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안내에 따라 젊은 역무원과 분실물 센터의 직원 그리고 나는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 역무원은 손에 든 무전기로 어딘가와 소통을 하는 듯하더니 곧 열차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말해주었다.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면 열차를 멈춰줄 테니 열차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찾으라고.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를 위해 열차를 멈추다니!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말이다.
열차가 도착하고 역무원이 손에 든 무전기에 뭐라고 일본어로 이야기하자 그의 말이 플랫폼과 열차 안까지 다 방송되었다. 그가 열차를 멈춰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게 가방을 찾을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했다. 나는 열차 안으로 들어갔고 선반을 봤지만 가방이 없었다. 내가 바로 나와서 가방이 없다고 하자 그는 다시 안내 방송을 하고 열차를 보냈다. 그렇게 두 번째 열차를 멈췄지만 가방이 없었다. 나는 가방을 못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방인 줄 착각하고 내 가방을 가져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방을 영영 못 찾으면 어떡하지'하며 희망은 불안한 마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세 번째로 열차가 왔다. 그의 안내 방송으로 다시 열차가 멈췄고 나는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선반을 보자 내 가방이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가방 찾았어요.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슨 어마어마한 보물을 찾은 사람처럼 찾았다고 아주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열차는 바로 보내졌고 관계자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나이 드신 직원분이 나에게 가방 안의 소지품이 모두 있는지 확인하라고 하셨다. 여권, 지갑, 바이어들과의 회의를 기록한 수첩 등 모두 그대로 있었다. 더구나 내가 가방을 찾느라 열차가 멈춰 세워져 있는 동안 열차 안이나 밖에서 누구도 큰 소리로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모두들 이해해 준 것 같았다.
나는 감동과 안도의 눈물이 났고 사장님과 함께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역무원과 분실물 센터 직원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가방을 찾은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나를 위해 일본 지하철 열차를 세 번이나 멈춰 세웠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례를 하고 싶어서 사장님과 나는 역사 밖으로 나와서 음료수 한 상자를 사가지고 들어가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사장님께 어떻게 분실물 센터까지 오실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횡단보도에서부터 내가 걱정되어 나를 따라오셨다고 했다. 다만 걸음이 불편하셔서 시간이 그렇게 걸린 것이었다. 우리가 내린 플랫폼 위치를 기억하신 건 사장님께서 길눈이 엄청 밝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일본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데 역사에서 처음 만난 역무원이 영어가 가능했던 것도 우리 사장님이 길눈이 밝아서 플랫폼 위치를 기억한 것도 내가 운이 정말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더니 살면서 이렇게 많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호텔에서 혼자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상점을 찾아다녔다. 나를 위해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역무원에게 내가 직접 사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먼 곳까지 갔다가 길을 찾지 못할까 봐 호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점에 들러 남성용 지갑 하나를 샀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 영어로 편지를 썼다.
오늘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고 잊을 수 없을 것이며, 혹시 언젠가 한국에 온다면 나에게 꼭 연락을 달라고, 나도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그리고 내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일찍 호텔을 나와서 시나가와 역을 찾아갔다. 그 역무원을 만나서 편지와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같은 곳에 그는 없고 다른 역무원이 있었다. 전 날 지하철역에 있을 때 역무원의 명찰을 보고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기에 그를 찾아 물었지만 다른 역무원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어설프고 기초적인 내 일본어 실력으로 다시 얘기했지만 의사 전달이 잘못된 것 같아서 다시 영어로 짧게 '이걸 그에게 전해달라'고만 말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가끔 이메일을 확인해 보았지만 그는 내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그에게 내 편지와 선물이 잘 전달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4년이 지났고 나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거의 잊고 지냈다.
나는 패션회사의 해외영업팀에서 미국과 유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부서에서 일본지역을 담당하던 직원이 그만두게 되었고 새로운 담당자를 채용하기 전에 갑자기 팀장이 된 내가 일본 관련 업무까지 맡아하게 되었다. 일본 쪽 업무를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다. 일본 회사는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저작물이 우리나라에서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찰하기 위해 직원을 우리나라로 보내 시장을 확인하도록 하였고 위반 사항을 사진으로 찍어간 것이다. 일본 회사는 문제를 모두 찾아내기 위해 나에게 많은 자료를 요구했고 나는 최대한 협력하여 자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 회사가 계약을 많이 위반한 사실이 밝혀져 일본 회사의 사장은 우리 회사의 사장님을 일본으로 오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전에 팀장이 된 나도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본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그 회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호텔과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런데 회사의 주소를 확인하는데 어딘가 낯익은 점이 있었다. 회사 주소에 '시나가와'라는 말이 적혀있었고 회사 위치를 검색하니 도쿄의 시나가와 역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회사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잊고 지냈던 예전에 시나가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역에 다시 가면 그를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까지 해보았다.
일본으로 출장 가는 날이 되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경비에 크게 민감한 분이 아니셔서 그런지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다음날 일본 회사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회의는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회의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회의결과가 더 나쁘지 않았던 것에 위안을 삼고 나와 사장님은 일본 회사의 사무실을 나올 참이었다. 그런데 일본 회사의 사장님이 우리가 어떻게 호텔로 돌아갈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시간대는 '러시아우어'이기 때문에 택시로 가면 길이 엄청 막힐 것이라며 전철을 타는 것이 훨씬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전철'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시나가와 역을 떠올렸다. '그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시나가와 역인데 그럼 혹시 그 역무원을 볼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본 회사에서 나와서 시나가와 역까지 가는데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님과 함께 역사로 들어갔다. 혹시 해서 4년 전에 내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라고 소리쳤던 그 안내데스크로 가보았다. 사장님은 혼자서 개찰구 쪽으로 가고 계셨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무슨 드라마처럼 그가 그곳에 있었고 나는 바로 알아보았다.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기억하세요?
나는 영어로 얘기했고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물론 기억하지요. 다시는 울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꿈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자그마치 4년 전 일을 그도 나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기까지 했다. 4년 만에 도쿄에 와서 내가 역에 도착한 그 시간에 그가 그 안내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도 믿기지 않는 우연이었다. 그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사장님을 따라 개찰구 쪽으로 가는데 사장님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무심한 말투로 "너 여기 아는 사람 있냐?"하고 물으셨다. 나는 가볍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나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실 분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도쿄에 처음 출장 간 것이 2004년 그리고 두 번째로 출장 간 것이 2008년이다. 그를 앞으로 또 볼 수 있을지, 보더라도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알아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를 비롯한 시나가와 역 분실물센터의 어르신의 놀라운 친절은 내 가슴속에 가득 남아있다. 내가 그들에게서 받은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