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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Jan 25. 2024

초대받은 음식으로 개미국수가 나왔다.

중국 친구들과 함께 보낸 추석

그날은 추석이었다.

며칠 전부터 명절이 다가올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지내는 명절이 즐겁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추석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평소에 외롭던 마음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새로 이사 온 집에도 하우스메이트(Housemate: 가족이 아니면서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유럽인들이라서 동양의 명절인 추석에 대해서는 날짜는 물론 그 의미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석 2~3일 전쯤 기숙사에서 살 때 친하게 지냈던 대학원생인 중국 언니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곧 추석인데 그날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느냐하고 말이다. 추석에 아무 일정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집에서 시리얼과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을 나는 그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너무 좋다며 그날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추석 전날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추석에 초대해 준 중국 언니네 집에 선물로 가져갈 쿠키 한 상자와 초콜릿을 한 상자 샀다. 추석 날에는 평소에는 입지 않던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스카프로 나름 멋을 내어 특별한 날의 기분을 내었다.




추석 당일이 되어 중국 언니네 집에 도착하자 언니와 그 사촌 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숙사를 나와 이사 한지 한 달 가까이 된 후였고 내가 이사 문제로 겪었던 우여곡절을 모두 알며 나를 도와주기도 한 사람들이라서 내 안부를 물으며 더욱 반겨주는 듯했다.

집안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 풍겼다. 파인애플 파이, 중국식 부침개, 미역국, 고기와 두부를 넣은 매콤한 중국식 스튜, 과자류, 수박 배 딸기 포도 등 각종 과일 그리고 냉국수까지도 있었다. 세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었다.


애피타이저로 파인애플 파이를 조금 먹고 곧 본격적인 식사를 할 준비를 했다. 식사할 음식으로 미역국과 냉국수를 혼자 먹을 개별 그릇에 담았고 중국식 부침개와 매콤한 중국식 스튜는 가운데 놓고 각자 먹을 만큼 자신의 앞 접시에 담아먹도록 세팅을 했다. 음식을 함께 세팅한 후 모두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내 앞에 내 몫으로 놓인 냉국수를 먼저 먹으려고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냉국수 안에 검고 작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개미였다! 설마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좀 더 숙이고 자세히 봤는데 그 작고 검은 존재는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개미가 분명했다.


너무도 당황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중국 언니와 그 사촌 동생을 보니 그 국수를 그냥 먹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중국 사람들은 네 발 달린 건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을 들어봤지만 그럼 이 개미를 먹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개미가 요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개미가 있는 줄 알면서도 그냥 요리한 건지 알 수도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개미를 발견하고 당황한 그 짧은 시간이 내겐 정말 영혼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예전에 겪었던 외국에서의 음식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대학원을 다니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 나는 출장으로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바이어들을 만나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회전식탁에 산해진미가 다 차려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려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귀뚜라미 튀김과 자라 껍질이 귀한 음식으로 차려졌고 잘 알지 못하는 식물로 만든 무침 음식도 있었지만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먹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바이어들은 그날 방문했던 공장과 계약 내용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었기에 나는 먹었던 음식을 조심히 휴지에 뱉은 후 오렌지 주스만 계속 마셨었다. 그날 하루 종일 공장 방문을 하느라 엄청 허기가 졌음에도 주스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을 먹으면 속이 좋아지지 않는 비위가 약한 사람이었다.


전시회에 참석하느라 파리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회사의 상사와 동료가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전통음식을 먹어봐야 되지 않겠냐며 전시회가 끝나고 저녁때가 되어 정통 프랑스 음식을 요리하는 식당에 갔었다. 그 식당에서는 멋있게 썬 프랑스식 햄이 보기 좋게 나무 도마에 올려져 나왔고 그 햄과 함께 먹기 좋은 치즈도 서빙되었다. 회사의 상사 분은 값이 꽤 비싼 와인도 주문했다.

그런데 프랑스식 햄이 나에게는 날고기 같았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는 그 햄을 먹을 수가 없었다. 치즈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치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던 체다치즈나 모차렐라 치즈 같은 그런 맛이 아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래되고 역한 냄새가 나는 치즈였다. 함께 자리에 있던 상사분과 동료는 그 음식들을 맛이 좋다며 엄청난 칭찬을 하며 먹고 있는데 내가 음식 맛이 안 좋다며 불평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하고 굶었다.




예전에 출장으로 해외에 갔을 때 접했던 낯선 음식은 식당에서였기 때문에 안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 언니 집에서 접한 이 음식은 초대한 사람이 직접 요리한 음식이었다. 초대해 주고 직접 요리한 성의가 있는데 먹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먹고 싶은 만큼 덜어먹는 음식이 아닌 개별로 내 몫으로 담아진 음식이었다. 물론 음식 안에 개미가 들어있는 것이 또렷이 보이기 했지만 문화의 차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개미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비위도 약한 내가 그 개미국수를 먹었다.


물론 아주 조심히 먹었다. 혹시라도 개미가 국수에 붙어서 내 젓가락으로 올라올까 봐 아주 조심조심 천천히 먹었다. 개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냉국수를 처음 보고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젓가락질을 하는 내 모습을 보았는지 두 사람의 식사하는 모습도 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입이 되어 그들도 불편해한다고 나 혼자서 느끼는 것인지 그들이 진정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개미를 피해 국수를 어느 정도 먹고나서 초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든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이제 나는 배가 불러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배가 많이 고팠고 냉국수 외의 다른 음식들은 모두 맛있어 보이고 이물질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언행일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냉국수 이후로 다른 음식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 후식으로 과일만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그날 헤어지기 전까지도 그리고 그날 이후 중국 언니와 계속 연락하고 지내면서도 그 개미국수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원 기숙사에 살면서 중국 언니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가 되어주었고 언니가 새롭게 시도한 음식을 나에게 맛 보라며 나눠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볼일이 있을 때 어두운 밤길을 기숙사까지 함께 걸어와 주는 동료도 되어주었고 내가 기숙사에서 이사 가는 날 갈 곳이 없어지자 나에게 본인 숙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속이 깊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이런 좋은 사람에게 사소한 음식 문제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외국에서 가끔 겪는 이런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문화적 차이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고 언급했을 때 상대방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표현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혼자서 믿고 있을 뿐이다.


[대표사진은 올해 6학년 올라가는 제 딸이 그린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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