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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폭군, 저녁의 폭군

by 아라

새벽 독서 시간에 '습관'이라는 주제가 등장하였다.


"사라진 습관은 무엇인가"

"새로 생긴 습관은 무엇인가"


올해 1월 4일, 처음 홀로 독서를 시작한 날,

우연히 읽고 메모해 둔 글귀와 같아 다시 꺼내 읽어 본다.




습관에 대하여


습관이란 마치 사납고 변덕스러운 선생과 같다. 습관은 마음 속에서 아주 조금씩,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자리를 굳혀 간다. 처음에는 순하고 얌전하지만 시간이 흘러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갑자기 사나운 폭군처럼 굴기 시작한다. 그쯤 되면 더 이상 습관에 맞서 고개조차 제대로 들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종종 습관이 자연법칙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습관은 모든 사물 가운데 가장 힘센 주인이다.

- 플리니우스 (주1)




습관은 사납다.

무섭게 나를 길들인다.


늘 곁에 있지만, 어느 날 문득 보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처음엔 나를 돕는 조력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용히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


처음 새벽 독서를 시작했던 1월,

습관을 바꾸고 싶어

책을 머리맡에 놓아 두었었다.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미니 스탠드를 켜고

스마트폰 동영상 대신

책을 아무데나 펼쳐 읽었다.


즉각적으로

하나의 습관이 사라지고

다른 습관으로 대체되었다.


하루의 시작이

동영상에서 책으로 바뀐 것이다.


그때부터 새벽과 책이 나를 점령했다.
나는 기꺼이 그 폭군에게 항복했다.


더운 날(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면

거의 매일 더웠던 게 문제다)

퇴근해 얼음 동동 띄워 마시던

맥주와 하이볼이 인생의 낙이었는데,

술보다 더 맛있는 게 생겼다.


술은 몸을 녹이고,
책은 마음을 녹이고 정신을 재조립한다.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몸이 점점 굳어갔다.


책을 읽느라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고,
플랭크와 물구나무로

몸의 근육을 만들던 습관이 사라졌다.

달리기를 종종 하지만 달리기만으로는 안 된다.

올봄 보건소에서 올림픽 나가도 된다고 했던

소중한 내 근육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책이 나를 깨웠고,
몸이 잠들어 버렸다.


습관은 정말 사납다.
그건 내가 고른 무기지만,

동시에 내 약점이기도 하다.
좋은 습관도 다른 영역을 잠식할 수 있다.
습관은 사라지거나 생기는 게 아니라,

대체될 뿐이다.


책이라는 새 친구가

내 몸의 근육을 무너뜨릴 줄이야.

"이번엔 내 몸을 읽어 보자."


습관은 나를 만든다.
하지만 가끔,
‘나’를 다시 해체하고 재조립해야 한다.


주1> 몽테뉴, <수상록>, 62쪽.

표지 이미지>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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