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차/ 1일 1캔의 즐거움

by 집녀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도 많았다.

한국사회의 모든 친목 도모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게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나로서는 술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특히 남자 선배, 동료들은 여자 후배를 평가할 때 술을 능력과 동일시하는 말로 상처를 줬다.


‘와 그 애 진짜 대단하데. 술 장난 아니게 마시더라’

‘와 그 애 랑 같이 술 마셔봤냐. 보통내기가 아냐’


나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을 듣고 싶었다.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지 못해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는 그저 그런 애로 또다시 격하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 일만큼 술 마시는 능력이 중요한 사회였다.


그런 내가 요즘 1일 1캔의 즐거움이 생겼다.

맥주를 하루 한 캔 마신다는 것이 아니다.

1일 1 콜라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흔히들 쓴 술맛을 모르고 어떻게 인생을 논하냐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항변한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인생이 쓴데 더 이상 쓴맛을 봐야겠나!

그럴 바엔 단 맛을 보리다! ’


내가 있는 애틀랜타에는 코카콜라 본사가 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애틀랜타에 와서 마신 코카콜라는 맛이 달랐다.

더 진하다고, 더 톡 쏜다고 해야 하나? 원산지에서 사 먹는 음식이 제일 신선하고 맛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리적 요인이 클 것이다.

혼자서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게 생활하던 나였다.


'저녁 시간 씻고 침대에서 시원한 콜라 한 캔을 들고 따는 그 느낌이란!

청량하고 강한 탄산이 톡톡 쏘며 기도를 적시고 내려가는 그 느낌이란!'

콜라를 마시는 그 행위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하루를 끝내고 단 맛으로 보상해주는 느낌 말이다.


알코올 중독 증상 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혼술, 그것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콜라라고 위험하지 마란 법이 없다. 알코올 중독만큼 무섭다는 설탕 중독. 그렇다 나는 몇 달째 1일 1 콜라를 하기 시작하며 점점 중독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미니 사이즈 콜라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콜라를 잘 마시지 않았기에 한 캔은 언제나 3분의 1쯤 남겼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미니 사이즈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니 사이즈에 부족함을 느꼈다. 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355미리로 갈아탔다.

개수도 늘렸다. 월마트에서 파는 10개짜리 묶음을 사다가 코스트코에서 30개 대용량으로 샀다.


1일 1캔의 즐거움에서 그쳤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1일 2캔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콜라 사이즈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었다.

얼굴 크기만 한 콜라를 그것도 무한정으로 마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걸 사람들이 마시고 또 마시는 것을 봤다.

놀라움은 이제 일상으로 되어가고 있다.

나도 콜라를 통해 서서히 미국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콜라가 건강식품이 아닌 이상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치아부터 시작됐다. 밥을 먹을 때 아프지 않던 통증을 느꼈다. 칫솔질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콜라를 마시고 입을 잘 헹구지 않았던 것이다. 콜라의 부식 효과가 치아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뱃살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 캔 당 160칼로리. 얼마 안 될 것 같은 이 160칼로리가 몸속에 서서히 축적되기 시작했다.


1일 1캔, 1일 2캔의 즐거움은 걷기 운동하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보상심리로 더 당당히 콜라를 마셨다.

그런데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


그래서 1일 1캔을 포기했냐고?

아니 콜라를 소다수로 바꿨다.

무색에 0칼로리. 콜라만큼의 강렬함은 없지만 그래도 입안을 톡 쏘는 탄산은 남아있다.

물론 달달한 향신료가 주는 ‘착각 단맛’도 여전하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수는 없다. 서서히 바꾸면 된다.

콜라에서 소다수로, 그다음엔 몸에 좋은 생수로 천천히 바꾸면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