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빠진 이유 ② - 아름답고, 지적인 모습
내일 직장 일 때문에 저녁 어려울 것 같아서 둘이 보래 ! 내일 몇 시에 올 수 있어?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던 지인이 시간이 어려워 둘이 보라고 했다. 우리 둘이서만 본다는 생각에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학교에서 브리또를 먹을 때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헤어져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었고, 단 둘이서 식사 자리는 처음이었기에 설레면서, 떨리기도 했다. 그녀는 비건 맛집을 많이 알고 있었고, 식당 3곳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그중에서 각자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플랜튜드 코엑스점'을 선택했다.
약속 당일, 그녀와의 약속에 늦고 싶지 않아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기다렸다. 사람들이 출구로 나올 때마다 그녀일까 하는 생각에 시선이 출구로 향했다. 마침내 그녀가 나왔고, 평소와 다르게 안경을 쓴 모습이 마치 영화 '밀정'의 전지현 씨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답고, 지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우리는 식당에 5시 30분 즈음에 도착했는데 거의 8시 30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대략 3시간 동안 이야기했는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했다. 우리는 전시회 이야기,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 오기 전에는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공연이나 전시 관람을 종종 다녔지만, 함께 갈 친구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회화 전공인 그녀와의 대화는 더없이 즐거웠고,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비건이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2020년, 코로나 19로 개학이 연기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밥을 해 먹게 되었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건강하고 올바른 먹거리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먹거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보게 되었다. '육식의 반란'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닭들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육식을 경계하게 되었다.
개학 이후, 급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비건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고, 대학 입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어서 비거니즘은 잠시 뒤로 미뤘다.
대학 입학 이후, 자취를 하면서 비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비건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아 비거니즘 실천을 계속 미뤘다. 그래도 대학에 입학했던 2022년부터 비건페스타를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그곳에서 알게 된 비건모임에도 참여를 했다. 2023년 겨울에 비건모임에서 다른 대학 비건동아리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2024년 1학기에 내가 그 학교로 학점교류를 가면서, 비건동아리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비거니즘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실천도 하고 있었다.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수도 있음에도 실천하는 그들의 용기가 멋있었다. 그래서 나도 다시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비건이 된 이유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비건인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여겼다고 했다. 그러다 가족들에게 갈비찜을 해주고 싶어 고기를 사다가 손질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고, 그때부터 베지테리언의 길을 걷다가 3년 전부터 비건이 되었다고 했다.
식당을 나서며 나는 요가 이야기를 꺼냈다. 2020년 채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했던 요가를, 2021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녀도 요가와 인센스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요가를 좋아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녀도 요가를 좋아한다니 너무 기뻤다. 2021년 요가를 한참 즐길 때, 운영했던 나의 SNS 요가 계정도 보여주었다. 내가 처음에 요가 인스타 계정이 있다고 했는데, 그녀는 내가 '요가 개 잘해'라고 말하는 줄 알고 당황했다고 했다. 그녀의 귀여운 반응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우리는 식사 후 계산을 하러 갔는데. 당시 나는 통장에 3만 원 밖에 없었다. 그녀가 4만 원 정도의 세트 메뉴를 시키자고 해서 주문할 때, 고민했었는데, 그녀가 좋은 일이 있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가 함께 밥을 먹으면, 남자가 계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좋은 일이 있다며 밥을 사주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도 다음에 좋은 일이 생기면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다.
2차를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나는 봉은사역에서 타는 것이 더 빨랐지만,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삼성역으로 걸어갔다. 그 당시에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불편함을 줄까 싶어 지하철 역에서 인사를 나누고, 그녀와 다른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함께한 시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 둘이서 나눈 첫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지인의 일이 빨리 끝나 둘이서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배려와 따뜻함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