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캐러멜화 단계에 따른 양파의 용도별 사용
설탕과 단맛에 관한 기나긴 두 편의 서론을 거쳐 여기까지 와 주신 독자분들께 무궁한 감사의 말씀과 그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TMI을 쏟아내고자 하는 욕망을 누르고 눌러 오늘은 어렵고 복잡한 조리과학적 지식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한다. 요리를 아카데믹 관점에서 공부할 때는 나 또한 어려운 화학 용어 따위를 앞세운 이론적 배경을 위주로 공부하긴 했지만, 요리사는 순수한 조리 이론을 주방의 수많은 변수와 통제들 사이에서 현실로써 구현해 내야 하는 기술자다.
요리에서 이론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론은 식품영양학자나 식품 R&D전문가에게 부탁을 드리고 우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내 요리가 더 맛있을까"에 집중하며 온전히 주방에 발을 붙이도록 하자. 요약이니 뭐니 한답시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니 오늘은 주방문을 박차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캐러멜라이즈 양파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틀린 말이다. 캐러멜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설탕에 열을 가해 갈색과 함께 복잡다단한 새로운 풍미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고기나 야채 등 팬에 구워내서 색깔을 내는 과정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마이야르 반응을 거쳐 마치 캐러멜처럼 갈색이 도는 양파가 품어내는 강렬한 단맛이 마치 캐러멜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살짝만 정리하자면,
(학술적 정의) 마이야르 반응
<지속적 가열에 의한 탄수화물 분자와 아미노산의 반응의 조합으로, 갈색으로의 단계적 변화와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강렬하고 복잡한 풍미를 생성한다.>
이러면 벌써 요리를 포기하고 싶어 지니까, 우리는 우리 식대로 다시 정의하자.
(우리식 정의) 마이야르 반응
<재료를 충분한 열에 익히면 색깔이 나는데, 이때 단순히 색만 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엄청 맛있어진다.>
<캐러멜라이즈 양파>
재료
1. 양파 (미리 만들어 보관해 둘 예정이라면 최소 8개 이상)
2. 올리브 오일 (없다면 식용유도 상관없음)
3. 소금
4. (중요) 충분한 시간 (정도에 따라 최소 40분 ~ 최대 2시간)
레시피
1. 양파를 최대한 얇게 썰어(중요) 소금, 넉넉한 올리브 오일과 함께 팬에 올린다.
2. (핵심) 원하는 색깔이 골고루 날 때까지(1), 바닥에 붙지 않도록 저어가며(2), 약불에 오래 익힌다(3).
1. (중요) 양파를 최대한 얇게 썬다.
손가락이 살짝 비칠 정도가 좋다. 칼질 연습에 가장 좋은 재료가 양파다. 요리학교 첫 시간에 다짜고짜 양파를 들이미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총괄셰프를 꿈꾸며 겸사겸사 칼질 연습을 해보자.
요리에서 두께는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캐러멜라이즈 양파 만들기 과정을 과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열을 가하면 양파가 천천히 수분을 뱉기 시작하고, 그 수분이 증발하면서 양파가 가졌던 맛 분자들만 바닥에 남게 되는데 그 분자들과 수분을 잃은 양파들이 다시 지속적으로 열을 받아가며 갈색을 내는 동시에 전에 없던 맛과 향이 '창조'되기 시작한다. "양파가 어떻게 이렇게 달 수가 있나?"라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양파를 두껍게 썰어 약불에 올려도 당연히 똑같은 화학적 과정을 거치긴 한다. 그러나 양파가 충분히 얇지 않은 상태로 불에 올려진다면, 결국 수분을 여전히 머금은 채로 색깔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면 이제 양파가 아삭아삭 씹히는 '양파 볶음'이 된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다.
팬에 얇게 썬 양파와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넣고, 소금을 같이 넣어도 좋다. 과학적으로 소금은 재료의 수분을 빨리 빼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여기서는 그 기능보다는 양파의 달콤함에 짠맛의 대조를 줌으로써 단맛을 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기대한다.
2. (핵심) 원하는 색깔이 골고루 날 때까지(1), 바닥에 붙지 않도록 저어가며(2), 약불에 오래 익힌다(3).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난의 과정이다.
캐러멜라이즈 양파의 핵심은 시간이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몇몇 똑똑한 요리사들은 빠른 완성을 위해 베이킹소다를 사용한 pH조절이나 전자레인지를 사용해 빠르게 수분을 먼저 빼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지속적으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불 조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들께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아무런 편법 없이 우직하게 불 앞에 서서 양파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좋아하는 노래도 옆에 틀어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도록 노력해 보자. 꿀팁은 나중에 배우는 것이다. 언제나 핵심적인 깨달음은 오래 걸리는 길에 있다.
첫 과정은 색을 내기 전에 양파의 수분을 빼는 작업이다. 중불로 시작한다. 오늘 이 배움을 위해 기꺼이 하루종일 불 앞에 서있겠다면 약불도 상관없겠지만, 정말 징글징글하게 오래 걸린다. 그러니 최소한의 불조절은 하는 게 좋다.
팬이 열을 받아 양파들이 익어가면서 드디어 수분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이때 뒤섞지 않으면 바닥의 양파들은 혼자서 열을 받아 이미 색을 내기 시작하고, 윗부분은 생생한 생양파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열심히 뒤섞자. 한참을 뒤섞으면 양파들이 수분을 방출하면서 흐물흐물해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대부분의 양파들은 수분을 내어놓고 동시에 바닥에 깔린 그 수분들이 증발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린다. 사용하는 양파의 양과 불조절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한 30분에서 50분 정도를 예상한다. 수분이 완전히 빠진 양파는 그 부피가 원래의 1/5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게 정상이다. 수분이 다 날아갔는지는 어떻게 아느냐? 팬에서 나는 증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체 과정에서 이 수분을 날리는 과정이 가장 지난한 과정이다. 이 관문을 극복하면 우리는 첫 번째 단계의 양파를 가지게 된다.
<1단계 양파> : 아직 갈색이 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수분이 제거된 상태로 부드럽고 순한 달콤함을 가짐
활용 : 부드러운 양파가 들어가는 모든 요리, 찌개류, 찜 등 야채의 순한 달콤함이 필요한 경우
요리의 전체에 튀지 않는 양파의 단맛과 안정감을 부여한다. 이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양파의 능력을 보여준다. 스페인 북부에선 보통 이 상태의 양파를 많이 사용한다. 수준 높은 맛을 내길 원한다면 그게 뭐가 됐건 양파가 들어가는 요리에는 최소한 이 정도 레벨까지 양파를 익혀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때부터 양파는 '가니시'의 역할을 넘어 '맛의 근간'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식의 맥락에서는 찌개나 국물류에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 무슨 짓을 해도 뭔가 '맛이 비었다'싶은 느낌이 들 때 있지 않은가? 보통 그 이유는 감칠맛이나 단맛이 부족해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다. 이때 다짜고짜 설탕 찾지 말고 이렇게 정성껏 볶은 양파 한 두 스푼 넣어 보자. 한번 해보시라. 된장찌개 맛집 사실 별거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1단계를 지나면 수분은 완전히 날아간 상태가 된다. 열심히 볶고 있는데도 더 이상 양파에서 김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이제 날아갈 수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양파가 색을 내기 시작한다. 양파의 색깔이 고르게 나도록 꾸준히 휘젓는 것이 중요하다.
색을 낸다는 의미는 맛의 관점으로는 '새로운 맛이 창조되기 시작한다'로 이해하면 편하겠다. 이 지점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은 냄새다. 코를 대고 킁킁 맡아보시라. 양파의 알싸함이나 풀향이 사라지고 이전에는 나지 않던 구수하고 은근한 달콤한 향이 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수분이 날아간 1단계 이후의 시간에는 이제 양파 부피의 변화는 거의 없다. 오로지 양파에 입혀지는 색깔의 변화만 있을 뿐이며, 이 색깔을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원하는가에만 관심을 두면 된다.
<2단계 양파> : 약간의 갈색을 띤 상태이며 수분은 거의 남지 않은 상태로 먹어보면 선명한 달콤함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전에 없던 새로운 풍미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함
활용 : 찌개나 수프, 파스타용 소스, 카레, 제육볶음 등 국물류나 양파가 직접 씹히는 요리
추천하는 레벨로써 가장 범용성이 높다. 이 상태부터의 양파는 요리의 맛을 조금 나아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차원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부여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사실 시작부터 1단계까지 도달이 가장 힘든 과정이므로 고생한 김에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해서 여기까지 완성하기를 바란다. 1단계와 마찬가지로 양파가 들어가는 모든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추천하는 음식은 파스타 소스나 카레 등 양파의 맛을 음식의 수분에 온전히 내어놓을 수 있으면서도 양파를 씹었을 때 달콤함이 잘 어울리는 요리들이다.
왜 혹시 예전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유명해진 제주도의 연돈이라는 가게가 있다. 방송에서 돈가스만큼이나 사람들이 카레가 그렇게 맛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별거 없다. 양파가 비밀이다. 딱 이 정도 수준까지 익힌 양파를 무지막지하게 넣는다. 집에서 한번 해보시라. 나중에 기회가 돼서 연돈에서 카레를 먹어보면 그대가 만드신 맛과 90% 정도 똑같은 맛이 날 것이다. 굳이 맛보지 않더라도 요리와 맛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예상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2단계를 넘어서 3단계까지 끌고 가는 것은 이제 가정식의 수준을 넘어 레스토랑의 영역에 가까워진다. 사진을 보시면 양파의 수분이 완전히 증발된 바람에 처음에 넉넉히 넣었던 올리브오일들이 고대로 바닥에 드러난다. 그리고 양파의 형태는 흐물흐물한 상태를 넘어 한 덩어리로 뭉쳐 거의 잼의 형태로 남아있다. 참고로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은 여기서 나아가 한참을 더 익혀 거의 완전히 짙은 고동색에 가까울 정도로 익힌다.
<3단계 양파> : 완전한 짙은 갈색으로 강렬한 달콤함과 동시에 풍성하고 복합적인 향미를 가진다.
활용 : 소스 및 스프레드, 볶음 고추장
그 많던 양파가 결국 네댓 스푼의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이 가성비 떨어지는 재료 어디다 쓰면 좋을까? 그 자체로 빵에 발라먹거나 해도 좋겠으나 그러기엔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좋은 요리사와 훌륭한 요리사를 가르는 기준은 요리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경제성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들어간 비용에 비해 손에 남는 게 너무 적다. 한 스푼에 거의 양파 1개 정도의 분량이니 말이다. 그러니 귀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 재료가 빛날 수 있는 최적의 맥락의 요리에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적어도 맛에 관해서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어디든 넣어보자. 특히 파스타나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에 넣어보시라. 이게 진정 내가 만든 요리인가 싶은 기분이 들 것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이 상태의 양파만 잘 활용할 줄만 안다면 가정에서도 웬만한 사 먹는 고급 양식들과 별 차이 없는 맛을 구현할 수 있다.
이 상태의 양파를 한식의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양도 적으며, 거의 찐득한 덩어리 수준으로 남기 때문에 직접 양파를 씹어먹는 요리보다는 소스류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볶음 고추장처럼 고기와 함께 한번 볶아내 고추장에 단맛과 감칠맛을 더하는 방법이 있다. 간장과 함께 한번 끓이고 갈아서 간장 소스를 만드는 것도 추천한다. 지난 두 편의 서사에서 특히 장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이 3단계 캐러멜라이즈 양파가 장에 필요한 단맛을 자연스럽게 보완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묻은 양파의 감칠맛과 녹진한 풍미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과정을 실제로 따라 해 보실 분이 몇 분 정도 되시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하루종일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어느 날, 집에 굴러다니는 양파들을 붙잡고 한 번쯤 이런 단순한 오후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단순한 재료에 시간이 덧붙여지면 어떤 결과가 생겨나는지 경험하는 것은 요리를 넘어 어떤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있다.
시간이 결정적 재료인 요리들이 있다. 시간이 주는 힘에 기대 맛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요리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보통 훌륭한 요리 뒤에는 많은 시간이 숨겨져 있다. 오늘의 사진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소위 말해 정말 단가 안 나오는 짓거리다. 순전히 맛을 위해 양과 시간 등 효율성을 포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단순한 양파가 보물(la joya)로 탈바꿈될 수 있다.
요리에 시간이 개입하는 과정이 길수록 여러 효소들의 상호작용과 다양한 화합물의 생성으로 훨씬 풍성하고 복잡한 맛들이 생겨난다. 치즈나 와인이 오랜 숙성을 거치며 맛이 드는 원리이다. 저온에서 오랜 시간 아주 천천히 익힌 김치나 장이 시중에서 빠른 숙성을 거친 김치보다 훨씬 더 복잡 미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리과학적 이론으로도 완벽하게 설명하기 힘들기에, 이를 느린 시간이 주는 선물이라고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패와 숙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이다. 하여 숙성(시간)의 관점에서 조리의 핵심은 "익었냐 안 익었냐"가 아니라 "어떻게 익었냐"이다. 요리는 무 토막 내듯 완성과 미완성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어떤 지점을 '완성으로 판단할 것인가'하는 조리사의 지적 능력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요리는 여행과 비슷하다.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점에서 요리를 빠르게 완성하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래서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타거나, 잘 모르겠으면 강불에 올린다거나, 악셀을 힘껏 밟는 것을 보통 우리는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풍성한 추억과 완숙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전거나 도보여행 같은 약불에 올려진 느린 시간이라는 것 또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요리에서 시간이 거세되어 가는 오늘날, 훌륭한 요리사들조차 종종 깜빡하는 부분이다.
시간의 합이 곧 인생이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 그러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무처럼 효율적으로 토막 내지는 우리의 금같은 시간을 붙잡고 미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과연 '어떻게' 익혀야 좋을까. 내가 배운 것은 적어도 맛에서, 시간을 아껴서 좋은 것은 아낀 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