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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Sep 18. 2023

남매의 난

사춘기와 일곱 살

주말이 되면 우리 집은 하루 종일 목청 대결의 장이 된다. 남매의 싸우는 소리, 결국엔 누군가 악을 쓰는 통곡 소리, 이를 제지하는 남편이나 나의 목소리가 빗발치는 화살처럼 공중에서 뒤섞인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은 요즘 매사에 불만스러운 포지셔닝을 취하는 중이다. 우선 싫다는 태도는 기본 장착에 '왜 해야 되냐'거나 아니면 '나여야만 하는 거냐'의 뉘앙스를 억양에 잔뜩 머금은 짧은 대답부터가 그렇다. 집에서 엄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엄마한테는 아직 조심스러우나 아빠에게는 거침없어 남편은 말을 삼가고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딸은 본인도 느끼고 있는지

  "엄마, 나 사춘기인가 봐."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물으니 자꾸 화가 난다고 한다.


딸은 작년에 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엄마가 권해주는 책들은 한쪽으로 밀쳐 놓고 사춘기 관련 도서들을 섭렵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

사람마다 다르고 순하게 지나가는 사춘기도 있다, 사춘기를 핑계로 무례함을 당연시하는 꼴은 좌시하지 않겠다 등의 협박성 훈계는 당연히 딸의 귀로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다.


올해부터 슬슬 나보다 키가 큰 딸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고 얼핏 들어도 저희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작년과는 사뭇 달라졌구나 느꼈다. 세상에 재밌는 일 투성이인 듯 속없이 웃고 다니던 딸은 동생이 말을 시키면 튕기듯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 역시 누나이기에 동생이 성가신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비록 딸이 동생을 원하지 않았고 침 흘리며 기어 오는 아기를 보고 심각하게 여자애로 바꿔올 수 없냐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5년이라는 시간 차이는 남매 사이에 충분한 완충 작용을 해 주리라 기대했다.

이런 때도 있었다

문제는 누나가 뭐라든  아랑곳 않는 미친 일곱 살이다. 누나가 짜증을 낼수록 개구쟁이 일곱 살은 광대를 씰룩대며 짓궂은 장난으로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다 육탄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개입해서 둘을 안정시키면 좋으련만 닦던 냄비를 내려놓거나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려다 달려가 보면 한 명이 울거나 둘 다 울고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닌 것이 각자 자신의 입장을 울음 섞인 말로 토로하는데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어도 잘잘못을 가려줘야 한다. 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판결을 내리지만 말이다.


가끔 흐뭇한 광경이 없지는 않다. 요즘 짧은 영상으로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개다리춤과 통아저씨의 춤을 합쳐놓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춤을 둘이 신나서 출 때면 볼썽사납긴 하지만 웃음이 난다. 주말 저녁 둘째가 누나 침대에서 뒹굴며 책을 보다 둘이 닮은 자세로 잠든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찌 됐던 둘이 말을 안 할 때가 제일 예쁘다.


사춘기와 갱년기의 맞짱은 더러 들었지만 사춘기와 일곱 살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한 명은 무조건 삐딱하고 한 명은 잘 안 들린다.


주말은 특히나 평일에 바쁜 아빠를 놓고 보드게임이나 잠자리를 함께 하는 문제로 싸우는데 인기가 많아 좋겠다며 김 빠진 부러움의 말을 건네지만 평일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다.


괜한 시비와 말도 안 되는 어깃장, 빈정거림과 비난들을 듣고 있자면 대차게 팔 걷어붙이고 한 판 붙고 싶은데 저들이 내 새끼들이니 참을 수밖에 없어 머리가 울린다. 좋은 엄마는 못 되더라도 나쁜 엄마는 되지 말자는 육아관이라 남편과 주말 저녁 시원한 맥주를 기울이며 화를 삭일뿐이다.


내 기억으로 동생의 키가 나보다 커질 무렵 우리는 휴전에 들어갔고 지금은 아주 사이좋은 남매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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