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작은 신호등을 잘 지키지 않는다.
집 앞에 편도 1차선 뿐인 작은 도로가 있고
하루 종일 그리 많은 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혼자 길을 갈 때는 앞뒤좌우 살핀 후
차가 한 대도 없다면 그냥 건너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갈 때면
아이가 늘 나를 제지한다.
"엄마, 빨간 불이야!"
어린, 아이가 나를 제지할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었다.
'아, 맞다, 신호등이 있었지.'
나의 20대는 사회의 온갖 차별과 불평등, 부조리에 눈을 뜨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 모든 제도와 질서들이 파괴되어야 할 것들로만 보였다.
나이만큼이나 패기있었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변화되면 좋겠다 여기는 부분들도 많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 모아 만들어 놓은
사회의 질서와 제도들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주위의 사람들은 더욱 더 그렇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 사람만의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를
모으고 모아 지금의 그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사람만의 생각과 행동에는 늘 배울 점이 많다.
옛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이 일생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써낸
책들에서는 특히 배울 것들이 많다.
그렇게 배울 점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집단의 지성과 지혜를 모아
사회의 여러 변화들을 만들어 오고 있다.
그것들은 일종의 '약속'이다.
때로는 그것들이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윤리적, 사회적 지표가 되어 줄 수 있다.
그것들은 일종의 '신호등'이다.
때로는 그것들이 내가 가야 할 순간과 멈춰야 할 순간을
알려줄 수 있다.
그것들을 때로는 수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그 모든 것들을 나라는 용광로에 녹여
나만의 사고 방식, 행동 양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 세워 둔
옛 성현들의 지혜의 신호등,
집단 지성으로 생산해 낸 공동 탐구의 산물인
이 시대와 사회의 지성과 지혜의 신호등을
잘 살피면서 걸으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이유이다.
책은 나에게 '지혜의 신호등'이다.
그것이 내가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는 '지혜의 신호등'이다.
융의 이론이든 프로이트의 이론이든 이 모든 하위 요소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개인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 바깥에 있는 사회적 세계에는 지혜와 길잡이가 곳곳에 서 있다. 새로운 영토에서 길을 기억하거나 방향을 정할 때, 다른 사람이 애써 세워둔 도로표지와 이정표가 있는데 굳이 우리 내부의 한정된 자원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크게 볼 때 사회계약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바로 온전한 정신이며, 인생의 초기 단계부터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사회적 세계가 그렇게 중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을 조직할 수 없고, 그냥 세계에 압도된다. (주1)
주1> 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표지 이미지> Image by WikimediaImage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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