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차 /아침 7시, 마트에 출근도장을 찍다

by 집녀

아침 6시 반, 알람 소리에 깬다.


바깥은 어둡다. 아침운동을 시작하기 두 시간이 남았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대충 한다. 크림을 잔뜩 바른다. 선크림은 바르지 않는다. 집에 올 때쯤에야 날이 밝아질 테니. 부스스한 머리를 감추기 위해 캡 모자를 뒤집어쓴다. 옷은 운동 때보다 좀 더 두꺼운 옷을 선택한다. 무장 완료. 3월 중순이어도 새벽 공기는 차다. 문을 열면 어둠이 기다린다.


사흘째 이 짓을 계속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열흘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 시동을 켜고 도착한 곳은 월마트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월마트. 매일 아침 7시. 월마트 개점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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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하나다.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사는 것이다.


그동안 출근 도장 찍듯이 찾았지만 매번 실패다. 그래도 도전한다. 얼마 전에 손 소독제만큼이나 귀하다는 알코올을 손에 넣고 용기가 생겼다. 계속할수록 뭔가 하나는 건지겠지.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기억이 없다. 원하던 물건을 사기 위해 개점시간에 맞춰 간 적도 없다. 명품은 물론 리미티드 한정판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줄을 선다는 것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내가 문 열기가 무섭게 월마트에 뛰어 들어간다. 그것도 발에 차이던 화장지를 사기 위해서라니. 코웃음 칠 일이 아니다.


생존이다. 지금 두루마리 화장지가 몇 개 안 남아 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동안 3칸으로 쓰던 것을 2칸으로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숨이 났다. 물자가 풍부하고 싸다는 미국에서 화장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 화장지 선반이 텅 빈 것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 날은 트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다음 날이었다. 전날까지도 선반에 가득했던 화장지와 생필품 등은 트럼프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트럼프의 한 마디에 월마트가 텅 비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트럼프의 입이 무서웠다. 대책 없는 입. 어제와 오늘이 다른 입. 같은 입에서 다른 말을 하는 저 입!


트럼프의 얍삽한 입을 처 막고 싶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바이러스 하나로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처절한 현실을 마주하며 놀라웠다.


나는 미국의 상징을 냅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냅킨을 과용하는 나라다. 피자 한 조각에 냅킨이 수십 장이 딸려 온다. 풍요로운 미국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미국에 휴지가 없다.


사라진 또 하나는 손 소독제다. 과연 손 소독제를 팔던 시절이 있었나. 마트에 진열된 손 소독제를 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 손 소독제의 그 투명하고 차가운 감촉. 적당한 농도에서 찰지게 녹아내리던 느낌. 그립다. 격하게 느끼고 싶다."


월마트에 도착해 바로 생활용품 코너로 달려갔다.


오늘은 있으려나. 멀리서 바라본 화장지 판매대는 텅 비었다. 가까이 갈 필요도 없다. 바로 방향을 돌린다. 저 멀리 또 다른 텅 빈자리가 보인다. 손 소독제 자리다. 오늘도 가장 사고 싶었던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사지 못했다. 허탕 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갈색 플라스틱 병이 보인다.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빼 간다.


'뭐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집는다. 선 선택, 후 생각.


‘hydrogen peroxide topical solution' 무슨 괴상한 말이지?


인터넷 검색을 하자 그제야 뭔지 알았다.


'과산화수소! 근데 과산화수소가 대체 뭐지?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과산화수소의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독! 방역! 연관 검색어에 뜨는 말로 이해가 됐다. 돌아보니 1병도 안 남았다. 망설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 천천히 다시 검색해보니 변기, 핸드폰 소독도 가능하고 알코올보다 소독 기능은 오히려 낫다는 말도 있다.


‘휴~~ 하나 건졌네’


용도도 몰랐던 과산화수소를 사람들에 이끌려 구매했다.


20200403_082140.jpg 영광의 득템. 흰 통은 알코올, 갈색 통은 과산화수소


집에 돌아온다. 걸음 수 측정기를 보니 1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매장 안에서만 걸은 거리다.

미국은 사재기가 난리다. 헛웃음이 났다.


'물건이 있어야 사재기를 하지!'


한국에 돌아가면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원 없이 사리라 다짐한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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