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 일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던 2001년의 12월에 나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나는 원래 스포츠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데다 사람들이 유독 축구에는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02년에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내 영어 공부와는 딱히 관련이 없으니 나는 월드컵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고 영국 어학원에서 영어공부에만몰두하기로 했다.
나는 영국에서의 첫 번째 숙소로 홈스테이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면 영어를 좀 더 듣고 말하게 되며 영국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머물던 홈스테이 집에는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초등학생 아들이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초등학생 꼬마와는 한 마디도 안 해보다가 수학문제를 어렵게 풀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좀 도와줬더니 나에게 마음을 열고 친해지게 되었다.
꼬마는 자신의 심부름인 설거지를 나와 같이 하자고 하기도 하고 내 방에 들어와 내 침대에서 텀블링을 하며 내 공부를 방해하기도 했다. 심지어 눈이 오는 날 나와 눈싸움을 하자고 해서 꼬마와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어느덧 한 달로 예정된 홈스테이 기간이 끝나서 홈스테이 집을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고 나는 주인아주머니와 초등학생 꼬마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마트에 가서 주인아주머니께 드릴 양초는 골랐지만 꼬마를 위한 선물은 사지 못했다. 꼬마가 무엇을 좋아할지 당시 젊은 나로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사가지고 온 기념품들이 생각났다. 나는 한일 월드컵 기념품으로 제작된 열쇠고리를 여러 개 사서 가지고 왔다. 축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홈스테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날 내가 꼬마에게 월드컵 기념 열쇠고리를 주며 작별인사를 하자 아이는 내 선물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매우 기뻐했다. 월드컵 열쇠고리가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이 된 것 같았다.
어느덧 계절은 늦봄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한일 월드컵이 정확히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훌리건들이 차 창문을 열고 잉글랭드 국기를 흔들어가며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곧 월드컵이 시작되나 보다 했다. 정말이지 차로 가면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바깥이 아닌 집 안에서도 훌리건들이 지나가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고함을 질러댔다.
주택가를 걸어가면 마치 우리나라의 국경일에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듯 많은 집들이 잉글랭드 국기를 창문 밖으로 계양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 국기가 아닌 흰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 모양이 박혀있는 잉글랜드 국기가 한 집 걸러 한 집마다 계양된 모습은 어색하면서도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내가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때 한일 월드컵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내가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다른 나라의 경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경기할 때는 경기가 매우 궁금했다.
어학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의 모든 층을 사용했는데 지하 1층에는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학원에서 월드컵 기간 동안 이 지하 공간에 TV를 마련해 주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어학원 학생들의 한일 월드컵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지하의 TV는 꺼질 줄을 몰랐다. 선생님들도 쉬는 시간마다 지하로 내려와서 TV를 시청하며 어느 나라가 이기고 있는지 응원하고 환호를 보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가 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학원의 수업시간보다 한 참 전에 경기가 진행되어 학원에 가기 전에 한국인들끼리 모여서 월드컵 경기를 보기로 했다. 어학원에 다니는 한국인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언니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대략 8명 정도가 모였는데 김치 부침개를 부쳐 온 친구도 있었고 새우깡과 오징어 땅콩 등 과자를 가지고 온 친구들도 있어서 한국의 향수가 느껴졌다. 모두들 가지고 온 다과와 음료 등을 먹으며 신나게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에 집중을 했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는 영국 집이었지만 우리들은 모두들 신발을 벗고 카펫 바닥에 앉아서 TV시청을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에 이탈리아가 첫 골을 넣었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크게 실망했다. 우리 골을 기대했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이러다가 지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 설기현이 골을 넣었을 때는 모두들 목이 찢어져라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우리나라가 연장 후반전에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져 승리를 확정 짓자 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모두들 너무 기뻐했다. 모두 크게 환호성을 질렀고 평소에는 어색해하고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도 두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거나 서로 부둥켜 안기도 했다. 그런 감정이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을지 신기할 정도였다.
경기가 끝나고 한국 언니네 방에서 나오는데 옆 방에 사는 오만에서 유학온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한국 친구들이 우리가 이겼다며 좋아하자 그는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 봤지요?"
"아니, 보진 않았지만 알고 있지."
"어떻게요?"
"한국은 이탈리아를 2 대 1로 이겼고, 한국은 골 한 번을 넣을 뻔하다가 못 넣었지?"
"경기도 안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요?"
"너희들이 환호성을 두 번 크게 질렀고 한 번은 엄청 속상해했으며, 한 번은 환호성을 지르다가 다시 탄성을 지르며 아쉬워했거든."
우리는 경기에 몰입하느라 우리의 환호성과 탄성이 어떠했는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옆 방에서 공부하는 아저씨에겐 매우 상세한 goal과 no-goal의 신호였던 것이다.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공부하는 아저씨한테 방해됐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이겼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고 의기양양해졌다. 그런데 오후에 있을 어학원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데 반 친구들의 절반이 이탈리아 학생이어서 수업 분위기가 좀 걱정이 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다혈질이라고 하던데 자기 나라가 졌다고 우리나라 학생한테 시비 걸거나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려나 하는 우려가 되었던 것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교실문을 여는데 이게 웬일인가? 전혀 예상 밖으로 이탈리아 학생들은 한 명도 학원에 오지 않은 것이다.
이탈리아 학생들의 단체 결석은 참으로 놀랍게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수업에 들어온 이탈리아 학생에게 어제 왜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오고 싶지 않았단다. 이탈리아 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비아냥거리거나 시비 걸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축구에서 우리나라에게 진 것이 단체로 결석을 할 만큼 큰 실망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어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는데 계단에서 어학원의 남자 선생님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빌, 스페인 대 대한민국 경기 봤어?"
"나 아직 못 봤어. 당연히 스페인이 이겼겠지. 보나 마나 뻔하지."
나는 당연히 스페인이 이겼으니 볼 필요 없다는 빌 선생님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내가 대화에 끼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빌 선생님, 아니요, 대한민국이 이겼어요. 믿지 못하겠지만요."
빌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강의실로 향했고 나는 왠지 모를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수줍어하는 성격의 내가 선생님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월드컵 개최국 출신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인가?
나는 2002년 10월에 우리나라로 귀국했다. 돌아와서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될 당시의 우리나라 축구 응원 열기와 붉은 악마들로 가득 찬 광화문 거리등을 TV에서 보니 정말 놀라웠다. 그 당시의 그 뜨거운 열기를 우리나라에서 함께 느끼지 못한 아쉬움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경험한 한인들과의 월드컵 추억 또한 그에 못지않게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