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정들어 버리는 이유는
자주 마주했기 때문이기에
반대의 방식을 알고 있지만
쉽게 할 수는 없어서
오르막을 돌아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계단을 내려와
휘청이는 발목을 부여잡고
손잡이가 부러진 유리문을
미워서 밀어 버린다
친구와 빈 곳 없이 담았고
쓰레기가 보이는 텃밭을
내려보는 집을 꿈꿨으며
옥색 화장실 아래 침대를 두고
잠을 잘 수 있었다면
바다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너무 많은 시간을 부여받은 게
부담스러워 자다가도 깨지만
상처의 약은 시간뿐이니
오발탄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은
시간을 믿든지 시간을 끊든지
두 가지밖에 없어
겁쟁이는 전자가 될 수밖에
사람이 깔려 죽은 서울역
뒤편 일본인의 터가
빨갛게 칠해진 극단 옆에
고물상 크레인 밑을 지나
고양이들 시체를 상상하며
덕지덕지 붙은 돌들 사이
숨 조여 입술만 겨우 내밀고 사는
고립한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