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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율 Feb 01. 2024

겸손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 많이 쓰여서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너무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의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할 때는 단순히 내가 해외에서 겪었던 일 중 흥미롭고 감동적이며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경험과 에피소드를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 이뤄낸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타국에서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볼 때 혼자 볼 때 보다 여러 명이 함께 보았기에 기쁨은 수십 배가 되었다. 어학연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끔 해주는 정다운 또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힘든 일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떠날 때 같은 집에 사는 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지에서 수없이 길을 잃었을 때 지나가는 낯선 행인들의 도움으로 나는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도쿄에서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 친절한 역무원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든 우리나라로 돌아오기야 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친절하고 의욕적인 지도교수님을 만났기에 논문을 무사히 마시고 학술저널에 까지 논문을 싣을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이사하던 날 중국언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부담스러운 경비를 지불하면서 호텔에서 묵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과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들보다 훨씬 더 잘났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없고 당연하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International Business(국제경영학)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시는 분인데 그 강좌의 첫 강의 때 그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러했다.


"나는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으려고 정말 노력했지요. 나는 대학에서 보다 삶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인도에 있는 어떤 지역에서 어떤 식당이 맛있는 집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강의를 하겠지만 여러분도 나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강의가 일방적인 강의가 되지 않고 여러 분과 서로 의사소통하며 상호작용하는 강의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교수님은 내가 아는 한 우리 학과의 교수진들 중 가장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셨으면서 가장 권위적이지 않은 분이셨다. 한 번은 공강시간에 볼일이 있어서 학교 근처의 시내에서 물건을 사러 간 적이 있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한 중년 남성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정면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고 뒷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머리가 반쯤 벗어진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국제경영학 강의를 하시는 우리 교수님 같아 보였다. 하지만 차림새가 동네 아저씨와 같은 모습이어서 설마 하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그 과목의 강의가 있었고 교수님은 내가 아까 시내에서 본 옷차림 그대로 입고 계셨다. 그분이 교수님이 맞았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옷차림이 너무 캐주얼한 것은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강의에서 하시는 말씀과 그분의 행동에 비추어 봤을 때 오히려 권위를 내려놓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세미나 수업에 참석하면 다른 수업에서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의견을 내기 위해 손을 든다. 그리고 그 어떤 질문이나 의견에도 이 교수님은 틀렸다거나 잘못됐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모든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시고 경청하시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학생과 교수가 상호작용하는 강의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칭송하는 높은 자리에서 겸손을 몸으로 실천하며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은 감사한 일들로 넘쳐나고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연재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기회를 다시 갖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존재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또한 끊임없이 배워야 하기에 겸손해야 하고 배울 수 있기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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