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차/ 인간관계 정리가 되다

by 집녀

나는 혼자 걷는다.


정부도 혼자 운동하기를 권장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다. 가족도 두 명 이상은 동시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말을 잘 지킬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해 보인다.


그중 친구끼리 운동 나온 사람들이 있다.

매일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친구라... 부럽다. 친구랑 운동을 같이 한다면 힘든 것도, 지루한 것도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지금 아무도 없다.


미국에 오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일부러 정리한 것이 아니다. 하다 보니 그리 됐다. 인간관계는 필요에 의한 관계가 대부분이고 좋아서 만나는 관계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필요에 의한 관계들은 회사를 쉬면서 자동적으로 정리가 돼 버렸다.

회사 사람들, 일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일로 만났어도, 회사 사람이었어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마음을 준 사람들이다. 친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게 됐다. 그들에게 난 그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과 관계를 가지면서 기대를 하지 말자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바라지 않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밥도 사주고, 시간도 함께 보냈다.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들이 멀리 떠나자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


물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일이 바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관계에 결벽증도 있다. 진심으로 대하자는 결벽증.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결벽증. 회사 일에 있어서도 동료에게, 후배에게, 선배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몫을 해내지 않으면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남의 시선이 두려웠고 남의 평이 두려웠다. 화낼 줄도, 똑 떨어지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살던 삶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음을 줬던 사람마저 연락이 소원하니 깨닫게 됐다. 그냥. 일로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의 삶은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성공도, 사람도 얻지 못하고 이십 년 가까운 삶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패배자'


그 인생의 패배자가 도망치듯 미국에 와서 한다는 일이 고작 걷기 운동이다.

한국에서도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기 위해 굳이 미국까지 온 셈이 되어 버렸다.


오늘따라 걷기 운동이 너무나 버겁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발걸음이 무겁다. 걷기 운동이 신나지가 않는다. 생각이 많아 몸이 무거워졌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