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날은 산책남과 하루에 4번 연속 마주친다.
그렇게 적금 들 듯이 얼굴을 들이댄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어도 진전이 없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산책남을 여러 번 마주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눈이 마주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산책남은 눈을 마주쳐 주지 않는다.
멀리서 마주쳐 걸어오는 날 봤을 수는 있다.
그런데 정작 얼굴을 인식할 정도의 거리에 오면 그는 항상 바닥을 보고 있다.
날 봐주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없을 때 걸으면서 연습까지 한 나였다.
혼자 생각의 성을 쌓았다.
생각과 함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자동적으로 행동이 튀어나오려면 오직 연습뿐이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용기 있는 여자가 미남을 얻다.
남자들은 생각 외로 부끄럼이 많고 용기가 없다. 남자들도 여자가 용기를 내 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용기까지는 못 내더라도 웃어주고는 싶었다.
나는 항상 기회 ‘놓치는’ 주의자다.
여행 가서 만났던 그 멋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왜 웃어주지 못했던가.
지하철 맞은 자리에 앉아있던 이상형 그 남자에게 왜 수줍은 눈웃음이라도 주지 못했던가.
그 모든 우연이 인연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데에는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내가 웃어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일 수 있다.
남자들이 대놓고 싫어할 수도 있다. 산책남이 그다음 날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 그가 눈을 마주쳐 줘야 한다.
그는 여전히 날 외면하고 있다. 난 그에게 안중에 없는 사람이다.
*효과적인 걷기 자세 요령
걷기 운동에서 자세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선처리도 중요하다. 시선이라 함은 몸의 지향성을 담고 있다.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면 몸은 앞으로 나아가되 무게 방향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구부정한 자세가 된다. 얼굴은 정면으로 향하되 시선을 정면에서 30도 아래로 향하게 두는 것이 좋다. 몸의 방향은 시선으로 결정된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