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 만리타향서 외출금지령이라니

by 집녀

눈이 저절로 떠진다.


오늘은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아침 공기를 들이쉬자 확신이 든다. 이번 걷기는 결코 작심삼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왜냐면 난 지금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공원 내 개울

이름마저 명백하게 정의 내린 그 ‘아름다운 나라 미국’. 하지만 미국은 호락한 아름다움으로 위로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에 들어온 지 8개월째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것이다.


‘생계와 건강에 직결되는 일이 아니면 외출금지’


나의 삶에도 고통이 닥쳤다.

한국과는 달리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친구 집에도 갈 수 없고 카페에도 갈 수 없고, 음식점에도 갈 수 없다. 무작정 집에만 있어야 한다. 다양한 삶을 누려보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 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돈 많은 유학생들은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항공권이 얼마가 됐든 상관없다. 유학 보내 준 능력 있는 부모들에게 항공권 가격은 문제가 안됐다. 귀한 아들 딸이 만리 타향에서 고생하는 것을 볼 부자 부모들은 없다. 하지만 난 갈 수 없었다.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돌아가기 싫었다. 이런 어려움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하도 많이 당해봐서 웬만한 맷집은 생겼다. 버틸 것이다. 버티다 보면 기회는 올 것이다. 다시 상황이 좋아져서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래부터 ‘격리*고립’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부정적인 말이지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좋은 의미가 될 수 도 있다.


‘회사 일로 섬마을에 갔는데 폭풍우로 고립돼 나올 수가 없는 상황= 일을 당당하게 안 할 수 있다’.

‘멋진 남자와 산장에 갔는데 눈이 많이 와 고립됐다=없던 로맨스도 생긴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내게 고립과 격리라는 의미는 긍정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멋진 남자와 격리된 것도 아니고, 일 안 해도 핑계가 되는 상황이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국에 온 김에 여행을 다녀보겠다는 거창한 계획도 물거품이 될 판이다. 숨 막히다고 미국까지 왔는데 숨 막히는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다니.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신의 팔자를 한탄했다.


한국에서는 병이 있지 않고서는, 의심되지 않고서는 외출금지가 아니다. 권고다. 하지만 미국은 증상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조건 외출금지라는 차원이 다른 명령이었다. 단 예외는 있다. 생필품 사러 가는 것, 위독한 가족 방문, 병원 방문. 그리고 산책과 필수적인 운동. 운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바깥에 나가기 위해 운동이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그 운동 범주에 드는 것이 바로 달리기와 걷기다.


걷기 운동을 선택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바깥공기를 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상쾌한 공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내딛는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은 작심삼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끝낼 수도 없다.


나는 지금 걷기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