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어둡다. 아침운동을 시작하기 두 시간이 남았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대충 한다. 크림을 잔뜩 바른다. 선크림은 바르지 않는다. 집에 올 때쯤에야 날이 밝아질 테니. 부스스한 머리를 감추기 위해 캡 모자를 뒤집어쓴다. 옷은 운동 때보다 좀 더 두꺼운 옷을 선택한다. 무장 완료. 3월 중순이어도 새벽 공기는 차다. 문을 열면 어둠이 기다린다.
사흘째 이 짓을 계속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열흘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 시동을 켜고 도착한 곳은 월마트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월마트. 매일 아침 7시. 월마트 개점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그동안 출근 도장 찍듯이 찾았지만 매번 실패다. 그래도 도전한다. 얼마 전에 손 소독제만큼이나 귀하다는 알코올을 손에 넣고 용기가 생겼다. 계속할수록 뭔가 하나는 건지겠지.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기억이 없다. 원하던 물건을 사기 위해 개점시간에 맞춰 간 적도 없다. 명품은 물론 리미티드 한정판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줄을 선다는 것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내가 문 열기가 무섭게 월마트에 뛰어 들어간다. 그것도 발에 차이던 화장지를 사기 위해서라니. 코웃음 칠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동안 3칸으로 쓰던 것을 2칸으로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숨이 났다. 물자가 풍부하고 싸다는 미국에서 화장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 화장지 선반이 텅 빈 것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 날은 트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다음 날이었다. 전날까지도 선반에 가득했던 화장지와 생필품 등은 트럼프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트럼프의 한 마디에 월마트가 텅 비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트럼프의 입이 무서웠다. 대책 없는 입. 어제와 오늘이 다른 입. 같은 입에서 다른 말을 하는 저 입!
미국의 자본주의가 바이러스 하나로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처절한 현실을 마주하며 놀라웠다.
나는 미국의 상징을 냅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냅킨을 과용하는 나라다. 피자 한 조각에 냅킨이 수십 장이 딸려 온다. 풍요로운 미국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미국에 휴지가 없다.
사라진 또 하나는 손 소독제다. 과연 손 소독제를 팔던 시절이 있었나. 마트에 진열된 손 소독제를 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월마트에 도착해 바로 생활용품 코너로 달려갔다.
오늘은 있으려나. 멀리서 바라본 화장지 판매대는 텅 비었다. 가까이 갈 필요도 없다. 바로 방향을 돌린다. 저 멀리 또 다른 텅 빈자리가 보인다. 손 소독제 자리다. 오늘도 가장 사고 싶었던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사지 못했다. 허탕 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갈색 플라스틱 병이 보인다.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빼 간다.
생각하기 전에 먼저 집는다. 선 선택, 후 생각.
인터넷 검색을 하자 그제야 뭔지 알았다.
과산화수소의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독! 방역! 연관 검색어에 뜨는 말로 이해가 됐다. 돌아보니 1병도 안 남았다. 망설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 천천히 다시 검색해보니 변기, 핸드폰 소독도 가능하고 알코올보다 소독 기능은 오히려 낫다는 말도 있다.
용도도 몰랐던 과산화수소를 사람들에 이끌려 구매했다.
집에 돌아온다. 걸음 수 측정기를 보니 1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매장 안에서만 걸은 거리다.
미국은 사재기가 난리다. 헛웃음이 났다.
한국에 돌아가면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원 없이 사리라 다짐한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