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할 말을 담아 두면 남는 건 곰팡이 마음뿐
인간관계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적이 없고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던 경우, 결국 참다가 터지는 묵은 감정들이 폭주하듯 터져 나오면 상대방은 대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라거나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식의 말. 오래전 나도 들어봤던 말이고 그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그 말에 억울하다는 생각 보다도 더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건, 하나도 틀린 말이 없고 모두 맞는 말이라는데 있다. 아무도 희생하라 말한 적은 없지만 나의 희생 덕분에 삐딱선 타던 관계의 흐름이 그나마 평온을 되찾았으나 그것은 잊혔고 내가 딱히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희생, 참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해진 탓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도 예가 된다.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이유는 시간의 힘을 믿는 탓도 있었다. 생각이 있으면, 시간이 흐르면 적어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도 깨달아 성찰하는 인간이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몹시 절망했다.
이런 얘기를 남편과 나누다 보면 그는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너의 이런 면을 좋아 하지만 넌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구석이 있어.' 맞다. 그래서 뒤통수 많이 맞으며 산 사람이 나였다.
오래 묵혀왔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뿜어대며 폭주했던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그런 나의 행동에 놀란 듯 한동안 말이 없었고 조목조목 따져 가며 언성을 높이는 내 말에 지극히 이기적인 말들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었다. 사람을 얕보는 못돼 먹은 버릇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는 건지 말이다. 참으면, 정말 잘못해서 할 말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게 화가 났다. 그런 타입이 괘씸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경건의 시간처럼 참을 인자를 써가며 말을 아끼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다. 감정의 폭주는 오랫동안 일상을 깨뜨리기 때문이고 말해 뭐하겠어하는 체념의 이유도 있었다.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하면서 쏟아내는 말들에 상대방의 음성이 급격히 작아지며 그제야 나를 다독이려 이해하는 척하며 해명을 늘어놓을 때는 정말 혀 끝까지 욕이 쏟아져 나오는 거다. 전형적인 약육강식 스타일은 정말 사람을 돌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참고 있구나 , 받아 주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거다. 이렇게 되면 쌍방과실이 되는 거겠지만 어차피 인간관계의 틀어짐은 일방적일 수 없다고 하니 1%라도 더 못한 사람이 모두 잘못한 게 된다 하더라도 굳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금쪽같은 1%를 베풀어줘야 할까. 그런 이유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기를 재워둔 주말 저녁이면 남편과 맥주 한 잔씩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서로의 일상에 치여서 깊은 대화 나누기가 평소엔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 시간은 참 뜻깊은 날이 되는 거다. 아직도 잘 믿고 여전히 순진한 구석이 충만한 내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쁜 것이니 스스로 깎아내리지 말라고 한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을 위한답시고 할 말을 못 하고 살면 남는 건 내 마음에 검게 핀 곰팡이뿐이다. 곰팡이 도려 내려면 아프니까. 자신을 지키면서 살자는 거다. 어쨌거나 나는 , 자신에게도 누군가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니까.