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율 Jan 30. 2024

영국상인이 내 동전을 내동댕이쳤다.

대학원 석사논문을 마치고 졸업식까지 시간 여유가 생겨서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마지막 날 프랑스에서 영국행 배를 탔다. 큰 여객선을 타고 몇 시간을 달려서 영국 항구에 도착한 후 내가 살고 있던 Leeds(리즈)로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시외버스를 타고 5시간가량 걸려서 Leeds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경이었다.


Leeds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잠깐 들르기로 했다. 오랜 시간의 여행과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로 매우 피곤했지만 잠깐 시장에 들러서 과일을 사고 싶었다. 시장에 도착하여 이리저리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사과를 발견하고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과 한 봉지의 가격을 물었더니 상인은 1파운드라고 했다. 나는 동전지갑을 꺼내어 1파운드(2009년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0원)를 상인에게 내밀었다(영국의 파운드화는 2파운드까지 동전이고 5파운드부터 지폐이다). 그런데 사과를 파는 상인이 갑자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Fuck you!

그러면서 동시에 그 상인은 내가 그에게 준 동전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동전을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떨어진 동전은 반동으로 높이 튀어 오른 후 다시 떨어졌다가 어디론가 통통 튀기며 가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 오르며 어디론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동전을 따라갔다. 내가 그러는 동안 그 상인은 엄청나게 화가 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Everybody does like this!" (모두가 이런 식이지!) 그리고 나는 마침내 동전이 멈춘 곳에서 동전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 동전은 파운드화가 아니라 유로화였다.


나는 그제야 그 상인이 욕을 한 대상이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파운드화와 유로화의 환율 차이가 컸다(2009년 당시 1유로가 약 1700~1800원). 짐작컨대 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높은 파운드화를 내려다가 실수로 가치가 낮은 유로화를 냈고 이 상인이 많은 손해를 본듯했다. 하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로 욕을 하며 내 동전을 내동댕이 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과를 사려다가 갑자기 욕을 듣고 동전이 내팽개쳐지자 나 역시도 화가 많이 나있었다. 나도 그 상인에게 똑 같이 욕을 했다.


Fuck YOU!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욕을 입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영어의 특성을 알고 두 번째 단어인 YOU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매우 크고 화가 난 목소리로 설명했다.

"나는 방금 유럽여행을 마치고 왔습니다. 내 지갑 안에는 파운드화와 유로화가 섞여있죠. 유로화를 낸 것은 나의 잘못이지만 당신이 내가 동전을 잘못 냈다고 얘기했다면 나는 사과를 하고 다시 파운드화를 냈을 겁니다."

"이제 사과(apology)는 필요 없을 것 같고 나는 여기서 사과를 사지 않겠습니다."


그 상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장 안에 그리고 그 사과 상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과를 파는 상인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차렸겠지만 어떤 사람도 끼어들거나 거드는 사람도 없었다. 시장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영국인이거나 서양인이었어도 혹은 내가 남자였어도 그 상인이 나에게 욕을 하고 동전을 던졌을까?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동양인인 데다가 여자여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서러웠다.


집으로 도착하자,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는지 집주인아저씨가 집에 있었다. 여행을 잘 다녀왔냐는 아저씨의 물음에 여행은 잘 다녀왔는데 방금 Leeds 시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아저씨는 파운드화와 유로화의 환율차이 때문에 종종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이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라며 내가 많이 놀랐겠다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쯤 되어 나는 나도 그 상인에게 똑같이 쏘아붙였다고 아저씨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 동안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는 놀란 표정과 함께 통쾌하다는 듯 얼굴에 미소도 머금고 있었다.


"네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다고?"



나는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데다가 누구한테 먼저 시비 거는 일도 없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욕설이 내 입 밖으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시장에서 있었던 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가 너무 무례했고 그것에 대해 오히려 참는 것이 나를 우습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상인에게 파운드화 대신 유로화를 지불했다고 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속이려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5만 원에 가까운 물건의 값을 치를 때 구매자가 실수로 5만 원권과 색이 비슷한 5천 원을 내밀었다면 상인은 '5만 원이 아니라 5천 원인데요?'라고 가볍게 얘기하지 않을까? 더욱이 과거에 그런 안 좋은 경험을 했다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똑같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상인의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그 상인에게 쏘아붙이며 말한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경험이 하나 있었다.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나는 대학원생 전용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기숙사는 하나의 플랏(Flat: 세입자들이 각자의 방을 사용하면서 주방과 거실은 함께 공유하는 일종의 아파트 형태의 주거양식)에 5명이 함께 공유하는 형태였다. 나를 제외한 4명은 각각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일본, 중국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기숙사에서 이미 반년을 넘게 보내며 이 플랏 친구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쌓여 있었다. 식사 시간에는 각자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여 주방에 있는 식탁에서 먹던가 아니면 자기 방으로 가져가서 식사를 했는데 가끔 때가 맞으면 주방에서 식사를 같이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식사시간이 맞지 않으면 모두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사람의 방을 찾아가지 않는 한 서얼굴을 보기는 힘들었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3시경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기숙사에 살면서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놀라서 내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플랏 안의 복도가 연기로 가득했다. 사이렌은 요란하게 계속 울렸고 나는 다른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플랏 밖으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사이렌은 우리 플랏에서만 울린 듯했고 기숙사를 관리하는 관리자분들이 우리 플랏에 올라가셔서 왜 사이렌이 울렸는지 살펴보셨다.


살펴본 결과 주방에서 누군가가 프라이팬에 음식을 올려놓은 채 인덕션을 켜놓았고 그것이 장시간 방치되어 음식이 타면서 연기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 베네수엘라 출신 친구가 자기가 프라이팬에 음식을 올려놓고 잠깐 자기 방으로 왔는데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그만 깜빡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이렌이 재빨리 울려서 우리들이 플랏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불이 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실수를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 친구의 태도는 뭔가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도 다치거나 물건의 피해를 보지 않았으며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고 평소 친분도 있는 친구이기에 나는 그냥 이 상황이 어서 종료되기만은 기다렸다. 우리가 1층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베네수엘라 친구는 자신의 다른 친구를 만났는지 깔깔거리며 신나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서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던 일본 언니(나 보다 4살 위여서 나는 언니라고 생각하며 지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베네수엘라 친구에게로 다가가 큰 소리로 얘기했다.


Are you laughing? We could have died because of you.
(너 웃어? 우리는 너 때문에 죽을뻔했어)


매우 흥분하고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베네수엘라 친구는 자신의 친구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자신이 요즘 공부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잠깐 친구와 전화하다가 깜빡한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자신의 잘못을 재차 사과했다.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일본 언니는 베네수엘라 친구의 사과를 바로 받아들였고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 울고 있었다. 나는 둘이 다툴까 봐 재지 하려고 중간에 서 있었지만 다행히 베네수엘라 친구의 사과로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일본 언니 말이 맞았다. 만약 인덕션 옆에 인화물질이 있었거나, 사이렌이 오작동하여 우리가 빠르게 대피하지 못했다면 연기를 마시고 위험에 빠졌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 익숙한 나는 안전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는데 지진과 해일 등의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 어렸을 때부터 지진대피 훈련과 수영 등 많은 안전교육을 받은 일본 언니는 안전에 더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안전에 대해 불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실수로 화재가 날뻔했고 같이 사는 친구들이 대피하는 상황까지 갔는데도 친구와 깔깔거리는 사람에게 잘못을 일깨워 주는 한 마디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또 위험한 일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 친한 사이라도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항상 유쾌하거나 기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불쾌하고 억울하며 속상한 일도 많이 생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때로는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잘못된 것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면 내가 또는 타인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과를 팔던 그 상인이 그 이후로 나처럼 동전을 잘못 내는 사람이 있다 해도 화내지 않고 동전을 잘못 냈다고 의사표현을 하길 바란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 세월 동안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고 그때 내 생각을 얘기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되고 속상하다. 그때 영국 시장에서 그 상인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엄청나게 후회했을 것 같다. 하지만 욕을 사람에게 똑같이 욕설로 대꾸하지 말고 현명하고 침착하게 허를 찌르는 그런 말을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전 12화 초대받은 음식으로 개미국수가 나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