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파일
3년 만에 휴양지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에도 국내 여행은 여러 차례 다녔지만 코로나라는 상황에 위축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새삼스럽던지. 아이들은 깔깔대며 끊임없이 움직였고 뛰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해도 되는 우리 부부는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여행에서 아이들은 최우선순위이다. 여행지 선정에서부터 숙소, 일정 등 가족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최적화한다. 여행을 가야지 결심한 순간부터 느끼는 마음은 결혼 전이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물론 다르다. 기대와 흥분은 예전에 비해 미적지근해졌지만 나름대로의 기쁨이 있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며 현재를 충만하게 채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해 보기를 권한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라 어린 시절에 가장 멀리 가 본 곳은 강원도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여름휴가를 매번 갔는데 주로 계곡이나 바닷가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곳이 백담사이다. 전직 대통령이 머물기 전이었는데 그때는 계곡 아래에서 백담사까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구의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 가다 쉬다하며 백담사에 도착했는데 족히 3시간은 걸었던 것 같다.
가는 길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초입에는 손톱보다 조금 큰 청개구리들이 길에 쭉 깔려 있었다. 산길에 접어들자 아래로 보이는 계곡물이 짙디짙은 청록색이었다. 그동안 봐왔던 계곡물과 다르게 푸르고 무거워 보이는 물색을 신기해하니 맑고 깊어 그렇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당도한 백담사는 작은 절이었다.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시절이라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계곡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갖은 채소와 통조림 햄을 썰어 넣은 아빠의 고추장찌개는 일품이었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기억나는 장소는 낙산 해수욕장이다. 사촌 오빠와 함께 모래성을 쌓거나 웅덩이를 파 바닷물을 채우며 놀았다. 엄마는 중간에 한 번씩 불러 얼굴과 몸의 물기를 닦아준 후 바다색의 튜브에 든 살색 선크림을 듬뿍 발라주었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며 세상에 이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소리에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며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런 추억들은 기억 파일 속에 차곡차곡 자리 잡고 있다.
기억 파일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과 같았다. 소음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지 않지만 곧 나에게 닿을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기억 파일을 열었다. 술에 취한 아빠의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두방망칠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얼음처럼 박힐 때 특히 애용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하며 고추장찌개의 달큼하고 칼칼한 맛을 입안 가득 머금었다. 무채색의 버거운 현실이 잠시라도 희석되길 바랐다. 분명 뜨거웠을 해수욕장의 햇볕 아래, 나를 품듯이 감쌌던 그날의 공기를 소환했다. 그렇게 하면 나를 아프게 했던 두려움과 수치심의 뾰족한 모서리가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나온 길과 다른 삶을 살게 하려 노력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현실이 힘에 부칠 때 현실 부정이든, 응원이든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주변 소음에 거리를 두고 단단하게 자신을 일으키려 할 때 기억의 한 페이지가 유용하게 쓰임이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보면 목적이 뚜렷한 가족 여행이 비장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예쁜 장소에서 아이들이 웃는 모습만으로도 휴대폰을 꺼내 들어 '거기 잠깐 서 봐!’를 애원하며 흥분한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