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차/ 그가 나타났다

by 집녀

오르막을 걷던 찰나였다.


숨이 차서 땅바닥만 보다가 고개를 든 순간, 몇 미터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봤다.

얼핏 봐도 키는 185cm는 넘어 보였다. 나의 시선은 빠른 속도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튼튼한 다리 근육, 상체로 올라가니 운동을 좀 했음직한 팔뚝 근육이 보인다.

긴팔, 긴바지를 입어도 감출 수 없는 훌륭한 보디라인이다.


얼굴은 말해 무엇. 이상형이다!

미국에 온 지 몇 개월 만에 가장 잘 생긴 남자를 본 것이다.


‘심봤다!’


그동안 기대를 버렸다. 지난 이십일 남짓 운동을 하면서 만난, 아니 지나쳐 본 사람들이라고는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빼먹지 않고 매일매일 운동하러 나오신다.


젊은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헬스장 대신 공원을 찾기를 기대했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라며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그를 본 것이다.


내가 나가는 공원은 8자 코스다. 돌다 보면 마주친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집중해서 다시 보자.’


결국 잘생긴 산책남을 또다시 마주하게 됐다. 이번에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지만 다시 봐도 잘 생겼다.

쾌재를 불렀다.


‘신은 이러려고 내게 걷기 운동을 시킨 것이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간을 봤다. 오후 4시 40분. 내일도 이 시간에 오기로 했다.


나는 아침운동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아침운동을 못했다. 그래서 오후에 나왔는데 행운이 걸려든 것이다. 이제부터 운동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침에만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오후에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나도 오후에 운동을 해야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아침운동의 상쾌함을 포기할 수도 없다. 포기하기 싫었다.


‘그래 하루 두 번 운동하자’


결심했다.

아침저녁 운동량을 늘려서 더욱 건강해지고 멋진 남자 친구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어차피 나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생겼다. 걷기 운동을 하며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

한줄기 빛이 느껴졌다.


‘신에게는 계획이 다 있구나.’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