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차 /만 보, 7.5km의 시작

by 집녀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



만보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만보라는 수치는 건강의 척도로 여겨진다.

요즘은 스마트 폰만 있으면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다. 스마트 폰 자체에 저장된 헬스 기능에서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보여준다.


3.7km를 걸으면 대략 6 천보가 나온다. 십여 일 운동을 계속하자 욕심이 생겼다.

상징적인 의미인 만보는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보를 걷기 위해서는 적어도 3,7km 코스를 두 바퀴는 돌아야 답이 나온다.


'그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만보로 가자!'


한 바퀴 돌고 집에 가던 일정을 수정하고 다시 똑같은 길을 한 바퀴 더 돌기 시작한다.

7.5km, 즉 만 보를 향한 첫 시작이다.


20200409_094426.jpg '으쌰 으쌰' 나를 보며 힘을 낸다.



헬스장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운동 기구들은 사용하기 귀찮아 러닝머신만 이용했다.

하루 4km 걷는 것이 목표. 하지만 그 마저도 힘들어 3km로 낮췄다.


‘그만큼 걷는 것이 어디냐. 포기하지 않고 매일 걷는 것이 어디냐’


위안을 삼았다. 그러던 내가 평생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목표를 두 배로 갑자기 올리면 무리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3.7km를 꾸준히 걸은 덕에 어느 정도 체력이 생겼나 보다. 두 바퀴를 다 돌아도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가능한 수치라는 생각에 힘을 냈다.


두 바퀴를 도니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한 바퀴만 돌고 가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두 바퀴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느린 걸음으로 젊은 나 보다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할 일이라고는 집에서 밥 먹고 낮잠 자는 것 밖에 없었다


'어디 갈 일도, 할 일도 없는데 왜 진즉에 두 바퀴를 돌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한 바퀴를 도는 것도 큰 도전이긴 하지만 말이다.


목표를 처음부터 높이 잡는 실수는 그동안 많이 했다. 공부할 때 그랬다.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열심히 하면 될 것을 괜히 열 페이지 하겠다고 세워놓고 미리 포기했다. 아주 적은 양이라도 매일매일 성취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매일 3.7km를 걷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공원까지 나와서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씻지 못해 포기, 씻어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빈둥거리다 포기. 곳곳에 포기할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 그 많은 포기의 경우수를 버리고 공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생각해야 한다.

그런 내가 이제 한 바퀴가 아닌 두 바퀴를 걷겠다는 것이다.


두 바퀴를 돌면 걸리는 시간은 시속 5km로 계산하면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한 시간 반. 운동에 전념하기에 한 시간 반은 지겨울 수도 있는 시간이다. 요가나 필라테스, 탁구, 수영 등 대부분의 운동이 한 시간 기준으로 운영되는 것을 봤을 때 말이다. 한 시간도 시계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한다. 되레 한 시간 반 하려다 지겨움에 금방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내서 운동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 난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운동조차 하지 않으면 바깥에 나올 일도 없다.

한 시간 반의 탈출이라고 생각하자. 좁디좁은 방구석 감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하자.


앞으로 만보, 7.5km를 꾸준히 걷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