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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Feb 17. 2023

쇼윈도

사는 게 재밌니

엄마 :  엄마가 나이가 드니 회사가 힘드네.
아들 : 그럼 작년에는 재미있었어요?
엄마 :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아들 : 그럼 그건 나이 때문이 아니에요.
엄마 : 그래?
아들 : 회사가 원래 재미없는 곳이에요.
엄마 : 네가 회사를 어떻게 알아?
아들 : 학교랑 비슷할 거 같아요.


아들과 산책을 하다 어쩌다 보니 고민 상담을 했다며 친구가 전해준 대화의 내용이다.

웃으며 듣는데 자잘한 깨달음이 여러 방향에서 몰려들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한 달에도 수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 부러웠던 친구이고, 다정하고 붙임성이 좋아 학교에서 핵인싸가 분명할 친구의 아들이었다. 물론 직장인의 고충은 꿈의 직장이라도 있을 것이고 모범생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가 당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직장과 학교가 재미없다고 뭉뚱그려 총평을 내린 점은 신선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었다.




한때는 나를 제외한 여집합의 모든 것들이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때라 그랬겠지만 외모, 환경, 성격을 비롯해 나와 다른 것을 움켜쥔 사람들은 나보다 뭐든 나을 거라 여겼다. 아르바이트에 학교에 욕심껏 새벽 청강까지 신청해 일주일에 수면 시간 20시간 정도를 채우던 일상에 지쳐 빨리 서른살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젊음은 기성세대에 비하자면 초라하고 가난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바라던 30대를 한참 전에 통과한 지금은 ‘이럴 줄 알았으면’이라는 하나마나 한 소리를 읊으며 과거의 나에게 아쉬움을 던지고 있다.


쇼윈도 안에 걸린 예쁜 옷을 탐내듯 다른 이들을 동경했다. 막상 매장에 들어가 입어보면 사이즈가 안 맞거나 나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비슷한 상황을 어리석게도 반복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출퇴근 없는 전업 주부가 부러웠고 간절히 바라던 아이를 늦은 나이에 출산했지만 키우면서 힘에 부쳐 젊은 부모들이 부러웠다.


직장을 관두며 글쓰기라는 오랜 꿈을 끄집어내는 바람에 시간을 쪼개야 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 집’에 예상되는 살림과 육아에 대한 기대치는 워킹맘에 대한 것보다 높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서도 성과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지만 읽고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조각난 시간들을 끌어 모아야 했다. 10년만 먼저 시작할걸 한탄하며 재능 없음을 자각하다가 밑 빠진 독에 무식한 물 붓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마음속 나침반의 뚜렷한 신호를 느끼고, 도파민이 무한 분비되나 싶게 감사하고 신나면서도 힘든 일관성 없는 시간들 속에 있다.




어느 날인가 아이를 학원에 올려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발견해 sns에 올렸다. 너의 여유로운 삶이 부럽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누가 봐도 기분 나쁠 내용은 아니었고 부러움의 진심마저 느껴졌지만, 억울했다. 쪼그려 앉아 안간힘을 쓰고 촘촘히 만든 주름들이 펴지는 것 같았다.


주부로서, 엄마로서, 습작생으로서 지금 하는 일들이 어떠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이 감정과 느낌들을 한데 끌어모아 담을 적절한 단어를 못 찾겠다. 분명한 것은 어느 때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경솔한 재단을 멈출 수 있어 다행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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