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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Dec 28. 2023

키다리 아저씨-말콤 Malcolm

나: "안녕하세요. 방을 찾고 있는데요. 방이 하나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관리인: "네, 맞아요. 들어오세요. 저기 끝에 있는 방입니다. 들어가서 보세요."

나: "잘 봤습니다. 방이 아담하네요. 주방과 욕실은 다른 분들과 함께 쓰는 거죠?"

관리인: "맞습니다."

나: "다른 건 마음에 드는데 방에 있는 침대가 너무 높아요. 거의 기어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관리인: "그 방의 침대 아래에 계단이 있어서 침대가 좀 높긴 합니다."

나: "방을 주당 45파운드로 내놓으셨던데 침대가 너무 불편하니까 주당 40파운드로 하시죠?"

관리인: "네?"

나: "그 방 내놓으신지 꽤 된 것 같던데 저 같은 사람 아니면 방이 나가지도 않을 거예요.

     "저는 방도 깨끗하게 쓰는 편이고 집안을 어지럽히지도 않을 겁니다. 주당 40파운드에 해주시면 지금

      당장 계약하겠습니다. 어떠세요?"

관리인: "오, 완전히 사업가군요. 좋소. 일단 나는 주인이 아니고 관리하는 사람이니 아래층에 가서 주인에게

           물어보죠."


말콤 아저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국 집의 관리인과 세입자로서. 말콤 아저씨는 방의 문제점을 꼬투리 잡아 방세를 깎는 나를 꽤 당돌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하지만 집주인은 침대의 불편함 때문에 5파운드 깎자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나는 주당 40파운드에 그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집은 3층 짜리 단독주택으로 1층과 2층은 주인이 사용하고 3층은 세입자들이 세 들어 살면서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형태였다. 3층에는 케냐 출신의 20대 초반 청년 한 명과 중국인 남학생 한 명 그리고 말콤 아저씨와 동거를 하고 있는 한국인 아주머니 그렇게 4명이 살고 있었다. 말콤 아저씨는 거의 내 아버지 나이 정도 되는 분이었는데 동거하시는 아주머니는 40대 후반 정도로 보여서 두 분 나이 차이가 꽤 있어 보였다. 말콤 아저씨도 이 집의 세입자인데 세입자 중 유일한 영국인이고 나이도 꽤 있으니 관리인이 되신 것 같았다.


이 집에 남자만 세 명이 있어서 만약 한국인 아주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집으로 이사 오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여자분이신 데다 한국인이시고 친절하셔서 남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보호 역할을 해주실 거 같았고 마음의 위안도 조금 될 것 같았다.

  한국인 아주머니는 뭔가 사연이 있으신 분 같았다. 영국에 오래 사셨다는데 영어를 매우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구사하시고 영국에서 어학원을 다니시지도 그렇다고 일을 하지도 않으셨다. 말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때때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가끔은 내가 두 분 사이의 대화에 통역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말콤 아저씨께서 얘기해 주시길 한국 아주머니는 남편과 이혼하신 후 혼자 영국으로 오셨고 자녀는 없으며 돈이 아주 많은 부자라고 했다.

한국 아주머니는 나에 대해서도 많이 물으시며 관심을 가져주셨다. 이 아주머니께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면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100% 되어 있는 나에게 한국어를 너무 많이 지속적으로 하신다는 것이었다.


한국 아주머니께 들은 이야기로 말콤아저씨도 이혼을 하셨단다. 자녀는 있지만 10년이 넘게 만나지 않았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두 분 모두 이혼의 아픔을 겪으셔서 서로 의지하며 사시는 것 같았다.

말콤 아저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냉정하시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분 같아 보였지만 따뜻한 분이었다.

  저녁이 되면 3층 사람들은 각자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남자 세입자 두 명은 빵에 대충 잼을 발라서 먹고 끝내거나 밖에서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비를 최대한 절약해야 하는 나는 매일 집에서 음식을 해 먹었다. 하지만 요리나 음식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충 밥과 달걀프라이에 한국에서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무말랭이 정도로 끼니를 간단히 때웠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신 말콤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시며 본인이 드시려고 요리한 소시지나 감자칩을 내 접시에 덜어주셨다. 내가 괜찮다고 사양해도 '그렇게 먹다가는 영양실조 걸린다'라고 끝끝내 음식을 나눠 주셨다. 심지어 내가 저녁 준비를 하지 않고 방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면 아주머니와 아저씨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됐는데 음식이 많다며 나에게 같이 먹자고 음식을 주신 적도 많았다.




두 분의 친절과 대화로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런던에서 살고 있는 사촌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영국에 온 지 몇 개월이나 지난 후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한국 유학생에게 중고 핸드폰을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전화너머로 사촌 오빠의 울먹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욕실에 있는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있던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주 오랫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집안의 막내아들이었지만 효심이 지극하셔서 두 분을 우리 집에서 모셨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그 후로도 특별히 아프신데 없이 잘 지내셨다.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맛있는 간식을 챙겨놓으셨다가 내게 주시곤 하셨다. 내가 대학교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시면서 기특하다고 기뻐하셨고 만나는 친척마다 내가 장학금을 받았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니 믿을 수 없었고 슬픔이 북받쳐 올라 엉엉 울어버렸다.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는지 말콤 아저씨가 욕실로 뛰어 들어오시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아저씨는 나를 안아주시며 한국에 가야 한다면 히드로 공항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씀이 진심임을 알았고 타국에서 누군가가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우리나라로 간다고 해서 할머니를 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나는 영국에서 공부를 다 마치고 오라고 하셨다. 떨어져 있는 거리는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주는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먼 영국에서 혼자 지내는 나는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고 가슴 한쪽이 먹먹하고 텅 빈 느낌만을 가진채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나는 공부에 더 집중하기 위해 환경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보낼 남은 기간은 좀 더 깨끗하고 좋은 집에서 조용히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근처에 세 나온 스튜디오 플랏(Studio Flat)을 보고 왔다. 스튜디오 플랏은 방에 주방까지 포함되어 주방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가격이 비싼 것은 욕실까지 혼자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욕실은 공유하고 주방은 혼자 사용하는 플랏을 계약하기로 했다. 가격은 전에 살던 집보다 좀 비쌌지만 그동안 고생했으니 나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살 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는데 말콤 아저씨가 태워다 주셨다. 아저씨의 이런 배려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고 머나먼 이국에서의 삶이 덜 외롭게 느껴졌다.


이사를 하고 난 다음 주 어느 날 말콤 아저씨가 내가 이사 온 집으로 오셨다. 손에는 스크래블(Scrabble: 영어 단어를 이용해서 플레이하는 보드 게임) 상자를 들고 계셨다. 아저씨는 스크래블을 내게 선물로 주시며 매주 한 시간씩 우리 집에 오셔서 영어 수업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내게는 감사하고 좋은 제안이었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서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는데, 한국 아주머니께서 한국 학생인 나에게 잘해주라고 하셨단다. 영국 아저씨가 나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 주신다니 나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매주 화요일에 한 시간씩 나와 영어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주셨고 내가 틀리게 얘기하거나 더 좋은 표현이 있으면 말씀해 주셨다. 나는 아저씨께 다과를 대접하거나 식사를 안 하셨을 때는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하는 영어 수업이 내 영어 실력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저씨께서 베풀어 주셨던 호의와 따뜻한 마음은 내게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이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나의 영국에서의 체류기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영국을 떠나기 하루 전에 말콤 아저씨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에 작게나마 보답하려고 마트에 들러서 괜찮은 와인 한 병과 치즈 그리고 초콜릿 한 상자를 사 들고 방문했다. 말콤 아저씨와 한국 아주머니께 그동안 베풀어주신 친절에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연락을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이메일 주소도 받아왔다.




우리나라로 돌아오자마자 잘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하기 위해 말콤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여러 통의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으셨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이메일 확인조차 안 하셨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바빠졌다. 일상에 적응해야 했고 취직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서 말콤 아저씨와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편지를 썼다. 귀국하자마자 연락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이제야 편지를 써서 죄송하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장문의 편지를 썼다. 몇 주가 지나자 나에게 우편물이 배송되었다. 내가 말콤 아저씨께 보낸 편지가 수취인 불가로 반송된 것이었다. 말콤 아저씨와 왜 연락이 되지 않는 걸까? 나는 궁금해하기만 할 뿐 연락을 할 방법이 더 이상 없었다.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 2002년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어느덧 2008년 가을이 되었다. 나는 영국으로 다시 와서 대학원에서 석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석사과정이 1년인 영국의 교과과정에 맞추느라 매일매일 고등학생처럼 밤낮없이 공부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9월에 시작하는 학기가 다음 해 1월에 끝나고 방학을 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자마자 시험을 보는 것이 대학원 석사과정의 일정이어서 방학 동안은 공부에 열중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공부에 돌입하기 전에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나에게 1주일을 휴가로 주기로 했다. 휴가 동안 영국의 가보고 싶은 곳을 몇 군데 가볼 예정이었는데 그중 2박 3일을 본머스(Bournmouth)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본머스는 내가 어학연수로 체류했던 곳이다. 내가 영국에 처음 와서 생활했던 그곳에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본머스는 영국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잉글랜드 지역의 북쪽에 위치한 내가 살고 있던 리즈(Leeds)에서 시외버스로 6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본머스에는 오후에 도착했다. 이틀 지낼 숙소를 예약해서 짐을 두고 내가 다니던 어학원과 가끔씩 찾아갔던 바닷가를 둘러보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다시 영국에 와서 공부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지금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묵었던 숙소들도 들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콤 아저씨와 함께 지냈던 집을 가보기로 했다. 말콤 아저씨가 계시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주소를 보지 않아도 기억을 더듬어 그 집에 찾아갈 수 있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집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혹시 하는 마음에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1층 대문을 두드리며 아저씨를 불러보았다. 집 안에서는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안에 누가 있는지 여러 번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 집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주변을 보아도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주변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주변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시간만 순식간에 흐른채 나만 변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이렇게 멀리서 왔는데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1층 주인집에 메모라도 남기기로 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학생인데 2002년에 이 집 3층에서 살았었다.

 당시 3층에서 함께 지냈던 말콤 아저씨를 만나보고 싶은데 지금 3층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메시지를 보면 나에게 말콤 아저씨에 대한 안부를 이메일로 알려주면 감사하겠다."


리즈로 돌아오고 얼마 후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바로 본머스에서 살았던 옛집의 집주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말콤은 그때 이후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가 어디에선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런 소식을 전해서 미안하다."

믿기지 않는 이메일 내용을 읽고 한 동안 멍해 있었다. 도대체 아저씨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저씨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지만 아저씨께서 베풀어 주셨던 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그 집주인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소문일 뿐 사실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진 출처: 제가 Malcolm 아저씨께 직접 썼던 편지를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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