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3.7km 시작

by 집녀


“하악 하악”


숲 속에 울려 퍼지는 신음소리. 얼굴은 시뻘게졌고 숨은 추할 정도로 내뿜는다. 방금 약간의 경사 길을 올라온 참이었다. 맨투맨 셔츠는 진즉에 벗어서 허리에 둘둘 말았다. 안에 받쳐 입은 기능성 티셔츠는 흉하게도 겨드랑이와 브래지어 라인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공원이라 평지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경사길이 적당히, 아니 많이 섞여 있는 곳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 하지만 시작과 함께 포기라는 단어가 계속 따라붙는다.


‘8자형, 한 바퀴 거리 3.7km.’


3.7킬로미터의 갈래 길 많은 이 공원의 산책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더위가 빨리 찾아온다는 미국 남부지방이지만 바람은 아직 차다. 3월 중순 아침, 미국 조지아 주의 한 공원 입구에서 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섰다 오늘 처음으로 작정하고 공원 걷기에 나선 것이다.


공원 안내 지도를 처음 봤을 때 ‘이 정도쯤이야’ 라며 자신했다. 무엇보다 갈래 길이 많았다. 여차하면 돌아갈 수도 있다. 여지없는 직진 길만 계속된다면 시작조차 망설였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한번 시작하면 돌아갈 수 없다. 반대로 갈래 길은 고민의 연속일 것이다. 힘들면 포기하고 싶어 지고, 쉬운 길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8자형' 공원 지도

어찌 됐든 체력을 믿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8자형 코스가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3.7km는 적당한 운동량을 제공하는 최적의 코스다. 무엇보다 공원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은 없지만 무서울 정도는 아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책코스의 풍경을 기대하며 시작에 나선다.



‘한 바퀴는 돌자. 한 바퀴는 돌 수 있잖아. 너는 한 바퀴도 못 도는 의지박약 인간이 아니다’


몸이 힘들면 생각도 없어진다 하던데, 몸은 되레 말하기 시작한다. 종아리 근육이 나무라고, 발가락 물집이 욕을 한다. 생각은 뇌세포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없던, 아니 몰랐던 존재감을 드러내며 내게 말을, 아니 욕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왜 안 하던 짓을 하냐고 몸 세포들이 봉기해 욕을 해대고 있다. 가장 시끄러운 폐는 온갖 신음소리를 만들고, 가장 거칠게 저항하는 심장은 얼굴에 피를 끌어 모은다. 달리기도 아니고 걷는데, 등산도 아니고 걸을 뿐인데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선택의 폭은 좁았다. 달리기와 걷기 단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달리기는 생각과 동시에 포기했고 결국 선택이랄 것도 없이 걷기 운동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쉽게 한다는 운동이라는 걷기 운동, 그마저도 내겐 큰 산과 같았다.


하지만 첫 발을 디뎠다.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