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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by 아라 Feb 01. 2025

사람 마음이 참...


아가랑 하루종일 씨름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가끔 도망치고 싶기도 했는데,

떨어질 생각을 하니 이렇게나 마음이 아프네요.   

  

울 아가도 울 엄마도, 저도...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겠지요?     

저, 슬픈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던 사람인데,

오늘은 아가 생각에, 엄마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나네요.     



아기 낳고 딱 백일을 아기와 함께 보낸 후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때 한 인터넷 카페에 남겼던 글이다.

      

출산 휴가가 끝나갈 무렵, 마음이 복잡했고 심란한 만큼 바삐 움직였다. 모자 동실을 선택해 출산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모유 수유에 성공하여 백일 동안 완전히 아이와 한 몸처럼 붙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아이와 떨어지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아기는 엄마젖을 빨다가 젖병을 빨아야 되기에 적응을 시켜야 했다. 중간 중간 분유를 먹여야 하기에 분유를 먹어보아야 했다. 엄마인 나는 유축기를 대여해 유축을 연습했다. 차라리 젖을 물리는 게 나았다.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통증도 심했고 젖소라도 된 듯 동물처럼 느껴지고 내 몸인데 내 몸 같지 않았다. 뒤처리도 쉽지 않았다. 유축할 때마다 용기를 소독해야 했고 깨끗한 비닐 파우치에 담아 잘 밀폐하고 변질되지 않도록 즉각 냉동 보관해야 했다.      


엄마집에서 아이를 돌봐 주시기로 했지만 엄마도 사회생활을 하셔야 하니 출퇴근하며 아이를 돌봐주실 아이돌보미 여사님을 구해야 했다. 인터넷에 구인 광고를 내고 연락 오는 분들 면접을 보아야 했는데 어떤 아이돌보미를 구해야 할지 추상적인 기준밖에 없었다. 모두들 내 아이처럼 사랑으로 돌봐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생각되는, 푸근하고 짜증과 날카로움이 없어 보이는 분을 채용하기로 했다. 복직 1주일 전부터 출근하시도록 하여 내가 함께 있을 때 적응하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차근차근 복직을 준비했다.


아이가 백일이 되기 하루 전, 복직하기 하루 전날이기도 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백일 밖에 안 된 아이를 떼 놓고 출근하려니 마음이 착잡했다. 아이를 낳고 호르몬이 작동하는 것인지, 모성애가 넘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눈물이 났다.      


드디어 복직하는 날. 애써 눈물을 감추며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니 인사부터 하란다. 소속 부서에서부터 시작해 임원들에게까지 여기저기 복직했다고 신고하고 출산 휴가 기간을 덕분에 잘 보냈다고 인사를 다녔다. 현재의 부서 현황이나 맡았던 업무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파악해야 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으로 온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복직 첫날부터 제 시간에 퇴근하지도 못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서 건물 밖으로 나오니 찬 공기가 훅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깜짝 놀랐다.

- 하루 종일 아이 생각을 안 한 것 같은데?      


세상에. 아침까지도 아이를 떼 놓고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출근을 했는데 거짓말처럼 아이 생각이 안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엄마 맞아?' 내가 ‘나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도 들었고 역시 타고난 모성애란 허상인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내 경우 본능적인 모성애가 초강력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ㅎㅎㅎ 본능적인 모성애라는 것이 아주 강력한 여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도 있을 것이다. 이는 강력한 부성애를 가진 남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남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본질적으로 어머니’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고 설명한다. “결혼과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어머니로 호명되고 어머니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모든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할 뿐 아니라 돌보기를 즐기고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된다.”는 것이다(주1)      

아이를 셋 낳아 키우며 ‘모성’에 대한 글을 쓴 미국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많은 이들이 자연스러운 ‘모성’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검토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말했다.(주2)


검토되지 않은 가설들:

‘자연스러운’ 엄마는 엄마라는 것 외에 더 이상의 주체성이 없는 사람으로, 하루 종일 작은 아이들과 함께 있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에서 가장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엄마와 아이들을 함께 집에 고립시켜두는 일이 당연하다는 것; 모성애는 철저하게 비이기적이고 마땅히 비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진 어머니의 전형 때문에, (중략) 시달림을 당했다”고도 했다. 내가 몸소 경험한 후 알게 된 것은 모성이 타고난 본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아이를 낳은 것을 잘한 일이라 생각하고 20년 가까이 엄마 노릇을 해 오면서 아이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본능적으로 타고난 모성애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나에게는 오랫동안 엄마 노릇을 하면서 애정과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만큼 사랑하게 된 것에 가깝다.

모성애가 무엇인지, 어머니다운 것이 무엇인지, 그런 사회적 통념은 있지만 정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 어머니는 여성에게 부과된 성역할 제도의 산물이지 생물학적인 결과가 아니다."(주3) 어머니는 여성에게 부과된 제도의 산물이다. 그러니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나쁜 엄마를 규정하는 시선과 통념이 있을 뿐이다. 엄마들은 누구나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 덧붙임: 이날, 또 하나 느낀 것이 있다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직장 일보다 백배는 더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큰다고? 그런 말은 아이를 돌본 적이라고는 없는 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분명하다!      


주1) 정희진, 2005,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58쪽.

주2)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김인성 옮김, 2018,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평민사, 21쪽.

주3) 정희진, 같은 책,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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