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이 굽었다.
거북목에 이어 말린 어깨 즉 거북 등이다. 이런 구부정한 자세는 자신감과는 멀어 보인다. 실제 자신감이 없다. 가슴과 등을 꼿꼿하게 펴는 것은 살아온 나날과는 반대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내게도 그 시기가 왔다. 가슴이 미세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애매한 그 봉긋함이 당황스러웠다. 체육시간이 곤욕이었다. 달리기 할 때 가슴 자국이 드러나면 남자애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놀림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슴을 펴지 못했고 덩달아 등도 굽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등이 굽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여자 중학교에 다녔기에 가슴을 움츠릴 일이 없었다. 친구를 따라 하면서다.
같은 반 ㄱ을 좋아했다. ㄱ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구부정하게 걷는 뒷모습. 그게 매력적이었다. 어수룩하게 보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ㄱ는 똑똑하고 인기가 많았다. 그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구부정하게 걷기 시작했다.
혹시 그 감정이 사랑이었을까? 여자를 좋아한 것이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건 이성적인 감정은 아니다. 선의의 라이벌 의식이지 않았을까. 정작 상대방은 그리 생각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직도 그 감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때 이후로 더욱 움츠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사회생활하면서 구부정한 자세는 고착화됐다. 어디서나 당당하지 못함. 어디서나 위축된 모습이 평소 모습이었다.
항상 듣는 소리였다. 기가 죽었고 자신감이 없었다.
자세를 교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몸이 이상해지면서부터다.
어느 날 허리라인이 불균형하다는 것을 거울을 보고 느꼈다. 목에 자주 담이 왔다. 어깨도 아팠다. 건강검진에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몸이 비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세워달라고 온 몸이 아우성치고 있었는데 묵살한 죄다. 원래대로 고치기는 늦었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걷기 운동할 때는 가슴을 활짝 열어 어깨를 펴고 등을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 잘못된 자세는 걸을수록 허리와 어깨, 목에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그 사실을 알고 제대로 동작을 해보려 노력했다. 수십 년 동안 굽었던 등이 일순간에 펴지기 만무하다. 하지만 최소한 걸을 때만큼이라도 자세를 똑바로 취하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문제가 뭔지 아는 것이 문제가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걷기는 매 순간 자각하게 해주는 동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