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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Jan 18. 2024

지도교수가 내 논문에 자기 이름을 넣어도 되냐고 물었다

대학원 석사 논문

나는 크로아티아에 있었다. 논문을 다 써서 제출한 후 졸업식을 앞두고 시간 여유가 있어서 동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논문을 제출했지만 논문이 통과되었는지 아직 결과를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체코를 거쳐 크로아티아에 올 때까지 나는 여행지에서 숙소에 컴퓨터만 있으면 매번 학교 이메일에 접속하여 논문 결과가 나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매번 내가 기다리는 이메일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 크로아티아에서 숙소의 1층 로비에 컴퓨터가 있어서 다시 검색을 시도해 봤다. 그런데 드디어 이메일이 와있었다.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직접 보낸 이메일이었다.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이메일 내용은 매우 짧고 간결했다. 내 논문이 통과되었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내 논문 내용이 매우 우수하여 성적은 Distinction(A+와 같은 최고등급)이라고 했다. 논문이 통과된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쁜데 "Distinction"이라니 너무 기뻐서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논문을 준비하고 쓰면서 쏟았던 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다만 여행 중이었기에 이 기쁨을 함께 나눌 대학원 친구들이 곁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논문이 좋은 성적으로 통과되었기에 남은 여행 일정은 마음 편히 기쁘게 보낼 수 있었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지내던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한테서 또 이메일이 와 있었다.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이메일 이후 두 번째 이메일이었다. 발신은 며칠 전에 했는데 내가 이메일을 그제야 확인했다. 이번에도 이메일 내용은 간결했다. 내 논문을 학술저널에 게재하고 싶은데 내가 원하면 학술저널에 게재하는 것을 교수님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If you allow me to put my name on it......(지도교수님의 이름을 내 논문에 실어도 된다면) 내 논문에 교수님 이름을 넣고 싶다고?


나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좋은 소식인지 안 좋은 소식인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살던 집주인아저씨께 여쭤봤다. 주인아저씨는 영국인이면서 영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신 분으로 이런 이슈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았다.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지도교수가 내 저작물을 훔치려고 하는 것 같다며 걱정하셨다. 나는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Counseling centre(상담 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곧바로 이메일로 상담을 신청했고 날짜를 예약했다. 상담을 받는 날 상담사는 탄성을 지르며 '아, 정말 놀랐겠어요. 그가 당신의 저작물을 빼앗으려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더불어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마음을 털어놓고 걱정되는 부분을 지도교수님과 함께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다음 날 주인아저씨도 나를 부르더니 내 논문에 내 이름이 첫 번째로 오고 지도교수님의 이름이 두 번째로 온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셨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논문은 100% 내 저작물이니 내 이름이 앞에 와야 하고 지도교수님은 학술저널에 게재하는 것을 도왔으니 이름을 넣되 두 번째로 넣으면 속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상담사의 조언도 받아들여 나는 나의 생각을 정리한 뒤 지도교수와 면담을 했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지도교수님과는 언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저자이름과 관련한 내 의견을 얘기하자 당연히 내 이름을 첫 번째로 넣고 자신의 이름을 두 번째로 넣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논문의 제1 저자와 제2 저자의 개념과 차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지도교수님은 내 논문을 Asian Business Journal에 게재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논문의 내용을 많이 줄여 써야 한다고 했다. 교수님과 함께 이메일로 어떤 부분을 줄여 쓰고 어떤 부분은 살려둘지 의논하며 내 논문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논문을 작성하면서 겪었던 우여곡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석사과정의 마지막 학기인 논문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쓰고 싶은 논문의 주제를 2~3개 정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제출한 논문의 주제에 따라 석사 논문을 지도해 줄 논문 지도교수를 배정해 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평소에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기업 경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논문을 쓰고 싶었다.


주제를 적어내고 며칠이 지나자 지도교수가 배정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배정된 지도교수의 이름이 낯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국제경영학과 수업에서 강의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보니 그는 국제경영학과에서 환경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유일한 교수였다. 나는 '이 교수만이 나에게 배정될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이메일로 연락을 하여 첫 번째 미팅 약속을 잡고 약속한 날 교수실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매우 젊어 보였고 영국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영어에 능숙한 독일인이었다. 논문의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의논을 해봤는데 교수님은 화학 회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니 화학회사를 선정하여 연구를 해보는 것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한국 회사로 LG화학을 그리고 독일 회사로 BASF를 정해주면서 두 회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를 해보라고 했다.




교수실을 나와 기숙사로 향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첫 번째 미팅이어서 그런지 어리둥절해서 내 의견을 잘 표현하지도 못했고 내 논문의 연구 방향을 내가 정하지 않고 교수님이 다 정해준 것 같아서 꺼림칙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 화학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데다 관심도 없어서 내 논문에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연구를 억지로 하려니 내 논문은 며칠 동안 전혀 진척이 없었고 논문 마감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시간만 가고 있는 상황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마침 같은 과 한국 학생을 학교에서 만나기로 해서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지도교수에게 찾아가 논문 주제를 바꾸고 싶다고 얘기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평생 석사 논문을 쓰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냐며 그것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주제로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 친구 말이 백번 맞았다. 나는 곧바로 지도교수와 미팅을 하자고 제안하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논문의 방향은 180도로 달라졌다. 내가 과거에 일했던 회사를 포함해 내가 회사 내부자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국제 사업을 하고 있는 3개의 한국 회사를 정해서 케이스 스터디 형식으로 국제환경전략에 대해서 조사하기로 했다. 내가 관심 있는 회사를 정해 내가 원하는 연구방법으로 논문을 쓰려고 하니 내 논문작업에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정이 생기기 시작하자 논문 작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논문을 쓸 수 있는 기간은 3개월. 그중 1주일을 고민하느라 낭비했으니 남은 기간은 11주였다. 나는 곧바로 내가 쓸 논문 주제와 관련된 문헌조사를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온라인 저널을 샅샅이 뒤져서 필요한 저널을 모두 출력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가방에 넣어오다가 학교에서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는 기숙사까지 책을 많이 가져오는 것이 힘들어서 나중에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이용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트렁크 가방을 가져와서 빌릴 수 있는 최대 권 수인 20권을 빌려서 논문에 인용하고 반납한 후 다시 20권을 빌리기를 반복했다. 우리나라 회사 세 곳을 정해서 지인을 통해서 환경부서의 직원과의 인터뷰 일정도 잡았다.


대략 4주 동안 문헌조사와 인터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논문을 쓸 차례였다. 논문 길이로 정해진 글자 수는 13,000자. 나는 퇴고와 인쇄 날짜를 감안하여 매일 500자를 쓰기로 계획했다. 매일 500자씩 26일을 써야 했다. 하루에 500자를 쓴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논문을 영어로 써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글을 쓸 때마다 문법이나 어휘 그리고 논리에 맞는지 확인해야 했으며 인용할 경우 표절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생각으로 고쳐서 썼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나의 논리가 정리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날은 500자를 넘게 쓰고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모두 지우고 다시 쓴 날도 있었다.

500자 중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컴퓨터에 앉은 채 오전시간이 다 지나가 버린 날도 많았다.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책상 앞에서 논문만 썼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논문을 쓰며 3개월을 틀어박혔던 내 기숙사 방



시간은 어느덧 흘러 논문 마감 2주 전까지 다가왔다. 논문 내용은 거의 다 썼는데 내가 선정한 회사들과 인터뷰하여 분석한 내용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읽고 또 읽을수록 결론의 한 부분이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분석 모델의 인과 관계를 살펴보고 내가 만든 그래프도 검토해 본 결과 그것은 분명히 논리적 오류였다. 매우 난감했다. 내가 발견한 논리적 오류를 묵과하고 넘어갈 수도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논문을 처음부터 다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재빨리 논문 지도교수님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발견한 부분이 논리적 오류가 맞고 이 것은 내 논문의 한계라고 스스로 논문에 언급을 하면 된다고 했다. 논문은 특정 상황에서 특정 가정을 하고 쓰기 때문에 어떤 논문도 완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완벽하지 않은 문제점이나 취약점을 스스로 지적하여 다른 연구자들이 이 부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추후의 다른 연구에서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님이 없었다면 논문을 완성하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쓰는 곳을 책상에서 바닥으로 옮김


내가 찾은 논리적 오류를 포함해 몇 가지 취약점을 발견하여 한계로 밝혀두었다. 내가 인용한 모든 문헌의 출처를 규칙에 맞도록 작성하여 논문 뒤에 첨부했고 우리나라 회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영어로 번역했다. 번역한 내용의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번역한 것을 또 한 번 제 3자에게 검수받아 논문의 맨 뒤에 첨부했다. 마지막 인쇄를 남기고 철자 오류나 오타 구두점 문법 등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을 읽었는지 나중에는 어지러워서 토할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침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거의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논문을 인쇄했다. 인쇄를 하여 내 논문을 마침내 책으로 접하던 순간 후련하기도 하고 보람도 느껴지면서 함께 밀려오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논문을 학과 사무실 앞에 놓인 캐비닛 같은 곳에 넣어야 하는데 그곳에서 학과 친구들 몇몇을 만났다. 모두들 만감이 교차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자신이 그 캐비닛에 논문을 넣는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내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그렇게 나의 석사 논문이 완성되었다.




내 논문이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되었고 지도교수님의 내 논문을 학술저널에 게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학술저널에 논문을 기 위한 작업은 영국에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귀국을 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과는 이메일로 연락을 하며 논문 수정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나는 귀국을 하고 곧 연구원에 취직이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에 논문 수정 작업을 계속했다.

매일 이메일이 오갔고 논문을 수정하는데 꼬박 2주가 걸렸다. 수정작업이 끝난 논문을 지도교수님이 학술저널에 제출하기로 했고 나는 결과를 기다렸다. 교수님으로부터 몇 주간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퇴근 후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와 내 지도교수님이 함께 작업한 내 논문이 Asian Business Journal에 게재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담긴 이메일이었다. 내가 제1저자, 교수님이 제2저자로 등재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이 논문을 찾아볼 수 있도록 링크도 보내주셨다. 링크를 클릭하고 내 이름이 첫 번째로 적힌 내 논문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논문을 다른 연구자들이 조회하고 읽고 인용할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고 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내 논문이 학술저널에 게재된 것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박사과정을 밟았다면 도움이 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구글이나 네이버 다음 등의 검색엔진에서 나의 영문이름을 치면 내 논문이 검색된다. 그것은 열정의 흔적이며 흔적은 지금도 나를  나아가게 해주 에너지다.


사진 출처: 제가 영국에서 공부하며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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