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네가 엄마가 창피하다고 한 적이 있었어.
우리 둘이 한 달 동안 미국 여행갔을 때, 네가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였어. 우리는 티케팅을 하고 인크레더블 코스터를 타려고 줄을 서 있었지. 롤러코스터를 좋아하는 너를 위해 간 거였는데 엄마는 너를 낳고 난 뒤로는 롤러코스터가 너무 무섭더라고. "으아 무섭겠다."를 연발하며 줄을 서 있었지. 그런데 네가 엄마한테 신신당부를 하는 거야.
- 엄마! 무서워도 너무 소리 지르면 안 돼! 창피하단 말이야!
- 알았어. 노력해 볼게.
헉. 엄마가 창피하다는데, 노력해 봐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중얼거렸지.
'노력하면 되려나? 소리질러야지, 하고 지르는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는 건데, 참...'
5, 4, 3, 2, 1. 출발!
으악. 그런데 출발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그렇게 갑자기 훅 빠른 속도로 출발하다니.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른 갑작스러운 빠름. 정신 없이 오르락 내리락. 오르막을 오를 땐 그나마 나았는데 곧 내려갈 것이 무서웠어. 으아악.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내려가는 그 순간은,,, 으악.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너무 무섭더라.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했건만, 롤러코스터 탑승 순간부터 놀람과 무서움의 연속이라 엄마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 다행히 엄청나게 긴 코스는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어. 그러나 뭔가 만신창이가 된 느낌? 뭐랄까, 세탁기 속에 들어갔다 너덜너덜해져서 나온 기분이랄까... ㅠㅠ
롤러코스터에서 내렸는데 네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막 앞장서서 가더라?
엄마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널 뒤따라 걸었지.
조금 걷다가 함께 내린 사람들이 멀어질 때쯤 휙 뒤돌아 보더라고.
- 엄마! 그렇게 무서워? 앞에 탄 아저씨랑 뒤에 탄 언니가 엄마 보고 막 웃은 거 알아? 아 창피해.
엄마는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
앞에 아저씨가 탄 줄도 몰랐고 뒤에 언니들이 탄 것도 생각이 안 났어.
쩝. 그렇게 창피하구나.
- 그랬어? 엄마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쩝.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생각은 분명히 했는데 롤러코스터가 출발하는 순간 다 다 휘발돼 날아가서 그랬어. 엄마는 너무 무섭던데 넌 이게 안 무섭다고?
- 나? 난 롤러코스터 좋아하잖아. 너무 재밌어! 또 타고 싶어! 엄마 한 번 더 탈래?
창피하다고 면박을 주더니 이번엔 엄마를 놀리더라고.
아 진짜. 맨날 넌 엄마가 용감하다고 생각하는 았는데 엄마 체면 완전 구겼지. ㅋ
아이야.
그런데 엄마는 어떨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창피한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
있잖아. 엄마는 말이야.
엄마는 네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스무 해 동안 네가 창피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창피했던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너무 많이 떠오르네.
네가 잠만 잘 자도 자랑을 했고
(알지? 엄마가 잠 못 자는 아이 엄마들 모임에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그 카톡방에 있는 거? ㅎㅎ)
네가 처음 걸은 날은 눈물날 만큼 자랑스러웠고,
네가 드디어 배변을 가리게 되었을 때도 자랑스러웠고,
네가 카시트에 처음 앉아 울 때는 사랑스럽고 울지 않을 때는 자랑스러웠어.
네가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떴을 때도,
네가 처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을 때도 자랑스러웠고,
네가 브로콜리는 매운 초고추장에 폭 찍어 먹은 날도 자랑스러웠고,
네가 꼬꼬마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자랑스러웠어.
그네를 타며 높이높이 발을 구를 때도 자랑스러웠고,
연 날리며 뛰어 다니는 것도 자랑스러웠고,
빨간 불일 땐 길 건너며 안 된다고 엄마를 말릴 때도 자랑스러웠고,
함께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올 때 엄마의 짐을 들어주는 것도 자랑스러웠어.
축구 선수 되겠다고 공을 찰 때도 자랑스러웠고,
미용사 될 거라고 엄마 머리를 잡아당겼다 말았다 할 때도 자랑스러웠고,
커서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날도 네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어.
한글을 몰랐어도 시계는 척척 읽는 네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자랑스러웠고,
글자가 없는 책이 모여 있는 책장을 찾았다고 할 때도 자랑스러웠어.
네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엄마도 알아?' 하며 퀴즈를 낼 때도 자랑스러웠고,
공동육아 형, 언니들 만났다며 신나할 때도 자랑스러웠고,
피아노 배우고 싶다 하더니 정말 오랫동안 즐기며 배운 것도 자랑스러웠어.
공부라는 걸 해 봐야겠다며 엄마한테 문제 내 달라고 할 때도 자랑스러웠고,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도 너무 자랑스러웠어.
유튜브 찾아가며 요리하는 모습도 자랑스럽고,
고양이 껴안고 고양이와도 대화 나누는 네 모습도 자랑스럽고,
집에서 혼자 뒹굴며 책 읽고 큐브 맞추는 것도 자랑스러웠어.
캠핑을 가면 망치를 들고 힘껏 팩을 박는 모습도 자랑스러웠고,
조개를 캐려고 키 높이의 바닷물에 잠수할 때도 자랑스러웠고,
두 동생이 네 두 무뤂을 베고 누워 너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자랑스러웠고,
10대가 되어도 엄마, 아빠와 캠핑 다니길 좋아하는 네가 자랑스러웠고,
한여름 더위에도 돌고래 보겠다고 바닷가 포인트에 꼼짝 않고 앉은 제가 자랑스러웠고,
한겨울 밤, 별 보려고 더더 어두운 곳을 찾아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감탄하는 네가 자랑스러웠어.
고양이 밥을 주는 임무를 9년 동안 매일 성실하게 하는 모습도 자랑스럽고,
도움 친구가 되어 '나는 정말 친구가 되려고.' 했을 땐 감동도 받았고,
고3 때 입시에 도움되지 않는 독서모임에 나가는 것도 자랑스러웠어.
그러고 보면 엄마는 네가 창피한 순간이 정말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내 보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네.
아! 하나 생각났다!
엄마가 사진까지 찍어 놓은 어지러진 네 방!
이거 하나는 어디 내놓기가 좀 창피하긴 하네. ㅎㅎㅎ
아이야.
그래도 너는 언제나 엄마의 '자랑'이란다.
지금 다시 보니 저 모든 '자랑'을 '사랑'으로 바꾸어도 똑같네.
그래서 너는 언제나 엄마의 '사랑'이란다.
후회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고 돌아와 이불킥하는 날,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아픈 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날,
원하고 도전했던 일에 실패한 날,
네가 못나서 숨고 싶은 날,
그런 날들이면 엄마의 이 편지를 꺼내 읽으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일 또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오늘도 한결같은 사랑을 담아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