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마주 보다

[너무 일찍 나이 들어 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고든 리빙스턴

by 온단

"엄마,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손을 들고 안녕! 하면서..."


숫자 11을 보며 두 아이가 말했습니다. 두 명의 사람, 손을 흔들며 마주 보고 있는 사람. 저는 엄마가 되면서 항상 아이를 마주 보고 지켜보았습니다. 구순에 다다르신 외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이는 10살까지는 자기 목숨운이 아니라 엄마운을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첫 아이가 막 태어난 때부터 열 살이 된 지금까지 줄곧 저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안전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안심하지 않고 지켜보는 습관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과한 것 같을 지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는 차라리 과한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항상 옆에 있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그러지 못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둘째 아이가 처음으로 축구를 배우려고 축구 학원에 간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축구 학원의 선생님이, 둘째 아이의 유치원에 매주 오셔서 운동을 가르쳐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는지,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를 수업에 들여보내고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이 아빠의 급한 부탁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거절을 했어도 되었을 텐데 그날은 아이를 혼자 두고 다녀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좀 안돼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축구골대 아래에 앉아있는 겁니다. 카운터에 있던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중간에 한번 나와서 우는 아이를 달래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공한번 차보지 못하고 계속 축구 골대 밑에 앉아있었던 겁니다. 유치원에서 매주 보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수업이어서 아이가 잘 적응할 거라고, 선생님이 잘 챙겨주실 거라고 믿었던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를 그렇게 긴장하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최소한 무릎이라도 펴고 앉아있으라고 말 한마디라도 해주지 하는 원망도 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하나, 자리를 비운 내가 잘못 이지하는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아빠와 축구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이지만, 다른 축구 학원이라도 보내볼까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학을 뗍니다.




이날 저는 다시는 아이의 곁을 떠나지 말자, 특히 첫날에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아이가 열 살이 넘으면, 아니 아홉 살만되어도 친구들과 노느라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전에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마주 보고 지켜보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린아이들의 행동은 당연히 어른들의 눈에 차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육을 위한 잔소리가 필요하지만 극히 최소한의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아이가 지켜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될 예법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부모의 취향에 따른 잔소리는 생략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잔소리'가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사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나옵니다.

1.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2.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우리는 '쓸데없이'와 '필요 이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흔히 아이들을 향하지만, 때로는 같은 어른에게 잔소리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잔소리는 대부분 옳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말의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는 잔소리인지 아닌지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아무리 옳은 내용도 '쓸데없이 '필요 이상으로'하는 말이라면 잔소리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쓸데없거나 필요 이상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잔소리가 됩니다.


나는 상대방을 위해서, 진심으로 옳은 말을 했는데,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면 속상하겠죠?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나서 옳은 말을 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나를 멘토로 여기도록, 상대방이 나의 말을 귀담아들을 마음자세가 되었을 때 말이지요.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지적할 때는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라는 자격, 멘토라는 자격, 스승이라는 자격이 말입니다. 좀 더 세분화해서 보자면, 아이의 마음을 조금 얻은 부모는 그 자격의 범위가 적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 자격의 범위가 넓을 겁니다. 물론 아이의 마음과 관계없이 부모이기에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과 행동을 조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와 마음이 통할지는 항상 고민거리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법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이 가득한 눈길이 아니라,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겁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바라보면 아이의 진짜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아이가 어째서 저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일도 아이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10살이 아니라, 그 이후까지도 계속해서 아이들을 마주 보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나와는 다른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프라이빗 공간을 점점 더 넓혀갈 것입니다. 그에 맞추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항상 마주 볼 수 있는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엄마의 말을 잔소리가 아닌 따뜻한 안내로 들어주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아침마다 딸아이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고, 묶어줍니다. 머리를 빗겨주는 행동이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일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항상 머리를 땋아주셨는데요,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은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마흔이 넘어서야, 내 아이의 머리를 땋아 주고 나서야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고든 리빙스턴 지음)

이 책은 저자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며 삶의 진실에 대한 통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좋을 삶의 진실이 궁금할 때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특히 스물두 번째 진실 -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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