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는 많은 것을 온 몸으로 경험했지

by 아라

“해봤어?”


이 단순한 질문이 너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순간이 있었을 거야. 네가 아무리 긴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했어도, 네가 이성으로 무장하고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논리를 펼쳤어도 “그래서! 직접 해 봤어?”라는 질문 앞에서 작아지는 순간. 엄마는 있었는데 넌 어떠니?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고하고 상상했더라도 그건 ‘직접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 작아졌던 거야.


“자전거 타 봤어?”


아이야.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날, 기억나니?


세발자전거는 배울 필요도 없었어. 페달만 돌리면 탈 수 있었으니까. 조금 커서는 네발자전거를 탔지. 두발자전거에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드디어 두발자전거를 배우게 되었어. 세발자전거나 네발자전거는 자전거 자체로 서 있을 수 있지만 두발자전거는 너의 두 다리로, 두 발로 바퀴를 지탱해야만 서 있을 수 있어. 연습 없이는 탈 수가 없지.


네발자전거에서 두 개의 보조 바퀴를 떼어 낸, 두발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나갔지. 처음에는 넘어질까 봐 겁이 났던 너. “놓으면 안 돼! 꼭 잡아야 돼!” 엄마, 아빠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지. 하지만 결국은 손을 놓는 순간이 온다. 엄마의 손을 믿고 천천히 페달을 돌리던 너의 속력이 빨라지면서 엄마는 손을 놓았어. 그러자 너는 스스로 두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갔어. 두발자전거는 서 있으면 쓰러지지만, 페달을 밟아 앞으로 굴리면 넘어지지 않지. 움직이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는 몸으로 배웠어. 그리고 알게 되었지. 멈추지 않고 굴리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라는 걸, 그게 바로 균형을 잡는 방법이라는 걸.


아이야. 너는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널 보면서 엄마는 깨달았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두 발로 페달을 구른 것처럼 경험은 '직접 온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경험은 체험(體驗)이라는 것을.


자전거를 타는 방법,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원리.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한 발을 지면에 디딘 채 앞으로 바퀴를 굴리면서 두 번째 발을 떼서 페달 위에 얹어. 그리고 페달을 힘차게 굴러. 그러면 페달을 밟는 힘이 땅을 밀어내면서 지면과 바퀴의 마찰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게 돼. 이때 양손과 양발의 균형을 잡으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런데 자전거 타는 방법과 원리를 숙지하고, 머리로 “자전거는 균형이 중요해.”를 달달 외워도 직접 해보지 않고는 배울 수가 없지. 직접 해보고 넘어지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체험이란다. 체험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지. 체험은 온몸으로 배우는 것. 그래서 체험은 네 온 몸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지. 두 손의 감각, 두 발의 감각, 균형을 잡을 때의 느낌, 드디어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장박동, 앞으로 나아갈 때 온몸을 스치는 바람의 감각, 그 모든 감각을 일깨워준다. 그 첫 번째 체험은 짧아도 강렬하고 짜릿해. 온몸의 감각을 통해 너에게 온 것들은 너만의 방식으로 네 몸에 기록돼.


아이야. 네가 자전거를 배우며 가장 많이 겪었던 과정이 뭔지 아니?

그건 넘어지는 것, 실패하는 것이었어. 수십 번을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에 피가 나기도 하고, 넘어져 뒹굴기도 했어. 그래도 다시 자전거에 오르고 또 올랐지. 너는 나무를 타다 미끄러져도 다시 나무에 올랐어. 해수욕장 부표 부근에서 조개를 캐다 바닷물을 들이켰어도 다시 잠수를 했어. 텐트 치다가 망치에 손가락을 찍혀 시퍼렇게 멍이 들어도 또 망치를 들었지. 친구들과 술래잡기 할 땐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너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수많은 죽음과 되살아남을 경험했어.

넘어지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배울 수가 없어. 아니, 넘어지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배울 수가 없지.


아이야. 네가 자전거를 타면서 한 것은 몸으로 해내는 ‘체험’만을 한 것은 아니야. 네가 했던 것은 ‘실험’이기도 했어.

실험(實驗)은 가설을 세우고 조건을 설정해 결과를 지켜보는 일이잖아. 실험은 가설을 검증하는 거잖아. 너는 네 몸으로 실험하여 스스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검증했어. 페달을 빨리도 돌려 보고 천천히도 돌려 봤지. 넘어지려고 할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반대쪽으로 일어서려고 했어. 그러자 너는 또 넘어졌어. 또 넘어지려고 할 때 이번엔 우연히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신기하게도 넘어지지 않는 거야!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너는 온 몸으로 실험을 한 거야. ‘바로 이거다!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니 넘어지지 않는구나!' 실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된 거야. 네 경험은 몸으로 해낸 소중한 실험이었던 거야!


아이야. 너는 자전거를 배우며 ‘실패하는 법’도 배우고 실험하는 법도 배웠어. 엄마는 너를 보면서 그 과정을 직접 보고 배웠어. 실험이라는 게 그렇잖아. 언제나 ‘안 될 수도 있음’을 전제하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해보는 것,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가보는 것,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고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부딪히는 것. 그게 진짜 실험이고 그게 진짜 용기라는 것을 너를 보면서 배웠어.


경험 중에 제일 용감한 게 뭐 같아? 엄마에게는 '실험'이 특히 적극적이고 용감해 보여.

아이야. 실험은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실패는 너에게 중요한 데이터가 되어줄 거야.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냥 해보는 '실험'이 너를 키워줄 거야. 실패해 본 경험이 너를 살찌워줄 거야. 아이야. 마음껏 실험해도 괜찮아. 아이야, 마음껏 실패해도 괜찮아.


아이야. 네가 배운 것이 또 있어.

자전거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아니라, 멈추는 방법을 배웠어. 스스로 바퀴를 굴릴 수 있게 되자마자 너는 멈추는 법을 배워야 했어. 자전거도, 스케이트도, 심지어 자동차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맨 처음 배워야 하는 건 멈추는 방법이지. 어쩌면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멈추는 방법’일 지도 몰라. 우리 인생이 그렇듯이.


아이야. 네가 했던 그 경험에는 언제나 ‘시험’이 따라왔어.

이제 너는 자전거를 혼자 탈 줄 알지. 어쩌면 한 번 시도해 보고 그만둘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너는 계속 시도하고 반복해서 드디어 탈 수 있게 된 거거든.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운동장으로 나갔지만 아무도 너에게 반드시 자전거 타기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 시험은 너 스스로 너에게 부여한 거야. 체험과 실험이 ‘행동’의 층위였다면 때로 시험은 ‘의지’의 층위야. 너의 확신을 검증해 보려는 네 정신의 ‘의지’의 층위. 너 자신에게 부여하고 네가 스스로 시험의 ‘문턱’을 넘은 거야. 그 시험은 점수를 매기지 않는 시험이야. 그건 바로 네 마음이 얼마나 끈기 있게, 진심을 다해 한 가지를 해냈는지를 묻는 시험이야. 그리고 너는 그 시험을 멋지게 통과한 거지. 너는 시험을 통해 너는 너를 증명했고 너를 성장시켰어.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시험에서 얻은 점수보다 그 시험을 위해 살아낸 시간이 너에게 더 중요한 거란다. 아이야. 힘들 때마다 네가 자전거를 배웠던 경험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경험의 '문턱'인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


근데 아이야. 진짜 좋은 게 뭔지 아니?

그렇게 넘어지면서 온 몸으로 배운 것은 잊히지 않는다는 거야. 자전거는 오랫동안 타지 않았어도 금방 다시 탈 수 있어. 아이야. 몸으로 배운 것은 머리가 잊어도 몸이 결코 잊지 않는다. 몸으로 배운 것은 몸이 기억하지.


아이야. 네 몸에는 이제 자전거 타는 방법이 새겨져 있어.

자전거뿐이겠니. 네에게는 네가 몸으로 경험한 많은 것들이 새겨져 있단다.

어릴 때 자연 속에서 매일매일 나들이 다니며 몸으로 느꼈던 햇빛, 바람, 계절에 대한 감각도 새겨져 있다. 목까지 차는 바닷물에 잠수해 들어가 조개를 잡아 보고 친구들과 계곡에서 보트를 타고 내려왔던 모험의 경험도, 나뭇가지를 줍고 불을 피우고 입으로, 후우, 바람을 불어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던 경험도, 손수 망치질 해서 텐트를 땅에 박아 보고 뽑아도 보았던 경험도. 그 모든 경험이 네 몸에 새겨져 있다.


아이야. 꼬꼬마 시절부터 나무를 타고 올라 보고 높은 곳의 고드름 하나 따 보겠다고 하늘로 펄쩍 뛰다가 넘어져 보고 친구들을 의지해 가며 높이 올라 본 위험한 경험들도 너의 내면에 단단한 용기를 심어 주었을 거야. 목숨은 함부로 내놓으면 안 되겠지만 ㅎㅎ 아이야. 조금은 다쳐도 괜찮아. 넘어져 무릎 깨졌어도 괜찮아. 농구하다 손가락 부러졌어도 괜찮아. ㅎㅎㅎ 위험해도 괜찮아. 맨손으로 나무에 오르다 보면 가시가 박히기도 했지. 어떻게 하면 조개를 더 잘 잡을 수 있을지 잠수를 수십 번 했지. 그러다가 짠 바닷물도 꽤 들이켰을 거야. 동생들과 함께 계곡에서 보트를 타고 내려오다가 보트가 뒤집히면 모두 물로 내려와 낑낑거리며 애써 뒤집어야 했지. 텐트 팩 박으려고 망치질하다가 손가락을 쳐 시퍼런 멍이 들었지. 동생들을 데리고 ‘미션 나들이’의 이끄미가 되어 지도를 보며 전철을 타고 걷고 ‘나홀로 나무’를 찾아갔던 경험은 너에게 모험이었을 거야. 그 모든 경험이 쉬운 경험만은 아니었을 거야. 처음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나섰던 ‘미션 나들이’에서 길을 잃을까 봐 얼마나 떨렸을까,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렇게 몸으로 배우다가 얻게 된 작은 상처와 흉터들, 그 떨림과 두려움의 기억들, 그것들도 너에게는 경험이 준 훈장이란다. 그런 것은 마음껏 자랑스러워 해도 좋아. 그리고 이제까지 그랬듯 세상에 나가 홀로 겪게 될 많은 일들에 마음껏 뛰어들어 보기 바란다.


그러니 아이야.

네가 자전거를 배웠듯이 다른 경험들도 계속 집적거리고 경험해 보렴. 결국 '그냥 해 보는 것'이거든. 하는 놈은 아무도 못 당하거든. 그러니 아이야. 그냥 해 봐. 경험해 봐. 네 인생을 너의 손으로 너의 발로, 너의 심장으로, 너의 모든 감각으로 겪어라. 그것이 진짜 삶이야! 그것이 너를 살아있게 해 줄 거야!


아이야.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주1)

지혜는 경험의 딸이란다.(주2)


주1> 아인슈타인.

주2> 레오나르도 다빈치.




글에 들러 주시는 글벗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 되세요!


[아라의 연재글]

수, 일: 스무 살이 된 아이에게 1 https://brunch.co.kr/brunchbook/rewrite-being20

월: 5시, 책이 나를 깨우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ookswakemeup

목: 가르치지 않는 교육 https://brunch.co.kr/brunchbook/uneducated

금: 나의 일, 나의 삶 https://brunch.co.kr/brunchbook/workislife


[아라의 브런치북]

어른이 다녀보았습니다. 공동육아 https://brunch.co.kr/brunchbook/communitas

어쩌다 며느리, C급 며느리 https://brunch.co.kr/brunchbook/mysecondfamily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