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두 바퀴 7.5km를 걷는다.
여기에 오후에도 또 한 바퀴 3.7km를 돈다. 우연히 산책남을 만나면서 운동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바퀴를 추가하기로 했다.
오전 두 바퀴. 오후 두 바퀴. 총 15km를 걷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 한 바퀴만 돌면 산책남을 최대 2번 밖에 마주치지 못한다.
마주치는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려면 몸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15km 걷기 운동은 순전히 남자 때문에 시작됐다.
15km, 걸음수로 치면 2만 보 가까이 된다.
하루에 만보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하루에 2만 보가 된 것이다.
만보에서 2만 보로 넘어가는 데에는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걷기 운동은 하면 할수록 질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하면 할수록 더욱 운동량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운동에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등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치면 나의 동기는 참으로 불순의 연속이다.
동기야 어찌 됐든 의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무 곳도 갈 곳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분노와 슬픔 무기력함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걷기 단 하나뿐이었다.
걷기를 한 것도 선택이긴 하다.
집에서 잠만 자고 드라마만 볼 수도 있었던 일이다.
미약하지만 선택은 선택이다.
그 선택에 집중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처음에 3,7km도 힘들었다. 하루 5 천보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2만 보를 내다보고 있다.
칭찬할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2만 보를 쭉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남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를 계속 볼 수 있다면 2만 보에서 3만 보도 갈 수 있다. 5만 보?
문제없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