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차/ 15km, 2만 보 시작

by 집녀

오전에 두 바퀴 7.5km를 걷는다.

여기에 오후에도 또 한 바퀴 3.7km를 돈다. 우연히 산책남을 만나면서 운동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바퀴를 추가하기로 했다.

오전 두 바퀴. 오후 두 바퀴. 총 15km를 걷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 한 바퀴만 돌면 산책남을 최대 2번 밖에 마주치지 못한다.

마주치는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려면 몸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다.


'한번 돌 것을 두 번 돌자. 그럼 최대 4번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하루에 4번을 마주치면 존재를 알아주겠지.'


나의 15km 걷기 운동은 순전히 남자 때문에 시작됐다.

15km, 걸음수로 치면 2만 보 가까이 된다.

하루에 만보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하루에 2만 보가 된 것이다.


만보에서 2만 보로 넘어가는 데에는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걷기 운동은 하면 할수록 질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하면 할수록 더욱 운동량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운동에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내 삶을 더욱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골치 아픈 일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등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치면 나의 동기는 참으로 불순의 연속이다.


‘할 것이 걷기 운동밖에 없어 시작했고 남자를 보려고 더욱 열심히 하게 된 것’이다.


동기야 어찌 됐든 의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무 곳도 갈 곳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분노와 슬픔 무기력함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걷기 단 하나뿐이었다.

걷기를 한 것도 선택이긴 하다.

집에서 잠만 자고 드라마만 볼 수도 있었던 일이다.


미약하지만 선택은 선택이다.

그 선택에 집중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처음에 3,7km도 힘들었다. 하루 5 천보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2만 보를 내다보고 있다.


칭찬할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2만 보를 쭉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남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를 계속 볼 수 있다면 2만 보에서 3만 보도 갈 수 있다. 5만 보?

문제없다.


도가니를 포기하더라도 사랑을 쟁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