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차/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by 집녀

나흘 내리 ‘산책남’을 봤다.

나는 잘생긴 남자의 이름을 ‘산책남’이라고 지었다.


처음 본 이후로 그도 매일 빠짐없이 산책을 나오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산책남을 마주친다.

하루에 2번 많게는 4번 마주치는 그 찰나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됐다.


그런데 긍정적 신호는 없다.

나흘 내내 마주쳤는데 시선 한번 주지 않는다.

물론 시선을 줄 만큼 내가 예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아니 스쳐 지나간지도 모르는 사람 일 수도 있다.


절망감이 들었다.

산책남의 얼굴을 정확히 보고 나서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딱 봐도, 아니 많이 봐도 20대 후반이다. 이러면 안 된다.

적어도 30대 중반은 되어야(그것도 물론 나와 많은 나이차가 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너무 어리다!'


극복해야 할 간극이 크다.

이 애틋한 운명도 눈으로만 하는 사랑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아까운 남자다. 말이라도 걸고 싶다!'


학생인지 직장인인지는 모르겠다.

한국 남자 같이 보인다. 교포는 아닌 것 같다. 아직 한국 본토 분위기가 묻어 있다.

그렇다면 잠시 외국에 나온 유학생인가? 공부만 하는 유학생이라고 하기엔 몸이 너무 좋다.

근육 단련이 잘 돼 있다. 그럼 헬스 트레이너인가? 미국에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러 온 것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말을 걸지 못하니 벌어지는 상상이다.


몇 번 봤지만 산책남의 특징도 파악했다.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손에 들거나 적어도 몇 번씩은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마주 보고 걸어오는 어색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핸드폰 보는 척을 하며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산책남은 핸드폰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오로지 걷기에 집중하는 남자.


궁금하다!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말을 걸고 싶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