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
숫자 0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질문입니다. 9살 딸아이는 얼룩말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0은 영어로 zero인데, 발음이 얼룩말의 영어 발음인 zebra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7살 아들은 훌라후프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동그라미 0이 훌라후프와 닮았다는 겁니다.
저는 숫자 0을 보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숫자 0은 숫자 체계의 시작인데, 한글의 시작은 ㄱ이고, 기억과 비슷한 발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생각이 그런 방향으로 흘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두 아이와 숫자 0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억이라는 단어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기억. 인간은 모두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기억이 떠올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인생에 영향을 주던 수많은 기억들 중 어떤 기억이 최후의 승자가 될까요? 인간이 죽는 순간에 가지는 단 하나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요? 죽는 순간에는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나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기억들이 떠오를까요?
숫자 0은 모든 것이 사라진 숫자입니다. 존재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0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숫자 0에서는 죽음이 느껴집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요즘 세상에서 치매는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이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치매 증상을 보이셨던 고모는 엄마와 오빠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오빠와 당신을 기억하셨노라고 말씀하실 때면, 엄마의 표정은 걱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감사함과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끝까지 기억에 남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걸까요?
아주 오래전에 [지금 꼭 안아줄 것]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이와 남편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그 모습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였기에 더욱 슬펐습니다. 아장아장, 응애응애 거리던 두 아이를 돌보고 있었기에 그 슬픔이 너무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 역시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두 아이와 남편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릴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우리는 하루하루 기억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오늘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이 되고, 미래의 기억이 오늘의 기억이 되는 걸 되풀이합니다.
최근에 아이들과 함께 본 겨울왕국 2에서는 기억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현재였으나 과거가 되어 차곡차곡 쌓인 기억이, 바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는 것이지요.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였을 때의 기억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응애응애와 아장아장 시절의 기억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요?
저는 머릿속에 떠올릴 수는 없지만, 인간의 몸이 그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 기억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그 기억이 생각나지 않을지라도, 행복한 경험이 쌓이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의 기억은 저와 두 아이 모두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잊지 못할 기억이 될지도 모릅니다. 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어릴 적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스크'를 보면 코로나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장기간 외출이 힘들어져서 우울증이 생기는 증상입니다. 저는 두 아이들에게 '코로나'를 즐거운 기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코로나와 즐거움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이 집안에서 함께 할 시간이 많으니, 그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도 늘어납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들을 하다 보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시간이 잘 갑니다.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라서 책꽂이에 꼽혀있는 책들도 한몫을 합니다. 식물 기르기도 하고, 과학실험도 하고, 시간이 많으니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코로나가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절을 기억할 때, 즐거웠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 차곡차곡 일상의 즐거움을 쌓아주고 있는 중입니다. 눈으로 마음으로 온몸으로 정성스럽게 삶을 기억하고, 행복한 기억을 가득 담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what I know for sure / 오프라 윈프리 지음
"당신이 확실히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
이 질문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는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무엇일까?
확실히 안다는 것은 나의 경험이 기억으로 쌓이고, 그 기억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래서 내 안에 진실로 쌓이는 과정이 되풀이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 내가 확실히 아는 진실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