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봉쥬르"
"How can I go to the nearest train station?"(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 어떻게 가면 되나요?)
프랑스행 배에서 내렸다. 근처에 있는 선착장에 가서 기차역이 어딘지 물었다. 프랑스에 왔으니 인사는 불어로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여 '봉쥬르'라고 말하니 선착장 직원은 내가 불어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한 모양이었다. 내가 바로 영어로 질문을 하자 직원은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더니 바로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영어가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원은 능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는 영어로 기차역을 알려주었다.
기차를 타고 2시간 남짓 가니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내가 파리에 오다니!!
도착하자마자 나는 일단 가지고 온 여행책자에서 한국인 민박집을 찾아 숙소 먼저 예약했다. 머물 곳이 마련돼야 마음 편히 여행을 다닐 것 같았다. 숙소에서 나와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책자에 나온 유명한 곳들을 가기로 했다.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 등.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며칠 동안 구경 다니며 내가 이렇게 유명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기뻤다. 내가 혼자 이런 곳에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겁도 많고 길치인 내가 혼자 다른 나라에 와서 갈 곳을 다 찾아다니다니!
영국에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완전한 자유로움도 느껴졌다. 처음 온 타국에서 하루 전부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데로 다니는 자유로움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어학원이나 아르바이트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아도 되고 어학연수를 모두 마치고 영국에서 본 어학시험에도 합격한 후여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기쁨과 자유로움을 공유할 동료가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자유로는 쓸쓸한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유명하고 멋진 곳을 방문해서 감동받고 기뻤지만 어딘가 허전했던 것은 나의 감정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쁨은 함께할 때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나는 다음 여행 목적지인 이탈리아가 기다려졌다. 유럽여행 중 유일하게 동료와 함께 여행하기로 한 이탈리아!
프랑스 여행 마지막 날 유레일 패스로 갈 수 있는 이탈리아행 기차 시간을 살폈다. 내가 원하는 시간의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타기 위해 미리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해외에서 탈 것을 탈 때 시간과 탈 것의 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겁도 많고 길치인 데다 혼자였기 때문에 실수로 어딘가로 잘못 갈까 봐 두려웠던 것을 예방하기 위한 나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확인한 이탈리아행 기차가 도착했고 나는 안심하고 올라탔다. 혹시 하는 마음에 가는 도중에도 내가 맞는 기차에 탔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경유하는 역을 지날 때마다 내가 가는 여정을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이 기차는 내가 가려는 밀라노 역에 서지 않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이 더 밀려들었다. 잘못 탄 기차로 더 멀리 가느니 차라리 중간에서 내려서 다른 기차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밀라노 역에 서는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열차가 왔고 나는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경유하는 역을 확인하니 밀라노로 가는 기차가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고 보니 아까 탔던 열차도 맞게 탄 것인데 내가 착각을 했던 것 같았다. 이제 안심하고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기차여행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멀리서 기차표를 확인하면서 오는 역무원이 보였다. 나는 유레일 패스를 가방에서 꺼내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덧 역무원이 내 자리까지 왔고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자 역무원은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와 내 유레일 패스를 번갈아보더니 나에게 30유로를 내라며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30유로를 내라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유레일 패스는 선불로 지급한 기차 패스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영국에서 이 패스를 사면서 값을 치렀고 추가로 비용을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역무원이 내가 중간에서 기차를 내렸다가 다시 탄 것 때문에 나에게 비용을 요구하는 줄 알고 유레일 패스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모두 영어로 내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이탈리아어로 대답을 했고 계속 손바닥을 내밀었다. 내가 재차 설명하자 그는 자기는 영어를 못 알아 듣는다며 큰 소리로 "노 잉글리시"를 외치며 써티 유로를 내라고 내 옆에서 버텼다.
노 잉글리시
사기구나! 나는 그 역무원이 사기를 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기를 조심하라더니 유레일 패스를 가진 승객에게 돈을 내라니!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역무원에게 30유로를 쥐어 주고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여행경비가 부족해질까 봐 걱정도 되었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뒤로하고 밀라노역에 도착하자 나는 그래도 목적지에 잘 왔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약속한 대로 친구를 만나러 가야 했다. 우리는 밀라노에 있는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혹시라도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서 나는 2시보다 일찍 성당에 도착했다. 혹시 친구가 일찍 도착했을까 봐 성당 주변을 살폈지만 내가 먼저 온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만 정해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오지 않았다. 나는 서로 여행 중이기 때문에 친구에게 다른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친구가 나를 못 볼까 봐 같은 곳에서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었고 유럽의 가을은 오후 6시에도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숙소를 예약하지도 않은 것이 걱정이 되었고 이제 친구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체념을 한 상태였다. 점점 어둑해지는 가운데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인 민박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주인 분께 집에 있는 전화로 영국에 전화를 해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나와 그 친구는 서로 휴대폰이 없었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중간에 비상연락망을 두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영국에 남아있는 다른 한국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메시지를 남겨놓기로 한 것이다. 나는 영국에 있는 한국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밀라노 성당 앞에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서 못 만났고 나는 한국인 민박집에 와 있다고 하고 여기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낙심한 나에게 민박집 주인아저씨께서는 비용도 받지 않으시고 내게 한국식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김치와 김 그리고 달걀프라이! 그동안 너무도 먹고 싶었던 한국 밥상이었다. 그날 저녁은 민밥집에서만 머물렀다. 친구와의 만남도 무산되었는데 혼자서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혼자서 길을 나섰다.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주변에 볼거리를 찾았다. 친구와 만나서 여행할 것은 기대했다가 혼자 다니는 것은 애초부터 혼자 여행했을 때 보다 더 쓸쓸했다. 숙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위주로 공원과 주택가 그리고 쇼핑센터를 혼자서 다녔다. 그러다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나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하셨다. 전화라고? 나는 너무 놀랐다. 전화를 한 사람이 저녁에 다시 전화를 한다고 했단다. 숙소에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전화벨이 울렸고 주인아저씨가 나를 바꿔주셨다.
"언니!!! 저예요."
이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게 들렸는지 잊을 수가 없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그 친구는 오늘 두오모 성당 앞에서 2시에 나를 기다렸단다. 즉 우리가 약속한 날짜를 내가 착각하여 나는 하루 전 날에 성당 앞에서 기다린 것이다. 다행히 영국에 있는 비상연락망 친구가 있었고 내가 전화번호를 남겨서 이 친구는 밀라노에 있는 민박집으로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각자 혼자 여행하다가 밀라노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난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다음날 우리는 본격적인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다. 피렌체에 갔을 때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피자를 먹었다.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자는 생각이었는데 피자 맛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맛있는 피자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이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지 않고 같이 먹어서 더욱 기뻤다.
로마에 갔을 때는 이 친구와 내가 보고 싶은 것이 달라서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로마의 한 광장에서 혼자 잠깐 서 있는 동안 어떤 어린이가 내 눈을 응시한 채로 내게 재빨리 다가와 내 가방을 낚아채려 했다. 소매치기였다!
여행 책자에 경고되었던 소매치기를 내가 직접 경험하다니! 너무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이가 내 눈을 쳐다보며 다가왔기에 나는 내 가방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당돌하게 눈을 쳐다보며 소매치기를 시도하다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날 이후 나와 내 친구는 여행 경비와 귀중품을 더욱더 안전하게 소지하고 다녔다.
우리의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지는 나폴리였다. 낮동안 나폴리의 명소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저녁을 먹고 바닷가 근처의 부두를 거닐었다. 저녁시간이어서 어둑어둑했지만 친구와 함께 있었기에 무섭지 않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닷물의 비릿한 향을 맡으며 거닐었던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닷가에서 낭만을 즐기다가 정신이 팔려서 뱃시간에 임박해서 선착장을 향해 전력질주 했을 때는 정말이지 배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뱃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고 우리는 전력질주 하던 우리 모습을 생각하며 한 바탕 웃음을 지었다. 그곳에서 그 친구는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향했고 나는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자칫하면 만나지 못할 뻔한 친구와 극적으로 만나 함께한 여행은 아직도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