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을 올려다 보는 너에게
"엄마, 공부가 힘들면 나가서 하늘을 봐."
아이야.
너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첫 기관 생활을 시작했어.
너는 매일 매일 계절 속에서 가까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랐어. 네가 눈뜨고 있는 시간엔 아마도 실내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 거야. 네가 다닌 어린이집은 매일 오전, 인근의 자연으로, 또 인근의 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는 곳이었어.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갔어. 눈이 오면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나들이를 나갔어. 낮잠 자고 일어난 오후가 되면 너희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마당놀이, 모래놀이를 했어.
그 어린이집에 처음 널 등원시키고 한 달쯤 되었을까. 첫 신입 조합원 교육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10년도 더 된 일이라 다른 교육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뚜렷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어. 그 날 엄마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너희가 자주 나들이가는 장소들을 그 길 그대로, 따라 돌아다니며 놀아보는 거였어. 그렇게 너희와 똑같이 나들이를 나가서, 너희가 하듯 나무를 타고 올라 보고 쓰러진 나무 기둥에 기차처럼 차례로 올라타 보기도 했어. OO 공원처럼 이름이 붙은 곳은 낯설지 않았어. 그런데 어떤 나들이 장소는 이름도 없는 언덕이더라고. 너보다 어린이집을 먼저 다녔던 아이들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는 곳들도 여럿이었어.
그 중 한 곳은 'OO산'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인 야트막한 언덕이었어. 아이들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라 특히 기억에 남았고 특히 더 정겹게 느껴졌어. OO산은 작은 무덤이 몇 개 있고 그 아래로 텃밭이 있는 작은 둔덕이었어. 너희들은 그 작은 무덤에 올라가 굴러 내려오면서 논다고 했어.
"남의 무덤에서 그래도 돼요?"
무덤에 올라가 굴러 내려온다고? 엄마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왜냐하면 엄마도 초등학교 때 OO능이라는 곳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엄마도 너희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커다란 무덤에서 굴러 내려오면서 놀았거든. 그런데 선생님께 들켜서 아주 '혼꾸녕'이 났던 기억이 있거든. ㅋ
엄마도, 함께 갔던 부모들도 너희들이 혼구녕이 날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었나 봐.
그런데 텃밭을 매일 돌보러 나오는 그 땅의 주인인 어르신들이 오히려 좋아하신다는 거야. 외로운 무덤 옆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는 거야. 너희들을 만나면 너무 반가워 하시고, 텃밭 살피러 나왔다가 직접 기른 야채도 가끔 주신다는 거야. 뿐만 아니라 일부러 너희들 주려고 간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하셨어.
엄마는 그 날, 너희들이 다니는 나들이길을 따라 나들이를 간 것이 참 좋았어. 너의 하루를 엿본 기분이었어. 네가 매일 마시는 공기와 바람과 햇볕을 엄마도 조금은 느껴 본 시간이었어.
그래서인지, 너는 아무것도 없어도 늘 자연 속을 상상하며 놀았어. 어느 명절이었던가? 할머니 댁에는 놀잇감이라고는 없는데, 심심하니까 동영상 보겠다고 조르는 사촌 동생들을 모아 하룻밤 잘 때 입으려고 가져간 옷가지를 거실에 늘어놓더니 이 옷은 징검다리고, 마룻바닥은 물이라며 거길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서 놀더라. 어른들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어도 잘 논다면서 흐뭇해했지.
아이야.
너는 어린 시절, 하늘을 천장으로 삼아 마음껏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자랐어. 아빠가 자랐던 시골 환경처럼 대자연을 무대로 자란 건 아닐지 몰라도, 10분만 걸으면 산이 있는 변두리 지역이었어. 누군가는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한다는데, 엄마, 아빠는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면서도, 가능하면 자연이 있는 어린이집과 환경을 찾아 일부러 이사를 했지.
너는 자연 속으로 매일 나들이를 다니면서 몸을 스쳐 가는 바람과 눈과 비, 내리쬐는 햇빛, 매일 다른 온도와 습도를 온몸의 감각으로 느꼈어. 나들이길에 만나는 풀과 나무와 꽃들,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보고 듣고 만졌지. 그 덕분인지 너는 지금도 공벌레를 귀여워하고 지렁이를 손으로 잡을 수 있지(지렁이가 뜨거울까 봐 함부로 만지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봄이 오면 뒷산으로 나들이를 가 진달래를 따 왔어. 터전에 돌아오면 오후에는 그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어 먹었지.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나는지 조용히 귀를 기울였지. 여름이면 매미 허물을 주워 가슴팍에 브로치처럼 달고 다녔지. 가을이면 낙엽을 모아 멋진 만다라를 만들었어. 겨울이면 눈 위에 벌렁 누워 팔다리를 움직이며 천사가 되어 하늘을 바라보았지.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봄이 오면 자주 가던 OO산 연못에서는 도룡뇽과 개구리알을 찾아 보며 놀았지.
그 시기엔 주말이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자주 캠핑을 다녔어. 캠핑을 가면 불을 피울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녔고, 그렇게 나가면 도토리나 나무 열매를 주워 오기도 했지. 어른들이 모래 바닥에 불을 피우고 있으면 옆에 와서 너희들도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 똑같이 불을 피웠어. 불 피우기에 안전한 공간이면 어른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너희들의 시도를 못 하게 막지는 않았어. 극단적 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위험한 일도 해 보아야 스스로 조절하는 힘도 갖추게 되니까. 물이 있는 곳에 가면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돌멩이를 주우러 다니는 것도 놀이였고 물수제비만으로도 몇 시간을 놀았지.
중학생이 되어 네가 인터넷 신문에 놀이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네가 꼽은 기억에 남는 놀이들은 죄다 '하늘을 천장으로 삼아' 놀던 기억이더라.
너는 ‘물수제비 뜨기’를 잘 하려고 강가에서 연습했던 이야기를 썼어. 엄마에게 보여 주려고 하면 잘 안 되고 혼자 하면 잘 되서 안타까웠다고도 썼지. 동해안의 작은 해수욕장 부표 부근에서 친구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조개를 잡았던 것, 모래 속에 온몸을 묻고 누워서 깔깔거리던 것, 친구를 모래에 묻어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어. 한겨울 제주도 휴양림에서 고라니 엉덩이를 보고 쫓아갔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어. 너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함께 보았던 날들도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품고 있었어. 엄마와 양옆으로 오직 바다 밖에 보이지 않는 바닷길을 300키로 달려 도착한 미국의 최남단, 햇빛이 뜨거웠던 키웨스트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쿠바가 보이는지 눈을 크게 떴던 순간도 기억하니? 비록 쿠바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바다 너머 저멀리 수평선을 말 없이 오랫동안 벅찬 마음으로 바라보았지.
한 작가는 “가장 훌륭한 배움터는 천장이 하늘”(주1)이라고 했어. 엄마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영국의 전문가는 “밖에서 놀 때 맛본 자유는 지붕이 머리 위에 있는 환경에서는 느끼기 어렵다.”고(주2) 말했어. 너는 그렇게, 가장 훌륭한 배움터에서 자유롭게 자랐단다.
누군가는 매일 똑같은 나들이가 아이들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학습이 중요하다 했지만, 천만에! 자연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긴 어려웠을 거라고 믿는다. 계절과 절기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바뀌고 바람의 온도와 습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하루하루가 결코 같지 않은 새로운 날이라는 걸 무슨 수로 감각할 수 있을까? 태양과 바람, 바깥 공기만큼 너희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줄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아이야.
너는 지금 집을 떠나, 엄마, 아빠를 떠나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중이지. 처음 집을 떠난 경험이 쉽지 않을 거야.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스스로 선택한 일이 '사서 고생하는' 일이네. 그런데 어느 날 네가 그러더라.
"엄마, 공부가 힘든 날은, 나가서 하늘을 봐."
아이야.
엄마는 그 말에 너무 안도가 되었어.
네가 어린 시절 내내 경험했던 바깥 공기의 감각과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고 느꼈어. 지금처럼 그렇게 자연의 선물을 매일 단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살아있다는 감각이란다. 그게 바로 존재의 감각이란다.
지금처럼 그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봐도 돼. 그저 나무 아래 그늘에서 잠깐 지나가는 바람을 느껴봐도 돼. 터덜터덜 걷다가 보도블럭 사이를 뚫고 나오는 이름 모를 풀에 머물러도 돼. 그러면 너도 자연의 일부라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러면 들꽃처럼, 참새처럼, 다람쥐처럼 오늘도 하루, 감사하며 살아보자, 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생명의 안식처인 자연이 동트고 있었고, 자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넓은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자연과 여명, 질문의 해답은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주3)
오늘도 너를 응원하는 엄마가.
※ 주1: 편해문,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2009, 소나무.
※ 주2: EBS 다큐, 《놀이의 기쁨 2부 - 밖에서 놀아야 큰다》,https://www.youtube.com/watch?v=RU_lWEX96u0
※ 주3: 헨리 데이빗 소로우,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2012, 오래된미래.
글에 들러 주시는 글친구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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