon But two), 알루미늄, 가변설치, 2024




그 후, 그녀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살 책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에 우리는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며 잠시 더위를 피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책에 몰두하는 척을 했다. 그녀는 내가 열심히 책을 보는 모습을 보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지금 고백하자면, 그때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서점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마트에도 들렀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과자나 라면 등을 찾기도 하고, 가격이 많이 오른 채소들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겼고, 우리는 서브웨이에서 베지 옵션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서브웨이로 가는 길에 "비건이면 곤충은 먹느냐"는 친구가 물어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곤충도 생명체라 먹지 않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 순간 커다란 벌레가 나타나 그녀가 얼음처럼 굳었는데,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벌레 앞에 약해지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우리는 비건 빵집에서 잠시 만나려던 계획이 7시간의 데이트로 이어졌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너무 빨리 흘러갔다. 무더운 여름날의 갑작스러운 만남, 우연이었지만, 그날은 우리의 관계를 더 깊고 특별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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