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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Jan 16. 2024

개강 첫 수업내용이 표절이라고?

영국에서 석사과정 밟기

국제경영학과 석사과정의 첫 번째 수업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수업 장소가 도서관이라...' 나는 도서관 소개 및 이용 방법에 대한 수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이 되어 강의실을 찾아갔다. 도서관 안에 강의실이 있었고 이미 학생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수업이 바로 시작되었다. 수업 내용은 다름 아닌 "Plagiarism(표절)"이었다. 석사과정의 첫 번째 수업이 "표절"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영국 대학원에서의 첫 수업이라서 긴장되었는데 수업내용이 표절이라니 긴장의 강도가 높아졌다.


수업의 내용은 이러했다. 석사과정 중 제출하는 어떠한 과제물이나 논문도 다른 저작물을 표절해서는 안된다. 표절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저작물의 내용을 인용하는 경우 인용하는 문장의 어떠한 단어도 연속해서 다섯 개의 단어가 일치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써야(rephrase) 한다. 또한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쓰더라도 인용하는 모든 문장은 인용규칙에 맞도록 문장 끝에 출처를 반드시 달아야 한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 내용에서 다섯 개의 단어가 연속해서 다른 저작물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전체 과제물의 30% 이상을 차지할 경우 표절이라고 간주한다. 학생이 제출하는 모든 과제물과 논문은 학교의 표절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 심사될 것이며 만약 표절로 간주될 경우 학생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다. 학생 당사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겠지만 소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해당 과제물의 강좌는 재수강해야 할 것이며 논문일 경우 통과하지 못해 졸업을 하고 싶다면 논물을 다시 써야 한다.


와~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과제물을 쓸 때 인터넷이나 책에서 "베껴"써도 베껴 쓴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학생 스스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학교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대학원 첫 수업으로 표절에 대한 경고 수업을 하다니 우리나라에 비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은 들었지만 오히려 여기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철저한 학교 시스템 아래에서 제대로 학문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영국 대학의 시스템에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내가 다닌 영국 대학교의 도서관 전경


대학원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수강신청 기간'이라는 것이 없었다. 즉, 학생이 시간표를 짜지 못하고 커리큘럼이 모두 정해져 있어서 모든 학생의 시간표가 같았다. 석사과정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영국의 석사과정이 그러한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대학원의 시간표가 내가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학부시절 시간표보다 더 빡빡하다는 것이다. 강의와 세미나를 포함해 하루 평균 6시간 정도의 수업이 매일 있었다. 더구나 매 과목마다 교수님이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는 Reading Material(읽을 자료)이 정말 많았다. 수업량만 해도 고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는데 읽는 자료까지 모두 읽으려면 잠을 줄여야 할 정도였다.


물론 읽을 자료를 다 읽었는지 교수가 일일이 다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읽지 않아도 되고 읽지 않는 학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내가 원해서 선택한 대학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자료를 읽었다.


모든 강의를 열심히 들었지만 가장 긴장되고 또한 소외감마저 드는 시간은 다름 아닌 발표시간이었다. 수업시간 중에 질문 시간이 주어질 때도 있지만 교수님의 수업 내용 중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업 중이어도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드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국 학생이거나 유럽 출신 학생이었다. 그 학생들은 교수님이 자신을 지목할 때까지 계속 손을 들었다. 이런 모습은 질문이 거의 없고 교수님에서 학생으로의 일방적인 강의 방식인 우리나라 교육문화와 매우 대조적이었다. 영국과 유럽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참여 모습에 자극을 받아 나도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궁금한 것도 많았고 수업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손을 들고 질문을 영어로 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내 질문에 교수님이 되물을 경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 겁이 나서 질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 내 의견을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의견을 거의 표현하지 않던 내가 수업시간에 강사에게 매우 크게 화를 내면서 내 불만사항을 강하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세미나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세미나 수업은 7~8명 정도의 소수의 학생이 교수나 강사와 수업 주제에 대해서 토의나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3주 연속 그 수업에 참여했는데 3주 동안 수업자료라고 주는 자료의 내용이 동일했다. 주제 자료만 조금 달랐을 뿐 10개가 넘는 토의나 토론 질문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동일했다. 다른 주제를 같은 방식으로 토의하는 수업이라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3주를 참고 4주째 되는 날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항의를 했다. '수업 자료라고 주는 내용이 어쩜 이렇게 성의가 없을 수 있느냐?',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서 온 국제 학생이다. 우리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이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수준이 낮고 성의 없는 수업 자료로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 수업이 아이들을 위한 훈련인가? 강사가 수업 준비를 하긴 하는 것이냐? 똑같은 수업 내용을 4주 연속 반복할 것이면 나는 더 이상 이 수업을 듣지 않겠다.' 등 수위 높은 발언을 했다. 평소에 거의 아무 의견 없이 조용히 수업만 듣던 동양의 한 여학생이 이렇게 강한 어조로 항의를 해서인지 세미나 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고 어떤 학생도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강사는 본인은 세미나 수업을 진행만 할 뿐 자료준비는 다른 강사가 한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이 강사는 수업 자료를 준비하는 다른 강사에게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사는 대신 사과한다며 수업자료를 준비하는 다른 강사에게 내 의견을 잘 전달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세미나 수업은 그 뒤로도 1~2번 정도 더 동일한 수업 자료를 나눠주었고 그 이후로는 좀 신경을 썼는지 새로운 주제와 자료들을 준비해 왔다.




빡빡하고 여유 없던 석사과정의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곧 방학이어서 이제는 좀 한숨을 돌리겠구나 생각했는데 방학이 끝나자마자 시험을 본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인도와 중국 학생들로부터 그런 소문이 들렸는데 나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생각했다. 곧 한 학기의 마지막 수업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 수업은 우리 학과의 지도교수님이 진행하시는데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지를 설명하셨다. 그러더니 개학을 하면서 동시에 시험기간이 시작된다는 일정을 설명하시는 게 아닌가!


아! 이렇게 빡빡한 수업일정에 방학기간 마저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는 커리큘럼 때문에 석사과정 공부가 1년 과정인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도교수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하신 마지막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Have a productive holiday!(생산적인 방학 보내세요!)



방학은 약 4주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첫 한 주만 쉬고 나머지 3주는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6개의 전공과목을 시험 보는데 모두 에세이를 써야 했다. 난 각 과목 당 1~2개 정도 나오는 시험에 예상 문제 10개를 만들었다. 예상 문제를 많이 만든 이유는 실제 시험이 예상문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예상문제가 각 과목당 10개니까 6과목의 예상 문제를 다 합하면 60문제. 나는 한 문제의 답을 A4용지 2장 정도로 빼곡히 적었다. 이렇게 만든 나의 예상 문제 모범 답은 모두 합해서 대략 120페이지! 이걸 다 외웠다. 손으로 적고 소리 내서 읽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나중에는 모범 답안을 보지 않은 채로 낭독했다. 이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니 정말 이 많은 양이 외워졌다.


묵직했던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개강을 했다. 개강 첫날부터 3일 동안 매일 2과목씩 시험을 봤다. 다행히 나의 예상 문제가 시험 문제의 대부분에 적중하여 나는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한 학기를 더 보내야 하다니! 석사과정을 1년에 마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경험해 본 학기를 딱 한 번만 더 겪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삶의 밀도가 아주 높은 한 학기를 한 번 더 보내고 나는 석사과정의 마무리인 논문 학기로 접어들었다.


사진 출처: 제가 영국에서 공부하며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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