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20년 직장생활, 1년의 휴식

by 집녀


둘째 날이다.


걷기 운동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다.


첫날 운동의 상쾌함이 예상보다 컸다. 근육통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 벅차다 느낀 것은 그동안 운동부족 때문이었다. 어제 코스를 한번 돌아봤으니 오늘은 헤매지 않고 걷기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이 좋다. 걷기 운동을 통해 뭔가 해낼 것 같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 할 일이 있어서 나선다는 게 기분이 좋다.



공원의 아침 풍경

처음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운의 시대, IMF가 닥치면서 취업난은 심해졌다. 있던 사람도 자른다는 시대. 각 회사마다 입사 경쟁률은 엄청났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 기쁨도, 설렘도 컸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기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십 년 차가 다 되어간 지금은 실망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지위와 어느 정도 연륜과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직장 3년 차, 7년 차, 10년 차 고비가 있다.

알고 보니 난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위기의 시기마다 용케 견뎌 냈다. 용기와 능력이 없기에 가능했다. 회사를 때려치울 용기와, 다른 좋은 회사로 옮길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돈을 버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합리화시켰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 아니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악착같이 다녔다. 그런데 40대가 되자 달라졌다. 흔히들 40대는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한다. 난 40대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집에 있다 순간 갑갑함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갑갑함이 심해지자 숨을 못 쉬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여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라 문단속과 안전에 민감했다. 하지만 그 날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낯선 사람보다 산소부족에 대한 공포가 컸다. 참다못해 집을 뛰쳐나갔다. 10평 남짓한 오피스텔 안에서 1분이라도 더 있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8층에서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무작정 향한 곳이 집 근처 공원이었다. 숲, 숲이 내뿜는 산소가 필요했다. 푸른 나무를 보고서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한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게 바로 공황장애인가’


처음 겪은 공황장애는 이후에 자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살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무작정 그만둘 수 없었다. 당장 살고 있는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 인생의 실패가 고스란히 역사로 쌓여 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곳으로 피신하고 싶었다. 그래서 땅덩어리 넓다는 미국으로 가려했다. 그나마 영어는 할 줄 아니까. 어린 시절 로망이었지만 못했던 그 유학생활을 뒤늦게라도 하며 보상받고 싶었다.


기회가 왔다. 아니 기회를 잡았다. 회사를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연수를 가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1년 동안 쉬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많은 사람이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노력했다. 주말에 매일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연수계획을 세웠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었다. 장장 2년 동안의 치밀한 준비 끝에 언론재단에서 지원해주는 연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노력과 기회의 결과가 지금 미국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어처구니없는 게 아닌가. 유명한 관광지나 휴양지를 걷는 것도 아니다. 동네 산책길을 걷는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걸어야 해’


마음을 다시 잡는다. 왜냐면 난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