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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Jan 23. 2024

이삿날 집주인이 자기 집으로 이사 올 수 없다고 했다.

영국에서 숙소 구하기

"드르륵드르륵" 내 노키아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아직 자고 있던 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오전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에 웬 문자인가 하며 핸드폰을 집어서 누운 채로 문자를 살폈다. 졸린 눈을 간신히 떠서 안경도 쓰지 않은 채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오늘 이사 갈 집의 주인아저씨였다. 그렇다. 오늘은 기숙사에서 이사하는 날이었다.


나는 대학원생 전용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규정 상 기숙사는 학기 중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논문 학기까지 다 끝나고 나면 대학원생은 모두 기숙사를 비워야 한다. 기숙사를 청소하고 다음 학기 대학원생들의 입소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기숙사에서 모든 학생이 한 명도 빠짐없이 이사를 가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조금씩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평소에 허리가 좀 아픈데 오늘 허리를 삐끗한 것 같다. 허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난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문자였다. 나는 '이런 얘기를 나한테 왜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를 계속해서 읽었다. '나는 건강 문제가 좀 있는데 허리 통증이 생기면 허리를 다시 쓰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네 방에 침대 매트리스를 올려놔야 하는데 이렇게 아픈 허리로는 매트리스를 올릴 수 없어서 너는 오늘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올 수 없다.' 이것이 문자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문자를 받고 잠에서 완전히 깼다. 정신이 번쩍 들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이사하는 당일 나더러 이사오지 말라고 하다니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이른 아침 시간에 전화를 걸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전화를 바로 받았다. 나는 인사말을 할 여유도 없이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사하는 날이 내일도 모레도 아니고 오늘입니다. 오늘 이사를 나가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 연락을 해서 이사를 오지 말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당장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데 나는 기숙사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아저씨의 상황을 걱정 할 처지가 아니었다.


주인아저씨는 그제야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다른 갈 곳이 없다고요?"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여기는 우리나라도 아니고 영국인 데다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고 곧 기숙사를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오늘은 이사하는 날 당일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주인아저씨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는지 재차 미안하다며 자신이 좀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준다고 했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곧 전화벨이 울렸다. 아저씨의 친구 중 한 명이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집으로 내가 이사할 수 있다고 했다. 더구나 그 집은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경영대학원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집이 경영대학원 근처에 있다는 것이 장점인양 얘기했지만 나의 대학원 과정은 논문학기까지 끝난 시점이어서 나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달리 이사 갈 곳이 없었기에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집들이 빼곡이 줄이어 있는 영국의 평범함 주택가


아저씨가 문자로 보내주신 주소를 들고 그 집을 찾아갔다. 경영대학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집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는 주택가 사이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문을 두드리고 주인을 찾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 한 명이 나왔다. 아, 주인아저씨가 자신의 친구가 혼자 사는 집이라고 했는데 그 친구의 성별을 확인했어야 했다. 아저씨 혼자서 사는 집에는 이사 올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을 열어달라고 해놓고 바로 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기에 방을 좀 보겠다고 얘기하고 일단 들어갔다.


집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공사장의 창고 같았다. 어쨌든 얘기를 했으니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는데 방에는 침대 매트리스 하나만 바닥에 놓여있을 뿐 옷장이나 책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방금 이 방을 들어올 때 문을 열었던 기억이 없는 것이었다. 뒤돌아서 확인하니 방에 문이 없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더 놀라운 건 내가 방에 문이 없냐고 물었을 때 이 아저씨가 한 대답이었다.

"나는 스님과 같아요."  얘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 이라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뒷목을 잡을뻔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방 잘 봤다고 얘기하고는 바로 그 집을 나왔다.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오늘 이사 가기로 한 집의 주인아저씨에게 전화를 하여 항의했다.

"어떻게 이런 집으로 이사하라고 소개할 수가 있습니까?"라며 그 집 상황을 이야기했다. 주인아저씨는 집의 상태가 그런 줄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더 이상 소개해 줄 만한 곳도 없다고 했다. 나는 절망스러웠다.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짐을 가지고 나오며 이사를 하고 있었고 많은 수는 이미 이삿짐과 함께 이사할 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같은 플랏에 살던 중국 언니가 방금 보고 온 집은 어떠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중국 언니는 나와 같은 플랏(Flat: 거주자들이 각자의 방을 사용하면서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영국식 아파트의 형태)에 사는 나보다 5살이나 위인 대학원생이다. 아침에 집주인아저씨로부터 말도 안 되는 연락을 받고는 너무 어이없고 걱정이 되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국 언니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했었다. 중국 언니에게 방금 다녀온 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흐느껴 울어버렸다. 나는 정말 갈 곳이 없었다!

기숙사에서 나가야 하는 날짜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논문을 쓰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이사 갈 집을 알아봤고 집을 여러 번 확인하고 고심한 끝에 계약서까지 써놓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너무 서럽고 억울했다.


갈 곳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흐느껴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중국 언니는 자기가 이사 가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말을 꺼냈다. 너무도 고마운 말이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언니는 다른 대학원에 다니는 자신의 사촌 동생도 기숙사를 나와야 해서 둘이 같이 살 숙소를 미리 마련해 놨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 폐를 끼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언니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사촌 동생과 같이 사는 집에 나까지 얹혀살다니..... 나는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이 언니는 당장 갈 곳이 없으니 새로운 집을 알아볼 때까지만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언니의 말처럼 당장 오늘 묵을 곳도 없었기에 나는 고마운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국 언니가 부른 van 택시에 내 짐도 함께 넣었다. 이민가방 하나와 캐리어 가방 하나가 내 짐의 전부였다. 중국 언니의 새 숙소에 도착했지만 나는 짐을 풀지 않았다. 당장 입을 옷과 세면도구와 같이 꼭 필요한 것만 꺼내놓고 당장이라도 내일 이사 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기 위해서였다. 중국 언니는 두 명이 사용할 수 있는 큰 침대를 나도 같이 쓰자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나는 2인용 소파에서 담요룰 덮고 몸을 쪼그린 채로 잠을 잤다. 불편했지만 불평하거나 더 이상 주인아저씨를 탓하지도 않고 그냥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집을 계속 알아봤다. 중국 언니네 집의 인터넷이 자꾸 끊겨서 한국 친구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다. 내 사정을 얘기하고 낮 동안 내 노트북을 가져가서 인터넷을 좀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 언니네 집으로 임시 이사를 온 지 2~3일쯤 되는 날 한국 친구 집에서 인터넷으로 이사 갈 월세 집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내가 이사 갈 뻔했던 집의 주인아저씨였다.

"나는 지금 이케아에 가고 있어요."라는 단문 문자였다.

도대체 뜬금없이 왜 나한테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답하지 않고 무시했다. 곧 또 문자가 왔다.

"나는 지금 이케아에서 매트리스를 샀어요."

아, 이 아저씨가 나더러 이제 자기 집으로 이사 와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으니 애쓰지 마십시오."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내 문자에도 불구하고 잠시 후 또 메시지가 왔다.

"나는 매트리스를 지금 차에 싣고 있어요."

"오늘 집에 가서 내가 매트리스를 설치하면 방은 모두 준비가 됩니다." 주인아저씨는 이런 짤막한 문자를 하나씩 내게 계속 보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쯤 해서 나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얘기했다.

"저는 아저씨 집으로 이사 가지 않습니다. 이사하는 당일에 이사오지 말라고 얘기한 사람을 어떻게 믿고 다시 이사를 가라는 말입니까? 괜히 애쓰지 마십시오."


그러자 아저씨는 진지한 말투로 내게 설명했다.

"내가 평소 허리에 지병이 있는데 허리가 다시 아파오면 공포에 빠집니다. 그날 갑자기 허리가 삐끗하여 나는 다시는 허리를 못 쓰게 될까 봐 너무 겁이 났어요. 그때 허리를 다친 것은 다행히 가벼운 증상이었고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면 우리 집으로 이사 와도 좋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온다면 차로 짐을 어서 이사를 도울게요."

장난치듯 계속 단문 문자를 보낼 때와 달리 아저씨의 말은 진지했고 진심임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생각해 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사실 며칠째 이사 갈 곳을 검색해 봤지만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은 가격이 너무 비쌌고 가격이 저렴한 곳은 시내에서 너무 멀거나 공과금을 별도로 내거나 하는 등 조건이 좋지 않았다. 이 주인아저씨가 이삿날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긴 했지만 대신 친구 집을 알아봐 주려는 노력도 했고 이렇게 다시 연락해서 진정성을 보여주니 한 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국 언니네 집에서 오래 신세 지기도 미안한 마음에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이 아저씨네 집으로 이사 가기로 결심했다.




다시 이사 가기로 한 날 이 아저씨는 약속을 지켰다. 와주기로 한 시간도 정확히 지켜서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언니에게 그동안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후 짐을 싣고 나의 두 번째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집주인아저씨 말고도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는 영국인 교수 한 분과 폴란드 여성 한 분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새로 이사간 집의 주변 풍경: 오른쪽 멀리 내가 살던 기숙사 건물 2채가 나란히 있는 것이 보인다



저녁이 되자 폴란드 여성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숙소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폴란드 여성은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린 20대 중반 정도의 젊은이로 돈을 벌기 위해 영국으로 와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는 성격이 매우 독특하고 유쾌하며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주인아저씨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학식도 높았고 진지하며 때로는 유머스럽고 배려심도 많았다. 교수라는 영국인은 50대 중반쯤 되는 사람으로 런던에 가족이 있어서 강의가 있을 때만 이 집에 온다고 했다.


주인아저씨와 폴란드 여성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며 친하게 지냈고 서로 장난도 쳤지만 가끔은 다투기도 했다. 한 번은 둘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서 싸우는 소리가 3층인 내 방까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해서 1층으로 내려갔더니 집 안을 청소하는 문제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 집에 사는 4명이 번갈아서 1주일에 한 번씩 주방과 욕실을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폴란드 여성은 욕실과 주방이 많이 더럽지 않아서 굳이 날을 정해서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나는 주인아저씨의 입장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의 편을 들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4주에 한 번은 내 차례이니 나는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내가 자진해서 청소를 하겠다고 하자 둘의 싸움은 종료되었고 주인아저씨는 기쁨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해프닝이 되었다.


주인아저씨는 내가 이 집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영국 상공회의소에서 제공하는 창업 프로그램을 수강해 보라고 권하셔서 8회에 걸친 프로그램을 수강해 보기도 했다. 아저씨 친구들이 아저씨와 저녁식사를 같이하러 집으로 놀러 올 때면 나에게도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해서 같이 어울려 보기도 했다. 아저씨가 자신의 친구집을 방문할 때도 같이 가자고 해서 영국의 다른 집도 방문해 보았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때나 근교로 당일치기 여행을 갈 때도 함께 가자고 하셔서 혼자 살았다면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았다.


폴란드 여성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폴란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영국에 와서 일을 하는지 그리고 영국에서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어떻게 지내는지 등. 그는 나의 대학원 생활과 동양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동유럽을 여행하고자 하는 계획을 얘기하자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여행가방이 없는 나에게 자신의 배낭을 빌려주기도 했다. 우리는 나이차이는 많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저녁시간마다 함께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가끔 주인아저씨와 폴란드 여성 그리고 내가 저녁시간에 함께 모이면 우리는 새로운 가족 같았다. 저녁 요리는 각자 했지만 같은 식탁에서 서로의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요리한 음식 맛도 보면서 그날 있었던 일과 고민되는 일 재미있는 일 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집에서는 3개월만 지냈지만 기숙사에서 생활한 9개월 보다 내게 더 많은 추억을 주었다.


삶의 여정은 때로는 내 계획과는 무관하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때도 있지만 그 여정 속에서 그리고 그 길 끝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있기도 하다. 자칫 인연을 맺지 못할 뻔한 이 집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내 마음속 서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 출처: 제가 영국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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