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다 할게. 밥도 주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털 청소도 할게."
아이야.
넌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어. 생각날 때마다 고양이를 키우자고 졸랐지.
엄마는 네가 어릴 땐 너를 키우는 것도 벅찼기 때문에 생각하기 어려웠어. 만약 키운다 해도 네 선택과 네 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책임질 수 있을 때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10살은 넘어야 해. 자기 말을 책임질 수 있으려면.'
또 생각했어.
'생명을 키우려면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감행할 수는 없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또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하겠지, 라는 생각도 있었어. 그런데 너의 고양이 사랑은 식지를 않았어. 길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양이를 지켜보고 고양이에게 말을 건넸어. 고양이에 대한 책도 읽기 시작했어.
네가 11살이 되던 해, 드디어 고양이를 키워 볼 기회가 왔어.
엄마 회사의 OO 언니가 안식월을 맞아 한 달간 해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게 되어 키우는 고양이와 개를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어. 드디어 기회가 온 거지.
네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지 알아볼 기회,
우리 가족이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을지 경험해 볼 기회.
네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지 알아본다는 건, 네가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을지 확인볼 기회라는 걸 의미했어.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어. 고양이를 키운다면 고양이에게 필요한 일들도 할 수 있어야 되는 거거든.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네가 그걸 다 할 수 있어야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거야."
"엄마, 내가 다 할게.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화장실 청소도 할게. 털 청소해야 되니까 청소기도 매일 돌릴게. 엄마, 우리가 한 달 맡아서 키워 보자, 응?"
너의 약속을 믿고 우리는 고양이를 한 달 간 맡아 돌보기로 했어. 이미 사진으로 고양이들을 본 너는 눈에 하트를 뿅뿅 띄우며 아이들이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어.
드디어 고양이가 집으로 오는 날.
엄마의 동료 부부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고양이와 지내려면 필요한 온갖 고양이 물품들을 싣고 우리집으로 왔어. 너는 버선발로(?) 뛰어 나가 고양이를 맞이했지.
그들은 직접 고양이를 데리고 올라와 주었어.
고양이를 바로 꺼내면 공간이 낯설어 숨어 버릴 수도 있다고,
잠시 케이지 안에 둔 채 케이지를 안고 우리집을 돌면서 우리집의 공기를 맡고 공간을 살펴 보도록 해 주었어.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등등을 세팅하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꺼냈어. 고양이 소개도 해 주었지.
"얘는 OO이고, 얘는 ㅁㅁㅁ야. 둘이 남매인데 같이 버려졌어. '카라'에서 자원봉사하다가 만났어. 오랫동안 아무도 안 데려가서 우리가 데려오게 되었어. 성묘 고양이는 인기가 없거든요. OO은 잠이 많은 편이고 순한 편이고 쓰다듬아주면 좋아해. ㅁㅁ는 배 쓰다듬는 건 싫어해서 할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 장난감으로 이렇게 놀아주면 좋아해. 밥은 하루에 2번 줘야 되고 요만큼씩 주면 돼. 물은 블라블라~~~, 화장실 청소는 이렇게 하면 돼."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우리집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때까지
부부는 우리집에서 고양이들과 놀아 주기도 하고 우리와 이야기도 나누면서 여러 시간 함께 있었어.
엄마는 너에게 긴 잔소리를 늘어 놓았지.
"고양이 키우려면 해야 하는 일이고, 네가 스스로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까 해야지. 그런 걸 다 해낼 수 있어야 고양이 키울 자격이 생기는 거야."
"사랑한다는 건 힘들어도 책임을 다하는 거야. 엄마가 힘들다고 너 밥 안 주는 거 못 봤지? 너도 매일 매일 밥 줘야 된다? 고양이는 너처럼 밥을 혼자 차려 먹지도 못 하니까."
"히히, 엄마. 고양이가 혼자 밥 차려 먹으면 디게 웃기겠다."
엄마 얘길 진지하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너는 혼자 킥킥거렸어.
그리고서,
너는 한 달 동안 고양이들에게 푹 빠져 지냈지.
네 일기장에도 썼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은
고양이와 노는 시간이라고.
너는 세상에서 고양이를 제일 좋아한다고.
순식간에 엄마, 아빠를 제치고
고양이가 서열 1위로 등극하더라. ㅎㅎㅎ
너는 고양이에게 아침, 저녁 정해놓은 시간에 밥을 주고 물을 갈아 주었어.
너는 매일 저녁마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어.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매일 청소기를 돌려 고양이 털을 청소했어.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 두 마리가 집안을 돌아다니니, 흰 털이 곳곳에 날리고 곳곳에 달라 붙었어.
보통 일이 아니었어. 남색 방석에 고양이가 앉았다 일어나면 방석이 흰 색이 될 지경이었어.
너는 돌돌이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옷, 방석, 온갖 집기에 붙은 고양이 털을 치우고 또 치웠어.
넌 힘들지만 재미 있고 보람 있다고 했어.
가끔 주말이면 엄마에게 도와 달라고, 같이 해 달라고 한 적은 있었지만,
네가 해야 할 그 임무들을 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사실 엄마는 그 때 너에게 감탄하고 있었어.
"안 잊어 버리고 진짜 매일 하네?"
"힘들다고 불평 한 마디를 안 하네?"
"저걸 진짜 다 하네?"
엄마는 네가 그 모든 책임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혼자서 그렇게 다 해낼 줄은 정말 몰랐어. 넌 그 때 정말 대단했어.
고양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날,
넌 펑펑 울면서 고양이와 이별했고, 고양이가 타고 가는 차를 뒤따라 뛰기 시작했어.
뛰다가 더 이상 차가 보이지 않자 주저 않아 펑펑 울었지.
너는 엄마, 아빠와 했던 모든 약속을 지켰고 고양이에 대한 책임을 다했어. 결국 엄마, 아빠도 너와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 해 여름이 끝나가던 날, 각각 한 마리씩 두 마리를 데려 왔지.
고양이 카페를 몇 달 동안 지켜보다가
입양 보내려고 했는데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서 남아 있던 마지막 아이,
다른 집에서 "어디서 저런 쥐새끼 같은 걸 데려왔냐"고 파양 당한 아이, 두 마리를 데려 오게 되었어.
이젠 함께 키우는 것이니 역할 분담도 했지.
너는 고양이 밥과 물 당번을 맡았어.
엄마, 아빠는 일 주일씩 번갈아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기로 했어.
그렇게 우리는 벌써 9년째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지.
네가 사정이 있어 엄마나 아빠에게 부탁을 하는 날은 있어도, 여전히 아이들 밥 주는 것을 잊은 적은 없지.
넌 그렇게 고양이들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주었고 한결 같이 아침 저녁을 밥을 주었지.
아이야.
너는 지난 9년 동안 아침 저녁으로 고양이 밥을 주었어.
네가 읽었던 <어린 왕자> 기억나니?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하지.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그래도 너는 잊지마. 내가 길들인 대상에 대해 넌 영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넌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 (주1)
너는 많은 시간을 고양이에게 바쳤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중요해진 거란다.
네가 길들였기 때문에 책임을 느끼고 행하게 된 거란다.
스무 살이 된 아이야.
너는 그렇게 고양이에게 책임을 다한 경험이 있단다.
'책임'에 대한 너의 경험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단다.
그것을 네가 잊지 않으면 된단다.
그러면 너는 네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단다.
널 사랑하는 엄마가.
책임이란, 자기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것.
책임이란, 우편 배달부가 성실하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
책임이란, 운동회날,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것. (주2)
책임이란,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매일 밥을 주는 것.
주1> 잉투안 드 생텍쥐페리,《어린왕자》
주2>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아름다운 가치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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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작가 연재글 오전 7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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