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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by 아라

아이야.

네가 집을 떠난 지 9개월. 내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네가 스무 살이 되어 맨 처음 선택한 것은 '어려움'이었어. 심지어 "자처한 어려움."

고통을 당겨 쓴 사람.

그게 바로 너였어.


엄마는 네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어.

엄마는 어려움을 선택한 네가 무척 자랑스러웠어.


살다 보면 누구나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더 쉬운 길을 고르거든. 덜 힘들고, 덜 복잡하고, 덜 외로운 길.

하지만 너는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거야.


그 선택이 쉽지 않았다는 걸 엄마는 알지.


어려움을 택한다는 건 자신을 믿어 보겠다는 뜻이었을 거야. 그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건 어려워도 해볼 가치를 발견했다는 뜻일 거야.


엄마는 무엇보다도 널 믿었어.

네가 스스로 선택한 시간, 끝까지 스스로 견뎌낼 것이라는 것.

그 과정에서 네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얻으리라는 것.


너도 너 자신에 대한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 거야.


엄마도 돌아보면 사실 어려움을 선택하는 쪽이었던 것 같아. 늘 그게 더 재밌어 보이고 가치 있어 보이더라고. 그런데 그게 맞았어.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어려움들이 엄마를 새롭게 만들어 주었더라고.


엄마도 그렇다.

어려운 선택을 해 놓고는

힘든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거든.


아이야.

너는 지금 그 9개월의 시간 뒤에 서 있다.

그때 어려움을 선택한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네가 서 있다.

오늘 이미 더욱 단단해진

너 스스로를 마주하며 씨익 웃어보렴.


릴케는 이런 말을 했지.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처한 어려움 속에서 보낸 9개월.

홀로 보낸 9개월.


너의 선택은 너를 고독과 만나게 했을 거야.

때로는 불안과 외로움이 엄습했겠지만,

너는 그 모든 시간들을 이미 잘 걸어왔단다.


그 고독 속에서

네 안의 목소리를 들었으리라 믿는다.


엄마도, 그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너는 네 자신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너의 걸음을 응원할게.

그 길 끝에서 더 깊어진 눈빛을 장착하고

돌아올 너를 기다릴께.

그 시간 동안 훌쩍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올

너를 기다릴께.


엄마가 사랑하게 된 책의 한 구절을 남긴다.

너애게 작은 선물이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습의 도움을 빌려) 모든 것을 쉬운 쪽으로만 해결해 왔습니다. 쉬운 것 중에서도 가장 쉬운 쪽으로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것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합니다.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자라며 자신들을 방어하고 또 안으로부터 제 특징을 만들어내며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리고 어떠한 저항에라도 맞서면서 그와 같은 고유성을 지키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우리가 어려운 쪽을 향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와 같은 확실성만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주1)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1년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10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히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 있게 참을성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주1)



주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006, 고려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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