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다. 로판.즉 로맨스 판타지다. 남자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이다. 남자 친구란 단어가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멋진 남자 친구랑 같이 매일 산책을 하고 싶다. 조곤조곤 얘기도 하고 서로 힘내라고 격려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여주면 잠시 착각은 가능하다.
걷기 운동과 함께 선택한 ‘목소리 남자 친구’는 김동률이다. 저음의 울림으로 귓가에 쉴 새 없이 사랑을 속삭여준다. 신뢰를 주는 목소리. 사랑이 거짓이 아닐 남자다. 김동률의 노래 전곡을 수십 번 연속해서 들었다. 듣다 보니 그의 사랑이 식상하기 시작했다. 남자를 바꿨다. 폴 킴이다.
김동률이 묵직한 저음이라면 폴 킴은 부드러운 중고음이다. 김동률이 묵묵히 옆에서 지켜줄 타입이라면 폴 킴은 웃으면서 말 걸어주는 다정한 타입이다. 김동률이 듬직한 오빠 같은 타입이라면 폴 킴은 귀여운 막내 동생 느낌이다. 타입을 바꾸니 감흥도 달랐다.
내게는 남자와 관련한 로망이 있다. 남자가 날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모습을 상상했다.
됐다 여기서 그만.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지금까지로도 족하다.
손을 잡고 걸을 남자가 없다. 현실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남자를 납치할 수도 없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운동밖에 없다.
운동밖에 할 것이 없다면 운동하다가 인연을 찾자. 사고를 전환했다. 공원에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할 일 없고 헬스장에도 가지 못하는 남자들이 공원으로 물밀듯이 나오지 않을까. 미국 헬스장은 문을 다 닫았다. 멋진 몸을 자랑하던 남성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들에게도 운동할 곳은 집 아니면 공원뿐이다.
이렇게 매일 산책하다 마주치면 그런 남자들을 만나지 않을까? 만나고 또 만나고 우연이 겹치면 운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다. 가능성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귓가에 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는 만날 남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남자는 산책하다 몇 번 눈을 마주칠 것이다. 계속 마주치면 남자가 신경 쓰게 된다. 난 그런 남자에게 무심한 듯 웃음을 준다. 그다음에는 목례를 한다. 다음은 손 인사. 이렇게 3번 정도 해주면 남자가 용기를 내주겠지? 남자는 말을 걸 거다.
나의 걷기 운동에 파스텔 톤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