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무관심

by 아라

재수학원 입시분석실에서 일할 때

자신의 목표를 향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쓰고 수고한 아이들과

상담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1년 중 가장 '초'집중하는 시간은

그때였다.


단 한 명의 아이에게도

허투른 정보를 주거나 허투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 레벨에 인생이 달린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해 왔던 노력과 수고,

불안과 괴로움을 견디며 지나온

시간들을 알기에,


그 노력과 수고에 어울리는

아이들의 꿈에 가장 가까운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판단을 하고 싶었다.


그때 회사 홈페이지 나의 아이디는 '진인사(盡人事)'였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서 따온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정이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결과이다.


땅은 내가 일궜더라도,

씨는 내가 뿌렸더라도,

열매는 내 마음대로 맺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기다리는 것이다.

결과는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에는 무관심해야 한다.

그것이 '신성한 무관심'이다.


내가 할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다.


결과가 주어졌다면 자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는 하늘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과가 왔을 때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신성한 무관심’을 배운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둔다.



성 이그니티우스 로욜라는

만일 교황이 예수회 신학대학을 탄압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25분정도 기도하고는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답했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고행 중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최고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이상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신성한 무관심' 을 달성하는 것 말이다.


크게 성공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실패한다 해도 역시 좋은 일일 수 있는데,

그것이 시간에 속박된 제한된 마음에게

지금 여기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기만 한다면 말이다. (주1)



주1> 올더스 헉슬리, 《영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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