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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Dec 01. 2020

 마을이 학교를 살렸다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마을이 학교를 살렸다.

 들꽃피는 마을은 열 집이 같이 살고 있는데 그 중 다섯 집에 학령기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안성에서도 한참 들어온 시골이니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하나 했는데 마침 주변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분교가 있었다. 도시에서는 이해가 안가겠지만 분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특히 교사인 부모들이 더욱 그렇다. 학교 내부사정을 잘 아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쏟을 에너지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식구들은 학생 수가 적어 아이들과 교사의 접촉이 많은 분교를 원했다.

 마을 주변에 있는 분교는 전교생이 20명 내외인데 학생 수가 자꾸 줄어 폐교 위기에 있었다. 모든 농촌이 그렇듯 시골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이 들어가면서 간신히 폐교위기를 면했다. 그래도 마을 아이들로는 한 학년에 한두명 씩이라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아슬아슬해서 동네에 입학 대상자 명단을 확보해 찾아다니며 분교를 보내라고 독려하곤 했다. 학교의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운영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부모들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투여해서 목공수업, 자연생태교육 등을 하니 학교가 풍성해지고 아이들도 행복해했다. 시내에 사는데 일부러 분교로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부모도 생겨났다. 학예회 날이면 출근 안하는 마을 사람들은 같이 가서 구경도 하고 운동회 날이면 함께 김밥을 말아주기도 했다. 마을회관은 종종 학부모들의 모임 장소로 쓰였다.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자라난다는 건 참으로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만이 아닌 마을 어른 모두가 관심 가져주고 하다못해 지나가며 웃음을 주고받는 것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큰 ‘뒷심’이 생긴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문제 하나와 비교가 되지 않는 자산이 된다. 마을에 처음 이사왔을 때 앞집 하린이는 5살이었는데 엄마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쉬던 아빠가 주차장에서 아이를 안고 출근하는 마을 식구들을 배웅했는데 다 나가고 나자 “우리 식구들 다 나갔네”라고 표현했단다. 동생 하율이는 뒷산에 올라갔는데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아빠, 이거 구워서 마을 식구들이랑 나눠먹자.”라고 했다고 했다. 엄마 아빠만 알던 아이들이 함께 나누며 사는 게 좋은 줄 먼저 알게 되는 것 같다. 아파트에 살 때는 자주 아프던 아이들이 감기도 잘 안 걸린다.

 자연과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한 행복감을 경험하는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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